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역사책 '고사기'에 기록 남아철 바탕 가야·불교문화 수용 전해져능 전체 세로 375m·가로 215m 규모일본 3대 신궁 중 하나인 '이세신궁'가야계 신 '가라카미' 내궁 본당에 모셔부뚜막·철의 신으로 전해 가야의 흔적일본 열도에 남아있는 가야의 흔적을 찾아 후쿠오카의 카야산(可也山)과 니시진마치(西新町) 유적, 오카야마의 기비츠(吉備津) 신사와 오사카의 가라쿠니(辛國) 신사를 차례로 둘러봤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여정만이 남았다. 이번에는 가야와 연관성이 있는 일본의 천황과 일
주신 '가라쿠니무라지'의 '무라지'고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신분 중 하나가라쿠니는 한자로 '韓國'으로 표기가야인을 주신으로 받듦을 방증왜에게 가야는 경외의 대상임을 짐작오카야마의 기비츠(吉備津) 신사를 뒤로 하고 오사카로 향했다. 가야의 신을 모시는 오사카의 한 신사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이름만으로도 한국과의 관계를 짐작케 하는 가라쿠니(韓國) 신사. '가라(韓)'는 가야국의 '가야'에서 음이 유래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본 경제의 중심지인 오사카에
신사 소재 소우자에 가야 옛 지명 남아메이지정부도 '카야군'으로 편성해 통치두 개의 지붕 합쳐진 양식 일본의 국보4~5세기 일본 건너간 한반도 왕자 '우라'기비츠와 싸운 설화로 '가야의 땅' 추정부뚜막 신당도 가야 주거시설 전파 방증 일본에는 곳곳에 신사(神社)가 있다. 신사는 일본의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사당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본 신사의 이미지는 곱지 않다. 세계 2차 대전의 전범은 물론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한 전범까지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 관료들이 참
카야산(可也山·365m) 취재를 마치고 후쿠오카로 돌아오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산에 '가야'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면 수많은 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인들은 어디에 정착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일본에 어떤 문화를 전파했을까. 일본 최초 발견 부뚜막 포함된 부엌가야 철기 문화양식 닮은 제철 흔적김해 출토물 닮은 토기 등 대량 발굴3~4세기 건너간 이주민 유적지 추정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발굴조사학자들 "민간교류·문화전파의 증거"이후 고교 건물 지으며 묻어
가야는 우리나라 고대사의 수수께끼다.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세운 이 나라는 500여년 간 김해를 수도로 정하고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일본과의 왕성한 교류를 통해 국가 부흥을 도모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최근 들어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제4의 제국'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야의 유적과 유물이 많지 않은 탓에 대부분의 역사는 장막에 가려져 있다. 역사고고학자 등 전문가들은 고대 가야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일본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왜)과 교류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