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좋아했으나 미술을 전공할 수 없었던 옥도윤(46) 씨. 그는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한국화를 본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화를 만났다. 좋은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는 예쁜 그림을 꼭 자신의 손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민화를 가르치는 곳을 찾아다니고, 인터넷에서 정보도 찾아보고, 책도 찾아보면서 그는 민화를 그렸다. "좋은 의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다. 나중에 자라서 음악인이 되면 노랫말을 쓰리라 생각하며 시를 썼다. 그러다 그는 시인이 되었다. 그가 좋아했던 음악세계는 그의 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는 환상적이다. 어떤 시는 동화 같고, 다른 어떤 시는 공상과학영화 같기도 하다. 꿈을 꾸고 나면 꿈을 적어 두었다가 시로 썼다는 김참(42) 시인
오래된 책, 오래된 서랍장, 오래된 찻잔, 오래된 바구니, 오래된 함지박…. 여러 사물 이름 앞에 '오래된'을 붙여 보았다. 그러자 평범한 사물이 한순간에 특별한 물건이 되었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애틋한 사연이 배인, 한 시대의 질곡을 겪은 특별한 물건 말이다. 우리가 별 망설임 없이 내다 버렸거나, 어딘가
'생의 기쁨, 울부짖는 절규, 삶의 좌절과 비애, 인간의 고독, 간절한 갈망. 무대 위의 그는 더 이상 모델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가 있을까. 한줄기 빛 속에서 외로이 춤을 추는 그의 몸짓에서 삶의 애환과 회한이 보였던 건, 가느다란 현의 울림으로 다가온 건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작가와 대상과의 내재적
친구의 기타를 처음 잡아 보았을 때, 그 느낌이 너무 좋아 그만 기타에 푹 빠져 버린 소년이 있었다.소년은 친구의 기타를 빌려서 코드 연습을 했는데, 손가락 아픈 줄을 몰랐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 준 기타는 그가 처음으로 가지게 된 '나만의 기타'였다.소년은 자라서 음악인이 되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라이브공연에서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기쁨을 느낀다는 김성훈(51)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김해지회장을 만났다. 중 1 때 친구집에서 처음 접한 기타그렇게 혼자서 연습하며 배우기 시작
"가야의 문양을 제 작품에 담고 싶습니다."도예가 김정태(49) 씨는 수로왕릉 영정각에 보관 전시돼 있는 허왕후의 표준영정에서 본 문양을 자신의 도자기에 새기고 있다. 그는 허왕후의 도포자락에서 희미한 둥근 원 모양의 문양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그 문양에서 가야의 문양을 찾아낸 것이다. 김정태 씨의 호제방
지난해 한 미술인에게서 '소를 키우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연락을 했더니 그림을 그릴 작업실을 짓고 있는 중이니 인터뷰를 조금 늦추자고 했다. 얼마 전에는 한 연극인에게서 '무대세트를 만들어 준 실력 뛰어난 화가'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취재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이번호 '공간&'에 '2015 뉴페이스인김해전
편물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샌들용 짧은 양말을 만든 데에서 시작됐다. 지금처럼 뜨개바늘로 뜨는 수편물은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양말 짜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전해졌다. 편물기계가 발명되면서 편물은 산업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한 코 두 코 직접 손으로 뜨는 손뜨개는 사람들
불당에서, 부처님 머리 위에 작은 집 모형이 달려 있는 걸 본 적이 있는지. 이것을 닫집이라고 한다. '닫'는 '따로'의 옛말이다. 그러니 '닫집'은 집안에 '따로 지어놓은 또 하나의 집'을 말한다. 절의 닫집은 섬세하게 짜인 공포와 화려한 장식,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기둥을 특징으로 한다. 공중에 매달린 화려한 궁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닫집
화가들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것을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려낸다. 작곡가는 소리로 표현해낼 수 있도록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린다. "적절한 낮은 음과 높은 음, 음의 길이와 장단이 어우러지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지요." 작곡가 백승태(56) 씨가 작곡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그는 가야와 김해를 담은 곡을 만들고 있다. 그의 집을
"인간은 손을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 아닐까요. 저는 청소년들과 만들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짚풀공예와 매듭공예를 가르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요. 손으로 물건을 만들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동안 그 아이들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거
익살맞은 표정의 호랑이 핸드폰꽂이, 고양이 화병, 부엉이 향초꽂이, 악당로봇 다관, 깡통로봇 컵, 파랑새 부리 모양의 차 주전자…. 이런저런 도자기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이렇게 재미있는 도자기라면 전통을 고루하다 여기는 젊은 사람들의 시선도 얼마든지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대로 세월이 가면 젊은 사람들은 도자
화려한 스카프가 바람에 휘날리며 앞으로 확 다가와 얼굴을 감싸는 것 같았다.판화기법을 응용한 작업을 하는 노재환 화가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었다.환상적인 색감, 그 색의 향연을 부드럽게 펼쳐내는 이 작품들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눈에 보이지 않은 미시세계를 크게 확대해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환한 햇빛 아래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느껴지는 빛의 잔영들이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그림 같기도 했다. 노재환 작가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그의 화실 '홍대미술학원
"그림을 직접 그리지 못한다 해도 그림을 좋아하면서 보는 것, 그것도 그림과 함께 하고 있는 겁니다. 제 삶 속에서, 제 생활 안에서 그림이 항상 함께 하길 원합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천천히 편안하게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그것이 제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서양화가 조상이 씨는 작업실 '꿈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여자아이가 길을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홀린 듯 그 소리를 따라 걸었다. 도착한 곳은 한 건물의 반 지하 방. 계단 위에서 유리창 너머로 안쪽이 보였다. 아이의 눈에 한국무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이는 춤을 추고 싶어서 매일 그곳에 찾아가 숨어서 지켜보았다. 한국창작무용가로 활동하고 있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열심히 했구나' 하고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나를 내가 칭찬했고, 그럴 때 기분도 좋고 행복했습니다." 한국화가 임미애(57) 씨가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며 한 말이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 앞서 자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하면서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흙 만지는 걸 좋아해 도예가가 된 임용택(46), 이미진(39) 두 사람은 동료이자 연인이며, 평생의 벗이다. 각자의 개성대로 작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 부부의 꿈은 하나다. 흙을 빚어서 쓸모가 있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흙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 된 임용택, 이미진 부
손톱 크기만한 작은 슬리퍼, 손가락 절반 크기의 워커. 아무리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밑창, 굽, 신발 끈, 장식까지. 딱 이 디자인, 이 색상의 신발이 있다면 당장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에 쏙 든다. 작은 가방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몸이 작아진다면 저 신발을 신고, 저 가방을 들고 토끼를 쫓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고
척부인(자), 교두각시(가위), 세요각시(바늘), 청홍각시(실). 감투할미(골무). 인화낭자(인두), 울낭자(다리미). 작자·연대 미상의 가전체 작품으로 전해지는 의 등장인물들이다. 옛날 주 부인이 바느질을 하다가 낮잠이 들었다. 그 사이 규중칠우, 즉 바느질에 쓰이는 도구들이 각기 자기가 없으면 어떻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교사가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가는 기차가 올 때까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차에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영어교사에게서 서예를 배웠던 제자들은 이제 어른이 됐다. 제각기 자리를 잡아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제자들은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스승을 잊지 않고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