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은 시기별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친다. 유소년, 청년, 장년, 말년 등의 시기로 구별을 할 수 있는데, 청년기야말로 인생의 꽃봉오리 시기라고 하겠다.인생의 꽃봉오리에 해당하는 시기에 어떤 꽃을 피우는 지가 참으로 중요한 방향을 만들게 되니 황금과 같은 청년기라고 하겠다. 사람의 얼굴에서 청년기의 세월을 살피는 기준은 여러 가지인데 거의 이마에서
사람의 운명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약,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길흉화복이 계속 순환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부합하는 흐름인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도 길흉화복의 순환성이 드러나니 이른바 유년법(流年法)을 말한다. 물론 조화와 균형이 잘 잡힌 얼굴을 가진 경우 변화의 굴곡이 완만하게 드러나고 부족한 흐름을 만나더라도 평균 수준의 삶을 유지하지만
무엇을 관찰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관상학의 방법 일반은 그 사람의 면상(面相)과 체형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와 기운을 통하여 나름의 결론을 판단하는 것이다.문자의 의미상 '관(觀)'과 '찰(察)'이 가지는 것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관'은 대상을 찾아 접근하는 구도에 있는 것이고 '찰'은 그 대상에게
인생살이에서 뜻대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것은 모든 이의 보편적 소망이다. 하지만 실제 인생을 살아보면 뜻대로 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필자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비슷한 조건, 방법을 사용하여도 어떤 때는 해결이 되고 어떤 때에는 해결이 잘되는 않는 경우도 많으니 삶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운동의 예를 보더라도 그런 속성이 더
어떤 이가 부처님을 찾아가 "부처님,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게 없으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라고 대답했다. 그가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인데 무얼 주라는 말씀입니까?"라고 되물었다. 부처님은 "그렇지
관상학의 교과서로 쓰이는 의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관인팔법(觀人八法)'이다. 이마가 어떠하고 코가 어떠하면 이러하니 저러하니 식의 표현이 있을 법도 한데 왜 사람의 이미지를 크게 아울러서 표현한 '관인팔법'을 가장 먼저 서두에 다루고 있는 것일까? 모든 책이나 글의 앞부분은 가장 중요한 개념을 다루거나 대전제
중국 송(宋)나라 전약수(錢若水)가 과거 공부에 열중하던 젊은 시절에 화산(華山)에서 마의(麻衣)를 입은 한 도사를 만나 자신의 미래에 관한 예언을 들었다. 예언대로 벼슬길에 올라 40세에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고 사람들의 흠앙을 한 몸에 받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벼슬에서 용퇴하였다. 세상의 영화와 부귀를 모두 겪어보니, 추악한 경쟁과 모함이 난무하는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란 말이 있다. 관상에 드러난 기운이 마음의 에너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사람이 가진 기운과 에너지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데 대개 얼굴과 몸, 행동, 기색(氣色)으로 드러난다. 타고날 때부터 갖게 된 모양이나 그런 요소들이 조합되어 이룬 것이 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서 도끼 모양을 가진 사물을 보면 그
관상학에 관련된 책을 읽어나가면 12궁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미간 주위를 가리키는 명궁(命宮)으로부터 턱에 이르는 노복궁(奴僕宮)까지 다양한 부위와 그 의미를 따져 설명하고 있다. 한데 책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하나 보이는데 어떤 책에서는 부모궁(父母宮)이라 하고 어떤 책에서는 상모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또 부모궁을 포함하고 13
옷을 매만져서 입고 난 뒤의 모양새를 사전에서는 매무새라고 표현한다. 모든 일이나 모양에서도 매무새는 일종의 마무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포장이 내용을 모두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물건이 크면 포장이 커지고 작으면 포장이 작아지는 것처럼 내용이 가진 요소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속성을 포장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연 현상도 그리 다르지 않
사람의 삶이 고단한 이유는 늘 욕망의 굴레를 벗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 중에 모든 욕망을 버리고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물론 욕망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정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부질없는 욕망을 버리고 조용히 살고자하는 것도 일종의 욕망이 되니 사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에 나오는 말인데 '안
인체의 모든 부분에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속도 차이로 인하여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다.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이 그것이다. 신체의 성장이나 발달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자라니 관상학적인 해석이 상당히 필요한 부분이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이다. 생리적 대사 활동이라는 생물학적 해석은 현대 학문의 방식인데, 관상학적 해석
몸과 몸 밖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피부와 피모(皮毛), 손발톱이다. 인체의 내부에 있는 기운이 밖으로 펼쳐져 골격과 근육을 이루고 피부에 드러나 형태와 색깔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흡사 어떤 식물의 씨앗이 생태적 환경을 만나면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싹을 만들고 꽃을 피우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모양을 한껏 드러내었다가
어느 대기업의 임원에게 출세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손을 내밀면서 말하기를 "원래 이렇게 단순한 손금이 아니었는데 너무나 많이 비비다보니 원래 손금의 절반이 지워졌고 그 덕분에 이 자리에 온 것 같다"라는 대답을 했다. 물론 우스갯소리였지만 그의 표정이 참으로 진지했기 때문에 큰 소리로 웃지도 못할 상황을 겪었었다. 손을 많이 비벼서
몸이 커서 발이 큰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몸이 작아서 발이 작은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몸에 비하여 발이 상대적으로 크거나 작으면 그로 인한 차이도 생기기 마련이다. 발은 위로 몸을 받들고 몸을 움직이게 하여 운행하게 하니 그 기능과 역할이 지대한 것이다. 발의 지탱이 없는 걸음을 생각해 보시라. 얼마나 불편할 것인지 자연 상상할 수 있는데, 흡사 타이어
동물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결과는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거듭 경주를 하면 당연히 토끼가 이기겠지만 거북의 끊임없는 노력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우화다. 인생살이도 두 번이 아니라 한 번뿐임을 생각한다면 '원 찬스(One Chance)'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비록 짧은 다리를 가지고 살아야하는 처지의 거북이 삶
사전에서는 '증권 시장에서, 주식의 매매나 거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규모로 거래하는 개인이나 기관 투자가, 특별히 잘 모셔야 할 귀한 손님'을 '큰손'으로 정의하고 있다. 꼭 금융 거래를 크게 하는 사람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고 영향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이 충분한 사람도 일종의 큰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이 크다는 의미에서
인류의 직립 보행의 기원에 관한 설은 여러 가지로 아직 정설을 채택할 만큼 연구나 분위기가 이루어진 게 아닌 것 같다. 급격한 기후 변화, 지형의 변화, 번식, 주먹질, 포식자로부터의 보호 등 다양한 형태로 원인을 추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한 정설이 나왔으면 좋겠다. 직립의 시기에 관한 의견도 분분한데 분명한 것은 네 발 보행에서 두 발
상대방의 행동이 미심쩍을 때 사람들은 보통 냄새가 수상하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또 고향이 시골인 사람은 TV를 볼 때 화면에 시골 풍경이 나오면 고향의 향취를 느낀다는 표현도 자주 한다. 보는 것은 행동과 화면일 뿐인데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러 종류의 사물이나 생물을 보고 느끼는 것이 단순히 시각적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후
사람의 얼굴과 몸을 관찰하여 그 모양이나 색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을 통하여 상대방의 첫인상을 읽고 나름의 느낌을 통하여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훈련되어 있다. 그런 정보를 통한 포괄적 파악도 절대 틀린 것이 아니지만 세세한 흐름을 읽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제한성을 극복하려면 어떤 기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