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친척이 한자리에 만나기란 쉽지가 않고 형제, 자매도 그러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도 크고 심리적 불안을 겪기도 한다. 정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은 혈연과 지연, 학연을 중시하지만 정을 주고받으면서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이사를 했을 때 떡을 돌리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친해지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사 떡이 이웃과 친분을 쌓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다세대 주택에 이사하고 떡
시낭송 강의를 하다 보니, 다른 영역 작가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시를 쓰는 데 있어 다양한 소재의 마련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눈으로만 보았지,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던 그림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프랑스 화가 모네의 작품들을 만나게 됐다. 모든 예술가들이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예술 활동에 정진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겠지만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색채의 충격에 반응한 모네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는 순간까지도 빛에 반사된 풍경을 화폭에 고스란히 옮기던 인상주의 화가 클
글 한 줄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꿔놓는다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이 인간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좋은 꽃이 물질의 향기라면 좋은 책은 마음의 향기일 것이며 행복의 바이러스다. 일찍이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안 보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했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수세기동안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라고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
어머니! 요즘 들어 부쩍 오랜 지난 먼 추억 속의 꿈을 자주 꾸게 됩니다. 세월의 나이 잊어버렸는지 육순의 나이는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오늘 찬 공기 사이 잔뜩 찌푸린 밤하늘을 바라다봅니다. 잔뜩 흐려져 흘러가는 구름 속에 세월의 나이도 같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답니다. 지난 밤 내내 삭신이 쑤셔오니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내 신체가 일기예보 전조인지 기상대는 나이 따라 오는가 봅니다.바보상자 화면에는 반복된 전염병 뉴스만 중계 방송하듯 전해져 오고 애꿎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대다 꺼버리고 아예 라디오 볼륨을 올렸습니다. 지루
오일장이 열리던 날.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유난히 군것질을 좋아하는지라 아이들이 어릴 땐 과자를 나눠 먹던 일이 종종 있곤 했다. 매번 종합검진 때마다 중성지방이 높아 식단에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그나마 부담이 적은 옥수수 뻥튀기를 사서 궁금할 때 꺼내먹곤 했다. 모처럼 선선하고 하늘은 한층 높던 오후, 뒷짐 지고 장터가 열리는 공터에 갔다. 추위는 물러났지만 때가 때인지라 몇몇 분들만 마스크로 무장을 한 채 구경을 나오셨다. 장사하시는 분들도 유난히 적게 나오셨는데 경기가 안 좋다고 연일 뉴스에 나오더니 오일장에도 영향을
어느 대학 교수의 강의 시간이었다. 그는 자식의 진로를 부모가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열변을 토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부모가 자신이 못다 이룬 꿈길을 아이들로 하여금 걷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그의 이야기는 맞다. 그만의 이야기겠는가, 지도층 인사들의 대략 공통적인 의견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견은 다르다.자식의 앞날에 대한 부모의 열정! 자식 교육 잘하게 시켜 호의호식하며 살겠다는 것도 아닌데 당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는 대한민국의 부모들, 죽기로 돈을 벌어 죽으라고 교육을 하는
헝클어진 새집 머리 모양으로 등짐을 지고 길을 나서는 병아리가 노란 버스에 선생님 손잡고 탄다. 눈 내린 아침 아파트 나뭇가지에 새집이 앉아 있다. 어미새가 입에는 무엇인가 물고 있다. 아마도 이 근처에 새집이 있는가 보다. 아이들이 무사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미 새의 정이 느껴진다.직장을 그만두고 두어 달 집에서 쉬면서 남들처럼 등산을 다닌 적이 있다. 남한산성 해거름 하산길은 늘 아쉬웠다. 검단산 쪽으로 물결치던 산줄기는 치마폭을 추스르듯 어둑해져 가는 길이었다. 호젓한 산모퉁이에 서서 고골촌을 보았다. 옛날 초가집 지붕 굴뚝에
토종으로 살아 일깨워 가는 우리 생의 교감을 위해 사랑도 미련도 떨쳐 내어 빈 바다에 띄워 보낸다.그 후련함이야 이루 다 말이 필요할까. "무위하라"고 하지만 그 또한 의미 있을까 하는데 무위는 곧 안온한 일상으로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삶에 창작적인 많은 생각으로 이어 사색하며 재미있는 머릿속으로 소지하며 살란 유의미이리라.적당의 척도는 있으리니 모든 물학적 어떤 발산으로 살아야 할까. 욕망대로 다 하려나 하늘의 노염 있을까. 주절이다 가는 우리 삶인가 한다. 어차피 우리가 만든 긴 터널과 그물에 출렁이다 우주 속으로 소멸하는
내 어릴 적, 수의 개념을 익힐 때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덧셈과 뺄셈이었다. 더하기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빼기는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초등학교 시절엔 수학을 싫어했고, 덧셈보다는 뺄셈이 더 어려웠다. 그래도 학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수학이라 열심히 했고, 어머니의 가정 학습 덕분에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서 수학은 다시 어려워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현대는 셈에 밝고 덧셈과 뺄셈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그 방면에 밝지 못해서 이렇게 주변인으로
재작년, 다우들과 나뭇잎을 다 떨군 가로수가 오스스 떠는 계절에 목공방을 찾았다. 따끈한 차와 새로운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고재 다탁에 눈길이 모였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묵직한 목재 결이 탐났지만, 다탁 끄트머리에 붙여진 만만치 않은 가격에 고향 빈집 대문이라도 떼어 와서 다탁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농담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진열장 앞을 서성거리다가 오도카니 앉아있는 그릇이 눈에 띄었다. 명판에 적힌 이름이 '보듬이'다. 두 손 가득 잡힐 크기로 구 윗부분이 조금 잘린 듯하다. 찻잔이라 하기에는 크고 그릇이라
돌아보니 김해 정착 이십년이 넘었다. 안양에서 태어나 삼십년을 살다가 부산에서 십년을 그리고 김해에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김해를 알기 전 김해라는 곳은 교과서에 수록된 김해평야라는 어휘 하나로 인식된 지역이었다.부산에서 살다가 김해로 온 후 한동안 나는 김해사람이 아니었다. 당시 운행하던 이마트 셔틀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나가 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했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을 만나러 부산을 들락거렸다. 김해는 내가 잠을 자는 곳이지 생활문화공간이 못되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도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은 소도시였다
세상이 어떻더란 말 하지 말고, 세상이 뭐 같더란 말 하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자.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은 올 것이니, 이 사람과 살았으면 저 사람과 살았으면 하는 후회하지 말고 살자.돈 많이 벌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자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 해 본 적이 있는가? 왜 사는지 고민하고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 해 본 적이 있는가?사람의 삶, 인생이란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순간을 영원처럼 살도록 노력하고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아가며, 작은 것에도 소중함을 깨닫고 주변 사람들에게 정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