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출신 이주 노동자인 브른(29) 씨는 얼마 전 설레는 마음으로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내와 두 딸을 만나러 4년 만에 네팔로 가는 길이었다. 그의 여행용 가방 한 켠에는 아내와 두 딸에게 줄 옷과 초콜릿 선물이 담겨 있었다. 4년 만에 만나는 가족이기에 브른 씨의 마음은 무척 설레였다. 고향이 다녀온 브른 씨는 떠나올 때 네 살과 두 살이었던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사는 편입니다.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는 저를 인정해 주는 직장이 있고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고, 사업을 해 보겠다는 꿈도 있는데 불행할 틈이 있겠습니까?" 필리핀 이주노동자인 레이 바우티아 벨트란(Rey Bautista Beltran·38) 씨는 주촌면에 위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3월의 인제대학교 캠퍼스. 도서관에서 만난 마의(25)씨는 인제대학교 일반대학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이다. 생긋생긋 웃는 듯한 인상을 가진 그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우리말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 언뜻 보면 한국인 학생처럼 보인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 한국어 공부를 한 뒤 바로 한국으로 유학왔지요. 고등학교 때
"외국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외국인 전용체육관이 생긴다면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고 저 같은 외국인들이 김해에서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주촌면의 한 기계가공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유다(49·인도네시아) 씨는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운동 마니아다. 배드민턴 외에도 등산,
선반 엔지니어로 김해의 한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도반추(29)씨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 4월을 두고 "몹시 기다려지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말한다. 내색을 안하려는 눈치지만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아쉬움이 그의 속내인듯 보였다. 그에게 4월은 이제 갓 태어난 아들과 사랑스런 아내를 만나는 달인 동시에 정든 한국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김해의 동상동 거리. 전통시장으로 가는 길모퉁이엔 레당타오(31·동상동) 씨가 운영하는 바비큐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다. 그는 5개월 전부터 이곳에서 베트남식 바비큐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주 출입문 옆으로 나 있는 커다란 미닫이 창문으로는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주 메뉴는 오리와 돼지 바비큐 요리. 숯불
김해시 삼계동에 사는 멜로디(25·필리핀) 씨는 한국에서 생활한 지 7년 된 두 아이의 엄마이다. 지난 2006년 회사원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와 아들과 딸을 낳았고, 남편과 시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알콩달콩 살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단지 남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시작한 모험이었지만 헤쳐가야 할 게 한두 가지
이주여성들은 한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쉼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고 육아, 시부모 부양, 남편 뒷바라지는 물론, 틈틈이 짬을 내어 한국어 수업을 받는다. 일부 이주여성들은 남편을 돕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적지 않은 문화적 차이를 경험하기도 한다. 3년 전 한국에 온 필리핀 이주여성 제니린 다이리트(36&m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3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함께 일했던 한국인들에게는 월급을 다 줬는데 말이죠." 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로이(26) 씨는 지난 6일 오전 체불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김해의 한 외국인지원기관에 상담을 받으러가는 길이었다. 앞서 일했던 회사 역시 갑작스럽게 문을 닫으면서 2개월 치 월급을 지급
"시아버님이 꿈에 금덩어리 5개를 받았는데 1개를 다른 분에게 주시고 4개를 가지고 계셨대요. 태몽이었죠. 그래서 딸이 네 명인가 봐요." 지금 생각해도 시아버지의 태몽이 신통방통했던 딸 부잣집의 엄마 다케모토 가요코(41) 씨. 가요코 씨가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지 올해로 15년째다. "처음 한국말을 배울 때와 달리 지금은 완
"입맛이 바뀐 것 같아요. 일본에 가서 일본음식을 먹어도 매콤한 김치찌개가 생각나니까요." 한국으로 시집을 온 지 16년째인 오오시마 키요미(47) 씨는 처음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힘들었던 기억도 잊어버릴 만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저녁식사 시간에 남편과 아기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가
"8명의 가족이 한 집에 살아요. 집안이 매일 북적대고 정신없죠. 하지만 너무 행복합니다." 4명의 아이를 시어머니께 잠시 맡기고 삼계동의 모 카페로 달려온 아넬린(39·필리핀) 씨의 첫마디다. 그는 김해 삼계동에 소재한 화정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5년째 재직 중이다. 1998년 필리핀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한국으로 건너
김해시 서상동에서 인도요리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타망라주(32) 씨는 네팔에서 온 '기러기 아빠'이다. 2004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서 일하다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9살인 딸 돌카르를 카트만두에 남겨두고 다시 한국에 왔다. "늘 보고 싶고 함께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돌카르가) 아예 처음부터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생
외국인 근로자 수원탕(27·베트남) 씨는 한국생활을 마감하고 오는 2012년 1월 14일 베트남으로 떠난다. 22살에 처음 한국에 왔으니 6년 만에 귀국길에 오르는 셈이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그가 새로운 삶을 사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한국에서 일해 번 돈으로 굴삭기를 구입해 베트남으로 가져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고향인 베트남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자국 물품을 수입·판매하는 것에서부터 음식점, 통신, 의류, 컴퓨터 판매까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의 종류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각국의 특성을 살린 외국인 상점들의 분위기는 외국인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주민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파키
김해 동상동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근로자 쉼터는 문띠아닝시(37) 씨가 일하는 직장이다. 평일에는 한적한 모습이지만 주말 저녁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주 타깃으로 하는 만큼 이곳에서는 각종 인도네시아 제품들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과자 등 간식거리에서부터 술안주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문띠아닝시 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소외된 사회의 약자…. 네팔 이주노동자 레섬 기미레(Resham Ghimire·34·부투웰)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2년 전 그는 모 제조업체에서 일하다가 프레스기에 손이 잘리는 큰 부상을 입었다. 최소한의 안전교육도 받지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다 오른쪽 손을 잃게 됐고 9번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한국에 오기 전
"남편과 어떻게 만났냐" "남편과 몇 살 차이 나느냐" "시어머니 모시고 사느냐" "너희 나라엔 이런 거 있느냐"…. 중국 하얼빈시 헤이룽장성이 고향인 지춘화(31·외동) 씨가 9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받았던 질문들이다. 질문의 의도가 어떠했든 무심코 던진
"엄마가 한국말을 잘 못하면 아이에게 영향이 크데요. (아이가) 열심히 해도 못 따라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제겐 큰 걱정입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육시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팜 티뎁(Pham Thitiep·27·봉황
남편과는 국제결혼 소개소에서 만났다. 나이 차이는 11살. 이해심이 많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고향 캄보디아는 가난했다. 벗어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렇게 라트모니시 호릉(25) 씨는 나이 스물에 한국 아줌마가 됐다. "전 잔소리를 별로 안하는 성격이에요. 그래도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으면 구박을 좀 하죠." 그가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