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 탕에 넣을 무를 나박나박 썰다가 한 입 베어 먹는다. '와그락' 상쾌한 소리가 입 안에서 울린다. 와그락 소리가 어금니에 생기면서 '무수태평'(無數太平)이란 말이 떠오른다. 시원한 무맛이 알싸한 추억을 불러낸 신호인 셈이다. 겨우내 텃밭 한 귀퉁이에 지푸라기 거적을 덮어쓰고 바람이 들지 않게 땅 속 깊이 묻어둔 무. 할머니는 무를 드실 때마다 '무수태평'이라는 말을 외치고 드셨다. 그 무를 하나씩 꺼내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화롯불을 쬐며 긁어 드셨다. 이가 없어서 숟가락으로 긁어서 오물오물 드셨다. 어렸을 적 가을, 들판을
날이 추워지면 생각나는 간식이 있다. 바로 붕어빵이다. 가격이 저렴해 천 원짜리 한두 장으로 몇 마리 사서 걸어가는 동안 먹으면 추위를 잠시 잊을 수도 있다. 6·25 시절 만들어졌다는데 겨울이 70번은 더 지났어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변함없이 사랑받는다. 붕어빵을 개발한 사람은 바닷가 사람이 아니고 내륙 사람일 것이다. 왜냐하면, 바닷가 사람이라면 붕어보다는 고래빵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륙이라도 소나 돼지 같은 동물도 있고 다른 생선도 있는데 왜 하필 붕어일까? 우리가 냇가에 놀면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민물고기가 붕어
글에 대한 사랑·열정 담아내"코로나에도 성장하는 사회" '그동안 우리는 눈빛을 보며 이야기 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두 손을 맞잡았던 짧은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 되는지 멀어지고 나서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생소했던 거리두기도 지나고 보면 나쁘지 않았고 훗날 떠올려보면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 한 권의 책도 훗날 꽃바람 같은 여러분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김해수필협회(회장 이정심)가 지난 14일 출판기념회를 열고 두 번째 수필집 '우리의 도전'을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지속되
가야문화예술진흥회(회장 김미정)의 2021년 정기공연 '한글사랑 나라사랑'이 오는 17일 오후 7시 김해문화원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지난달 문을 연 김해한글박물관의 개관을 축하하는 의미로 마련됐다.김해의 자랑인 한뫼 이윤재 선생·눈뫼 허웅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하는 내용을 담은 시낭송극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특별순서로 마술공연과 살풀이 공연도 포함됐다. 사회는 가야문화예술진흥회 사무국장이자 시낭송가인 신경애 씨가 맡는다. 1부 무대는 훈민정음 낭독, 김미정 회장의 인사말, '선조국문유서'(宣祖國文諭書·보물 제951호) 낭
주거문화가 바뀌었다. 몇십 년 전만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보다 주택에 사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금은 아파트 거주 인구가 주택 인구보다 훨씬 많다. 이 차이는 대도시일수록 더 심하다. 땅은 좁은데 자기 집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도시에 빌딩 숲을 세운 셈이다. 이젠 시골에도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옛부터 신발을 벗어 댓돌 위에 두고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의자가 있는 게 아니어서 그냥 방바닥에 앉았다. 손님이 오면 방석을 내어 그 위에 앉게 한다. 밥상도 무거운 걸 부엌에서부터 들고 들어와 먹는
무인시스템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셀프 주유소, 주차장 정산시스템, 무인카페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무인(無人), 주인이 상주하지 않는단 뜻이다. 무인카페에 들어가 보면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비교적 쾌적한 실내다. 손님이 스스로 키오스크에 주문과 결제를 한다. 기계가 만들어준 커피를 뽑아 마신다. 예전의 길거리 자판기가 고상하게 원두를 속에 담고 실내로 들어왔다. 동전을 넣고 세탁기를 돌리는 무인 빨래방도 많이 생겼고, 거기에 무인 과일 가게,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많다. 상주하는 사람이 없
김해수필협회, '김해수필' 발간 동상동 원도심 역사·발전사 주제"지역사 널리 알리는 계기 되길""가뭄 속 비 한 방울도 단비로 여기며 굳은 땅을 뚫어내고 듬성듬성 꽃을 피워냈습니다. 수수한 글들이 모여 향기로운 꽃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지면에 음표같은 이야기로 글을 풀어냈습니다." 김해수필협회(회장 이정심)가 지난 12일 기념출판회를 열고 창간호 '김해 수필:연자루에서 김해를 노래한 그 날'을 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김해의 역사적 이야기와 사실, 발전사에 대한 내용이 핵심
6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이사를 하면서 떠나온 부산 동구 초량을.작은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했다. 가보자가보자 말만 하고 아이가 대학생이 되도록 못 가보고 시간이 흘렀다. 김해에서 부산 초량까지 40분이면 갈 거리를 살다 보니 발걸음 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아이가 그렇게도 먹고 싶다는 그 음식점의 쭈꾸미. 우리가 단골로 드나들 때도 손님이 별로 없어서 가게가 곧 문을 닫을 거라 생각을 했던 그 집. 낙후된 도시로 군데군데 재개발이 시작 되었다는 소식에 당연히 헐렸을 거라 생각을 했다. 주말만 되면 먹고 싶다는 그 집의
"저 어린것이 조막만 한 손으로 돈 벌러 다닌다네."아버지는 마실 온 동네 사람들을 앞에 두고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아홉이었다. 잠깐 다니러 간 고향 집에서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물론 내가 덩치도, 키도 작지만 그렇다고 '저 어린것' 이란 소릴 듣기엔 어림없는 나이었다. 아버지에게 막내딸은 나이가 많건 적건 그저 저 어린것으로 보였을 것이다.얼마 전, 포털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내가 살다 살다 예비군을 태워다 줄지는 몰랐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 밑에
수매(收買)이정심 시인 구불구불 달빛 따라 흐느적거리며가요 한 곡조를 되돌이표처럼 부르며 오신 아버지,마른 볏단 쓰러지듯 마루에 누운 아버지의 주머니 속엔벼 수매 등급표가 꼬깃꼬깃 들어 있었다'등외'아, 이 한 단어에 아버지의 절망이 나락 알만큼 쌓였으리라술 한 잔 들이켜지 않고서는 다리가 풀려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으리라한 잔 두 잔 들이켜는 막걸리 사발에마음이 풀어지고 다리도 풀어지고눈도 풀어지고 세상도 풀어졌다풀어진 아버지의 눈 속에풀어져 흐르는 달빛비록 내일이면 다시 절망에 싸일지라도지금은 풀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