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점심 때가 되자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밥 생각 보다 '낮술' 생각이 오히려 간절했다. 비오는 날이면 왜 낮술이 땡기는 걸까? 인간심리를 규명하고 분석한 수 많은 연구결과가 있건만, 정작 이런 생활밀착형 조건반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하기야 낮술 못마셔 죽었다는 사람은 없으니 이런 시덥잖은 문제는 잠시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은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하면서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해야 한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개념상 국어인 외래어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섣부른 주장 때문에 자신의 진의조차 왜곡되긴 했지만, 한편으론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때는 1996년 여름. 한 해 뒤에 나라가 부도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저서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인간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식동물이나 육식동물은 이미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가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다. 하지만 잡식동물은 다르다. 선택 가능한 수많은 먹을거리들 가운데 무엇이 안전한지 가려내고, 무엇을 먹을지 선
쌀국수, 더 정확하게 말해서 '베트남 쌀국수'는 한국 외식시장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꼽힌다. 음식에 있어 한국인들은 의외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지금까지 수많은 외국 음식이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잠깐의 유행에 그치고 말았다. 어렵게 뿌리를 내린 음식들 조차 소수의 애호가들이 즐기는 음식으로 남았다. 베트남 쌀국수 역시 그와 유사한 전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짜장면에게 면목이 없다. 가 창간된 지 1년3개월. 그간 60여 회에 걸쳐 '김해의 맛'을 찾아 다녔건만, 여지껏 짜장면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그 위상에 비춰 볼 때 결례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짜장면의 유래나 어원 등을 따지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자. 그건 이미 너무 많이 다뤄져 왔다. 그보다는 짜장면이
음식을 먹으면서 '추억을 먹는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 상황까지 고스란히 재현할 수 없기에 애잔한 것이다. 돌이킬 수는 없지만 되새김질은 하고 싶은 욕망이 낳은 결과가 '추억의 음식'이다.먹는 것에 집착이 강한 사람에게
'낙동강 오리알'. 낙동강의 지명도를 높이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이 관용구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홀로 소외되어 처량하게 된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너무나 익숙한 말이긴 한데 그 유래를 찾아 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한국전쟁설이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하하려는 인민군과 이를 저지하는 유엔군 사이에 치열한
언제나 '남의 떡'은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발전, 진보 혹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인간의 속성 상 남의 떡에 대한 미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욕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의 떡'을 쫓느라 정작 '우리 떡'이 가진 가치와 가능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울러 너무 익숙한 탓에 우리 것의 진가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
'정통·에스닉·오가닉'. 이 세 단어는 한 나라와 특정 지역의 식문화의 다양성과 수준을 가늠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정통일식, 정통이탈리안, 정통프렌치 등의 수식어를 단 음식점이 유난히 많이 생긴다. 영어로 정통은 'authentic' 즉 '진정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정통이라 함은 현지화하지 않은 본
1년 넘게 '김해의 맛'을 소개하다 보니 이제는 독자 의견도 가끔 접수된다. 그 가운데 '한우 전문점을 소개해 달라'는 민원이 더러 있다. 당연히 해야 하고, 진작부터 했어야 할 소재이건만 사실 부담이 컸다. 아시는 바와 같이 김해에는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도축과 가공, 경매가 원스톱으로 가능한 두 곳의 축산물 공판장이 있다. 당연히
새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는 새해에 거는 소망과 기대를 음식에 담는 풍속이 있다. 일본에서는 콩·멸치·새우·연근·밤·다시마·청어알 등을 조린 '오세치요리'를, 중국에서는 설떡인 '니엔카오'와 물만두인 '자오즈'를, 프랑스에서는 달콤한 와인으로 찐 바닷
지난 1년 동안 '맛을 찾아서'는 새벽시장 좌판의 2천500원짜리 수제비에서부터 초등학교 급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맛을 찾아다녔습니다.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기보다는 음식의 본질과 그 음식 속에 담긴 사람과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의 의도가 독자 여러분께 어떻게 다가갔는지 새
아침은 머슴처럼, 점심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영도해장국 주방에 걸려 있는 문구생각할수록 기막힌 나라다. 청명주, 두견주, 이화주, 국화주, 문배주, 창포주, 송하주, 홍주, 이강주 등 그 이름만으로도 풍류가 넘치는 술이 지역과 계절마다 그득하다. 이를 두고 박목월 시인은 '나그네'에서 마을마다 술 익는 향이 진동하니, 그것이 마치 저녁노을 마냥
음식과 식당을 주제로 기사를 쓰는 처지다 보니 걷거나 차를 타고 갈 때면 항상 주변을 눈여겨 본다. 식당을 살피기 위함이다. 사람에게 관상이 있다면 식당에는 가상(家相)이 있기 마련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조목조목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대충 외형만 보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집인지 아닌지 정도가 분간이 된다.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두 딸을 둔 30대 중반의 직장인 김 대리. 가족 외식을 위해 횟집을 찾았다. 모처럼의 외식이라 큰맘 먹고 10만 원짜리 모듬회를 주문했다. 큼지막한 접시에 다섯 종류의 회가 먹음직스럽게 놓였다. 맛있게 먹으려는 찰나, 큰 딸이 제동을 건다. "아빠 이건 무슨 생선이에요?" 순간 당황스럽다. 생김새를 보고도 잘 모르는데 회를 쳐놓으니 더
항구를 끼고있는 경남 통영과 마산(창원시)에는 '다찌집'과 '통술집'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술집들이 있다. 명칭은 서로 다르지만 술값에 안주가 포함돼 있고, 제철에 나는 싱싱한 해산물로 한상 가득 차려낸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통영의 다찌집은 '서서 마시는 술집'을 뜻하는 일본어 '다찌노미'에서 온 말이다. 일제시대 어업전진기지로서 일본인들의 왕
내 주변에는 냉면광들이 많다. 그들의 특징은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면 즉시 "냉면이지, 먹을 게 뭐 있다고"라고 대답하거나(저녁에도 마찬가지다) 몇 년 만에 전화를 했어도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우리 OO냉면 먹으러 가야지"하는 식으로 말한다(죽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음
경상도 출신 정일근 시인이 쓴 '홍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질 때/ 푹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값비싼 흑산 홍어가 아니면 어떠리/ 그냥 잘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신김치에 홍어 한 점 싸서 먹으면 지린 내음에 입안이 얼얼해지고/ 콧구멍 뻥뻥 뚫리는 즐거움을/ 나 혼자서라도 즐기고 싶다". 전라도 출신 손택수
장어(長魚)에는 크게 4종류가 있다. 뱀장어라고 부르는 민물장어(우나기)와 바다에서 잡히는 먹장어(꼼장어),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 등이다. 이 가운데 민물장어(이하 장어)는 한자로 '만鰻'이다. 호사가들은 한자를 풀어서 장어의 효능을 설명하기도 한다. "鰻은 고기 어魚, 날 일日, 넉 사四, 또 우又가 합쳐졌다. 따라서 이는 남자가
이맘때, 그러니까 수확의 기쁨도 서서히 잦아들고 거리에는 낙엽이 겹겹이 쌓이고,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어 보이는 만추(晩秋)가 되면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바다로 향한다. 우선 서해로 가보자. 살이 꽉찬 수게가 암컷을 찾아 동분서주하다 그물에 걸린다. 쓰러진 황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세발낙지가 개펄을 헤집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