나는 무한정 높아진다. 몇 번의 매미가 울고 또, 몇 번의 바람이 불더니 기어코 여름은 날개를 만들어서 왔다. 오색의 날개를 만들어 온 여름은 뒤꽁무니 선명하게 몸에다 수를 놓았다. 왔다가 가는 것에는 흔적이 있다. 얼음을 녹여 끓이는 밤이 지나고 오래 들여다본 계절이 삭아서 떨어지면, 나무의 거리는 조용해져서 가로누운 벤치로 올라간다. 오늘도 나는 아름다운 눈빛을 하고 저산을 돌아서 온다. 신은 빗소리를 꿰매느라 이번 여름을 다써버렸다. 지루한 장마였다. 떨어진 빗방울을 쓰다듬는 아침이 오면 고양이가 그린 평화로운 빛의 궤적이 살
잠을 설친다. 새벽이면 전차를 끌고 산을 넘어간다. 무수한 혁명과 야한생각들이 동트는 새벽을 달린다. 코로나로 인한 장기적인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시국에 비까지 더한 국가적 우환에 걱정이 태산이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란 말이 요즘 너무 친근하게 들리기도 한다. 모두가 지칠 줄 모르는 폭군이다. 연일 동네가 물에 잠기고, 소가 지붕위로 올라가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코로나 하나만 해도 경제활동이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불안한데 물난리가 겹치니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하나님께 전
얼마 전 뉴스에 간송미술관 소장 유물이 경매에 나왔다. 그것도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는 국보급 유물 두 점이었다. 삼국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284호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로 지정된 금동보살입상이 그것이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때 간송전형필(1906~1962)이 사재를 털어 일본은 물론 국외로 반출되는 국보급 유물을 거금을 들여 수집해 전시하고 있는 사립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우리 유물에 대한 관심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큰돈을 들여서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전형필은
소리의 바퀴들이 공원을 훑어간다. 내가 떨어뜨린 꽃잎과 다리에 걸리는 바람의 안부를 묻는다. 꽃을 피우기 위한 세상의 소리들이 내 가난한 푸른 숲에서 그림자를 키우고 있다. 숲 속에서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수단처럼, 생명의 소용돌이를 몰고 다양하게 내 안으로 감겨든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발설하지 못한 5월의 소리로 아우성인 공원에서 나는 어떤 걸음으로 걸어가는가? 담장을 타고 넘어오는 붉은 장미의 소리는 처연하다. 피고 지는 속도가 바람의 속도처럼 빠르기도 하겠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소리들이 계절이라는 시간을 돌리고 있다
선택의 시간도 끝나고 이제 다시 거리두기 시작이다. 그렇지만 흐드러진 꽃밭으로 가서 동무들과 꽃밥 한 그릇 먹고 싶다. "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 피어 있네" 김소월의 산유화부분이다. 이번 봄은 저만치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환난이 닥치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서로의 지혜를 모아 헤쳐 나갔다. 예로부터 두레와 품앗이 등이 서로 돕고 사는 우리 민족의 고유 품성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올해 꽃은 유달리 하얗고 노랗게 피었지만 저 혼자 처연하게 봄을 가로질러 간다. 이런 날들이 언제 있었던가? 꽃은 한꺼번에 피어서 예쁘고 아름
세 번째 시집 '땀의 채굴학' 발표 노동의 가치·사회문제 등 조명"투쟁보단 사랑으로 접근해야""나는 사용당하는 자/ 마르지 않을 것처럼 젖는다/ 유령처럼 반짝인다/ 일단의 유니폼이/ 찜질방을 직조한다/ 땀은 보수라네/ 지극히 적극적인" 김용권(58) 시인이 '수지도를 읽다', '무척'에 이은 자신의 세 번째 시집 '땀의 채굴학'을 최근 발표했다. 1~3부에 걸쳐 총 60편의 시가 책에 담겼다. 김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이다. 3월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대의 향기가 봉투를 열고나올 거 같은 날이면 추억의 언덕으로 올라가서 아름다운 전갈을 기다린다. 이 전갈은 붉은 소인을 물고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온다. 온갖 생각으로 퍼 올린 여러 겹의 이름을 두르고 온다. 오만가지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도 질병이라지만, 그리움은 오래 떠돌다가 뜻밖의 소식을 물고 왔다. 전갈이라는 편지에 물려왔다.우리는 오래전부터 편지를 써 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봉투 속에 담겨서 그녀에게, 혹은 그 남자에게 전달되어 약속의 날들이 이어졌
