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부산대 사진부원들과 대저면 일대를 촬영하고 둑 아래 큰 길을 따라 이야기꽃을 피우며 귀가하고 있었다. 한 농부가 쟁기를 지게에 얹은 채 소를 몰고 낙동강 둑 위를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침 아름다운 구름이 저녁 노을에 불타고 있었다. 즉시 둑 너머로 달려가 사진을 역광으로 찍었다. 밭고랑 같은 구름이 밭을 갈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마
김해 대저면과 부산 구포를 연결하는 구포다리는 1932년에 완공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1959년 태풍 사라호 때 일부 교각이 약간 침하하는 바람에 바다쪽으로 기울어진 다리를 걸어서 건너던 기억이 난다. 낙동강 물과 남해 바다가 만나는 구포 다리 부근에는 어족자원이 풍부해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가 많았다. 무더운 여름철 한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앤드류 와이어스(1917~2009)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그림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미국의 광대한 대자연과 그 안의 사람, 사물을 정밀하게 그린 국민화가였다. 그 그림을 보면서 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 바람을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나도 보이지 않는 바람을 사진에 한 번 담고 싶어 바람 부는 날 명지 신포에
1958년 김해 명지. 홀로 사시는 한 할머니가 초막집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갈대 등을 정리하고 있다. 지금은 부산 땅이 돼 버린 명지에는 강변 등에 갈대가 흔해 초막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김해에는 초막집 외에 초가집도 많이 있었다. 물론 어디 김해 뿐이었으랴. 집을 지을 마땅한 재료가 없었고 다들 가난했으니 농사를 짓고 나온 짚이나 갈대로
1958년 6월 18일 김해군 녹산면 산양리(현재 부산 강서구 녹산동) 조그만 마을. 막내 외삼촌이 장가가던 날이다. 요즘은 보기 힘든 전통혼례식 풍경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엄숙하던 식장이었지만, 누군가의 한마디에 온 동네가 떠나갈 듯한 함박웃음이 터졌다. 근엄하게 서 있던 신랑은 좋아서 입이 귀 밑에 걸렸다. 각시는 좋기는 한데 티를 못 내고 수줍어 다소
1958년 가을 막내 삼촌이 장가가던 날. 작은 언덕배기 신부댁 마을의 개구쟁이 남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던 여학생들의 고무줄을 잘라와 뛰어넘기 놀이를 하고 있다. 1차 뛰어넘기에 실패한 아이가 멋적은 듯이 웃고 있다. 1940~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다 한두 번씩은 경험을 했었으리라. 놀이기구가 거의 없었던 당시에는 고무줄
놀이기구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농촌에서 아이들은 무엇이든 이용해서 나름대로 즐기며 건강하게 자랐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숨바꼭질, 제기차기, 연날리기, 말타기…. 한 아이가 삽 두 자루로 말놀이를 하며 갈대로 엮은 담장 곁을 지나고 있다. 좀 더 숙달된 아이들은 삽 한자루로도 최근의 '스카이콩콩'처럼 놀았다. 김해 명지에는 사방
1959년 가을 부산대학교 사진부 학생들은 김해 대저면(현재 부산 대저동) 쪽으로 촬영을 하러 갔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과 넓은 들판, 긴 강둑은 젊은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 했다. 멋진 작품을 하나 찍겠다며 각자 뿔뿔이 흩어져 열심히 찾아 헤맸다. 그때 추수가 거의 끝나 텅 빈 김해평야에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한 노파가 이삭을 줍는 모습이
1959년 추석 명절을 쇠러 고향에 갔다. 추석 전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태풍이 몰아닥쳤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다 그 이름을 기억하실 것이다. 바로 사라호 태풍이었다. 그해는 내 생애 가장 슬픈 추석이었다. 사라호는 우리나라 기상 관측 사상 최대의 피해를 냈다. 924명이 죽거나 실종됐고 이재민은 98만여 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태풍이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녹산 수문이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부산 강서구로 돼 있지만 예전에 녹산은 김해 땅이었다. 녹산 수문은 만조 때 바닷물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막고, 홍수 때는 강물의 수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해 명지국민학교에 다닐 때 큰 홍수가 나 집이 물에 잠겼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녹산 수문을 열 수가 없었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질 무렵, 어린 목동이 배불리 풀을 먹은 소를 집으로 몰고 가기 위해 소말뚝을 뽑고 있다. 이 장면은 여러 방향과 구도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고가의 흑백필름으로 촬영하다 보니 여러 장을 찍기 힘들었다. 그래서 촬영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진의 제목은 '목동'이다. 내 사진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
옛날 낙동강 인근에서 안동, 풍산, 수산, 삼랑진, 구포, 하단 등에 선착장이 번창했다. 6·25 전쟁 때는 국군과 유엔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큰 역할을 했다. 비옥한 김해 삼각주 평야는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구포다리 부근은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으로 어족이 풍부해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진 속의 배는 주낙(긴 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