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이 손 내려요. 누가 보면 평소에 안하던 짓 한다고 닭살이라 안하겠습니까." 조명숙 소설가가 쑥쓰러운 듯 최영철 시인에게 면박을 준다. 카메라 앞에 선 조명숙이 긴장할까봐, 최영철이 그의 어깨에 올린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여 간지럼을 태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면박을 들은 최영철은 말없이 웃으며 손을 내린다. 면박을 준 쪽도 들은
그가 처음부터 설치미술을 했던 것은 아니다. 박재현은 원래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당시(1984년)에는 그 개념 자체가 없어 '설치미술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때 학교에서 흑백텔레비전을 천정에 매달아 놓고 트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도 '이런이런 것을 만들어봐야겠다'라고만 생각했지 '설치미술을 하겠다'
김해 생림면 봉림리는 유독 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가는 마을인 듯 느껴진다. 그곳에서는 팔순이 넘은 듯한 노파가 아주 느린 걸음을 옮기고, 밭일 하는 이는 일을 즐기듯 천천히 손을 놀리고 있다. 차사발명장 안홍관의 작업공간인 '지암요(志岩窯)'도 그 속에 있다. 마을입구에서부터 지암요라 쓰인 팻말을 따라가면 바로 찾을 수 있지만, 그래도 헷갈린다면 누렁 강
춤은 에너지의 흐름을 미처 통제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철저히 통제하며 추게 된다. 그렇기에 굿판에서 신이 나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나, 손가락 하나까지 짜인 안무에 따라 움직이는 것 모두 어쨌든 '춤'이다. 무용가는 이 두 가지 종류의 춤을 모두 자유자재로 추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되,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나
연극이 시작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암전'이다. 불이 꺼지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펼쳐져야 비로소 연극은 시작된다. 관객들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무대는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암전으로 인해 관객들은 연극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 앞을 밝히며 나타나는 일종의 '환상' 혹은
간결하고 담담한 선, 서예와 그림 양수겸장분산 아랫쪽으로 난 산복도로를 따라 김해 동상동 '김해고 동문회관'으로 간다. 계단에서부터 먹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먹냄새를 따라 2층으로 올라 가니 '서화갤러리'와 '서화연구실'이다. 자그마하고 소박한 갤러리. 어린이들의 그림이 전시돼 있고, 실내에서는 너댓명이 조용히 붓글씨를 쓰고 있다. 교복을 입
목판화는 재미없는 예술 장르일 수 있다. 팝아트만큼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요, 추상화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오해다. 목판화는 그 모든 것들을 쉽게, '한 눈'에 보여주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그 결을 오래도록, 세세히 지켜보는 사람에게만 진가를 보여주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이상의 세월을 목판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