정월 대보름이 지났다. 세상 만물이 휴면의 시기를 보내고 통성명으로 일어서고 있다. 정월대보름을 지나면 농부들은 농사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가락들판은 내 생애 가장 분주한 기운으로 물길을 틀 것이다. 겨울의 빈 슬픔이 다 지나가고 다시 채워야 하는 사랑으로 일어서고 있다. 비움과 채움은 자연의 순리이면서 우리 인간의 넘치는 욕망을 누그러뜨리는 정화조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생명의 봄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모르지만 끝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시간 속에 우리는 있다. 신이 휘두르는 삶의 작대기가 무지막지 할 때도 있다. 삶의 첫머리에
오늘의 말들이 도착했다. 기억의 유물창고에 한 개를 집어넣고 또, 새로운 하나를 꺼내어들었다. 소망하는 일들이 바늘처럼 일어선다. 황금 돼지는 떠나고 경자년이 흰쥐의 모습을 두르고 아름답게 왔다. 올해 어떤 꿈으로 나의 가치를 높일 것인가? 꿈의 실체를 아름다움에 두고 실현 가능한 모습을 떠올린다. 기어이 내가 살아내야 하는 내일을 그려 나간다.꿈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자는 그리움의 달력을 걸어놓고 환상 열차를 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외로움의 창고에서 사랑이라는 막대를 찾아 들고 사막을 찔러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고독한 자는
나는 기다린다. 오지 않는 것들을, 세상에 없는 것들을, 천천히 읽고 또 쓴다. 무념의 세계, 기다림에는 포착의 미학이 숨어있다. 북두칠성. 저 깊은 계곡을 누가 먼저 건너갔는가? 속도에 중독된 사람들이 길을 찾아 떠난다. 배고픈 자 국자를 들고 주름상자 같은 자신을 파먹고 있다. 비산되는 시간을 인화하면서 선연히 떠오르는 퇴행을 못질해 놓으면 밤을 가로질러 가는 별의 궤적. 떨어진다.경매로 넘겨받은 새벽이 다발로 풀어진다. 묶여온 밤의 전표에는 아삭한 몽상의 이슬이 묻어있다. 시장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새벽을 맞이한다. 공판장
가을 추秋. 가을이면 온 몸에 멍이 든다. 살랑대는 바람에도 우수수 몸이 떨린다. 어디를 가도 감출 수 없는 바람의 아우성이 넘치고 있다. 산과 들,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것은 없다. 차마 하지 못한 말과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이곳저곳으로 떨어져 뒹굴고 있다. 가을 '秋'의 뜻글자를 풀어보자면 메뚜기를 불(火)에 태워 농작물(禾)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락 들판이 비워지고 곡간으로 들어선다. 이때, 농부는 바람의 끈을 자르고 가장 부유해지는 시간의 육즙을 짜내는 것이다.농부의 가을은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불쾌지수가 높고 살벌한 뉴스들이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여기서 장식이란 말을 쓰기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장식이란 말은 예쁘게, 고상하게 치장 한다는 것인데 살벌하고 인정미 없는 사건 사고에다 갖다 붙이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인식하는 시 한줄 매만지기도 사치가 아닌가 싶어진다. 우리는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흔한 물음이지만 대답 하기란 매우 어려운 질문 앞에 있다.매일 아침 출근길을 나선다. 쏜살같이 터널을 향해 간다. 이곳은 차량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출근길에 교차로에 선다. 무수한 사물이 끌려왔다 끌려간다. 붉고 푸른 눈들이 서로를 보고 있다. 낯선 얼굴이지만 어디서 본 듯도 하다. 초초하게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신호등에는 시끄러운 침묵이 걸려있다. 출근길에 몇 년을 보아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하는 것은 어디로든 흘러간다. 흘러가지 않는 바닥에 박힌 살대뿐이다.붉은 비명과 푸른 소음이 뒤섞이는 교차로에는 나를 당기는 화살이 걸려있다. 그곳은 나의 사선이었다. 사선에서는 어디론가 날아가서 과녁에 박혀야 한다. 그 많던 과녁은 어디로 갔는가? 나는 너무
