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다. 봄바람이다. 가장 부드러운 것들도 몸에 닿으면 간지럽다. 보들보들 솜털 같다. 세월은 놀랍다. 생명의 움을 어쩌면 이렇게 빨리도 들불 번지듯 틔우는 것일까? 여기저기 노오란 개나리꽃 제 꽃잎 여는 소리 들리고, 오리나무도 가지마다 싱그러운 이파리 파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굼뜬 사람의 몸마저도 이 봄날에게 무장해제 당하고 마는데, 봄을 기다린
진례 신정봉에서 하산하는 길. 봄바람이 그윽하다. 산의 안부까지 내려와 소나무 숲에서, 잠시 가는 길을 접는다. 햇볕 다사로운 곳, 한 토막의 잠으로 남가일몽을 꿈꾸는 중이다. 그러나 그 꿈 또한 헛되고도 헛될 뿐이다. 늘 자연과 벗하고픈 사람의 일생조차도 욕심일 터. 곁에 두고 있는 산봉우리에게도 마음 한편 주지 못하고 만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겨울을 지나며 오래도록 겨울비가 내린다. 메마른 산과 강이 젖고, 허허로운 벌판도 촉촉하게 비에 젖는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가슴에도 비가 내리는데, 몇몇 그리운 이들과 따뜻한 술자리라도 차리면 참으로 기껍겠다. 큰 비가 온 다음날, 진례 평지마을을 찾는다. 산 속에 묻혀 있듯이 고즈넉하다. 김해의 대표적인 닭백숙마을로 늘 사람들이 북적이던 곳인데, 겨울이
'깊은 밤 찰박찰박, 낙동강 물길 따라 흐르다 보면, 하늘에는 휘영청 보름달 떠오르고, 강물 위로 그 달빛 내려앉으니, 달을 품은 섬 하나, 어슴푸레 물길 위에 어른거린다.' 대동면 월촌리 월당마을 강안에는, 폐선처럼 스러진 나루터가 하나 있다. 월당 나루가 그것으로, 한 때는 사람을 태우고 강을 건
김해를 대표하는 주산(主山)으로 치자면, 단연코 신어산(神魚山)을 첫 손 꼽아야 할 일이다. 가락국 전설을 고스란히 품고 있으면서도 김해 시가지 중심에 자리해, 시민들의 몸과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신어산. 말 그대로 신어(神魚), 신령스러운 물고기가 머무는 산이다. 그것도 가락국을 상징하는 아유타국의 쌍어(雙魚), 즉 신어 두 마리가
사람은 홀로이 길을 떠나는 존재다. 모롱이 모롱이 외로운 길을 휘돌아 가다보면, 거친 산봉우리 몇 개 넘을 때도 있고, 눈물 글썽이는 윤슬의 강물을 만나기도 한다. 이 땅과 저 땅의 경계, 생성과 소멸의 고갯길에서 주저하는 삼라만상을 만날 수도 있다. 산을 홀로이 걷다보면 특히 이런 상념들이 길동무 하듯 따라다닌다. 인생의 고갯길과 벅찬 삶의 비탈을 만나듯
12월이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한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살(矢)'같이 빠른 한 해가 벌써 그 뒷모습을 보이며 일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2012년.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이번 산행은 지나간 1년을 되돌아보면서, 대동의 자연마을을 감싸고 있는 '편안한 산(安
겨울 초입, 모든 생명들이 다음 생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 종교의 윤회를 믿지 않더라도, 자연은 각 계절에게 '삶의 목적'을 부여하고, 그 삶을 기록하게 하고, 그 삶에서 다시 물러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쳤다. 그들 '생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거든, 미련 없이 자신을 털어버리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겠다. 겨울로 들며 모든 생명들은 제
가을의 끝을 맞는 굴암산으로 등산객들이 오른다. 장유면 신암마을을 뒤로 병풍처럼 감싸 안은 굴암산 줄기가 울긋불긋, 그야말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마을 집집마다 감나무가 빨간 감을 조랑조랑 달아놓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골의 물길이 청량하고 깨끗하다. 나직하게 수런거리는 물소리가 그 울림은 오히려 더 크다.이번 산행은 깊은 가을 속에 파묻혀 있는 굴암
가을이 깊어가다 서서히 그 정점을 맞이하고 있다. '깊어가는 것'은 '안으로 품는 것'이고 '주변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 '깊어감'을 되새기는 산행으로, 주촌면과 진례면의 경계에 있는 황새봉을 찾는다. 이번 산행은 가을 숲길의 고즈넉하고 호젓함을 찾아가는 길이라, 다소 짧은 코스에 담담한 오르내림의 산행이다. 혹 가을 능선을 길게 즐기려면
김해의 계곡 중에서 물 깨끗하고 골 깊기로는 장척계곡을 빼놓을 수가 없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신어산 긴 산줄기가 장척계곡으로 발을 담그고, 실타래 풀어놓은 듯 구불구불 생명고개로 길을 내는 임도는, 나그네의 가을타는 마음마저 아련하게 만든다.이 장척계곡을 감싸 안고 있는 산줄기 중 오른편이 신어산 줄기이고
김해의 입장으로 볼 때 용지봉은 특별함이 있다. 신어산, 불모산, 무척산과 함께 김해의 주산(主山)이기도 하고, 가락국 신화가 골골마다 스며들어 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렇게 용지봉은 산 전체가 설화로 맺혀 있다. 특히 용이 노닐다 승천했다는 대청계곡과 산 정상에 용 발톱으로 할퀸 자국의 설화는 김해사람이면 다 알 정도다. 이번 산행은 남방불교의 전래자 장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