저기 아련한 기억이 걸어온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 아이 집이 보인다. 담벼락에 얹어놓은 내 마음도 보인다. 어둠의 솔기가 터지면 하얀 목소리가 잘록하게 번지는 곳에 그 골목이 있다. "친구야 놀자"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귀가 커지는 곳이다. 말뚝 박기, 비석치기, 술래잡기 등, 종일 놀이가 밥인 아이들의 판이 자라는 곳이다. "밥 먹고 놀아라" 하는 어머님 말씀에 약속이나 한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곳, 골목은 주인이 없다. 노는 아이들의 자리인 것이다.골목은 주거지의 개방공간으로, 주민의 생활공간이면서 지역
요즘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왜 인문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인문학이란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간이 가야할 방향을 찾아가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의 발달은 부의 축적을 가져왔지만 인간을 기계화 시켜버렸습니다. 그러다 기계화 된 사람들이 기계로부터 해방을 외치면서 인간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결국 인간은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종속적인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찾아보자는 것이겠지요. 여러 시대를 겪고 나온 우리들이 여기까지 와서 앞으로 나아갈
'검은 머리위로 유약을 들이부었습니다 속으로 번져야 하는 시간들이 투명하게 건너왔어요 번져서 녹아내리는 시간은 설렘만으로도 1250도, 이 열렬함이 평정의 고도입니다 두드리면 찰랑찰랑 맑은소리가 넘쳐요 몸을 섞던 첫 마음 그대로 실팍하게 살을 펴는 것입니다 네 속으로 녹아내리는 일이 고래로 아득합니다 달구어진 가마에는 아우성도 안치되어 있겠지요 더러는 물러터진 것과 흘러내리지 못해 뭉친 것도 있어요 아침이 오면 내다 버려야 하는 밤의 재료들입니다 어떤 것은 버리지 못해 빛납니다 어쩌면 이번 생의 가마는 본전을 버리고 망설임
시작인가 싶더니 벌써 1월이 다 지나간다. 희망과 다짐으로 일어선 하루가, 하루를 더하고 있다. 신용목 시인의 말처럼 '천천히 해를 따라 걸으며 늙어가는 무리가 있다면' 그게 우리일까? 꿈의 정거장인 밤을 지나면 영원한 사랑의 공동체로 걸어가서 지난밤을 확인하는 게 우리일까를 생각한다.콘크리트 둥지를 지나 쏘아지는 사선에 서면, 아스팔트바닥에 그려진 화살을 따라 우리는 날아간다. 세상은 과녁 아닌 곳이 없어서 쓸데없이 쏘아올린 살대가 방향을 잃고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한다. 달리다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라는 명을 신으
사물들의 체위는 고요하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햇볕의 고요함과 그것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 평온하다. 제 각각의 자리에서 빛나는 사물들, 평온하고 고요한 이름들에게 뜨거운 감정을 이입시킨다. 하나, 둘 무거운 침묵을 털어내고 사물들이 일어선다. 2018년의 감정 없는 사물들은 소리 없는 소리를 입고 가버렸다.지난해 뿌린 꽃씨가 올해도 피어오르겠다. 피어오르는 그 꽃을 확인하려고 봄바람은 또, 조용히 올 것이다. 가버린 날들은 가버린 데로, 나는 이곳에서 내일을 기다릴 것이다. 내일은 아무리 당겨써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내일은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찢겨 나간 페이지가 나의 찢겨진 일상 같아서 쓸쓸해진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경배하며 365번의 가둠과 쏟아짐, 빗금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찢겨진 달력도 어떤 날은 불쏘시개로, 어떤 달은 아이들의 딱지로 접히기도 했겠지만, 나는 열두 장 달력을 넘기면서 행선지를 빗나간 종이비행기의 궤적을 찾아간다.구겨진 것들이 멀리 가지 못하고 가까이 있을 때가 있다. 시론을 게재하면서 시인으로서 얼마나 진솔하게 글을 썼는가? 그리고 독자들에게 얼마의 공감대를 형성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당신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은 사물들이 자세를 바꾸고 있다. 수려하게 가꾸어 온 자세를 버리고, 슬픈 소리마저 지우고 바람 속으로 가고 있다. 바람이 불면 내 몸을 빌려 울고 있는 것들이 떨어진다. 떨어져서 들판 더 깊은 곳으로 굴러가서 박힌다. 사물들은 제 모습을 다 써버리고 사라질 때, 그것이 마치 내 사랑의 통증처럼 날아오를 때가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외롭고도 슬픈 사물들의 이별법, 그것을 읽는다. 외롭고 슬프다는 것은 바람의 들판으로 혼자 걸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곳으로 걸어가서 붉은 옷감으로 지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