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의 도예가들 중에서도 '강씨 집안'은 유명하다. 장남 강효진(두산도예), 차남 강호용(선아도예)를 비롯해 그들의 형제인 강유신(용원도예), 강임선(영시흥), 강석순(영선도예), 모두 도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그 자녀들인 강상석(예다움도예), 강수석(수민도예)도 도예공방을 냈고, 강찬석 씨는 부친의 두산도예에서 수업 중이다.
철공소를 하는 아버지 옆에서 작은 도끼와 칼을 직접 만들던 소년이 있었다. 불에 달군 쇠를 다루느라 데기도 하고, 망치에 손가락을 찧어 멍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쇠로 뭔가 만들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훗날 나무를 다루는 서각인이 됐다. 김해에서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이 농기구를 구하고 수리하느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동상동 동광철공소집 아들'이었던 서각인
"김해상공회의소가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최근 들어 김해상공회의소를 찾은 회원업체 직원들과 각종 자격시험을 치르기 위해 김해상의를 찾은 시민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고 한다. 김해상의 건물이 이른바 괄목상대(刮目相對·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를 해야 할 정도로 좋아졌기 때문이다. 는 새롭게 태어난 김해의
선비마을에서 태어나 글 읽는 선비들을 보고 자란 서예가 김미정(54) 씨. 그가 붓을 들고 글씨를 쓴 것은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었다. 자라서 서예가가 돼야지, 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도 어른들처럼 살아야지, 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대청마루에 발을 내리고, 모시적삼을 입고, 붓글씨를 쓰고 공부하면서 살아야지, 라고만 원했다.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공
그림을 좋아했으나 미술을 전공할 수 없었던 옥도윤(46) 씨. 그는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한국화를 본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화를 만났다. 좋은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는 예쁜 그림을 꼭 자신의 손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민화를 가르치는 곳을 찾아다니고, 인터넷에서 정보도 찾아보고, 책도 찾아보면서 그는 민화를 그렸다. "좋은 의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다. 나중에 자라서 음악인이 되면 노랫말을 쓰리라 생각하며 시를 썼다. 그러다 그는 시인이 되었다. 그가 좋아했던 음악세계는 그의 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는 환상적이다. 어떤 시는 동화 같고, 다른 어떤 시는 공상과학영화 같기도 하다. 꿈을 꾸고 나면 꿈을 적어 두었다가 시로 썼다는 김참(42) 시인
오래된 책, 오래된 서랍장, 오래된 찻잔, 오래된 바구니, 오래된 함지박…. 여러 사물 이름 앞에 '오래된'을 붙여 보았다. 그러자 평범한 사물이 한순간에 특별한 물건이 되었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애틋한 사연이 배인, 한 시대의 질곡을 겪은 특별한 물건 말이다. 우리가 별 망설임 없이 내다 버렸거나, 어딘가
'생의 기쁨, 울부짖는 절규, 삶의 좌절과 비애, 인간의 고독, 간절한 갈망. 무대 위의 그는 더 이상 모델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가 있을까. 한줄기 빛 속에서 외로이 춤을 추는 그의 몸짓에서 삶의 애환과 회한이 보였던 건, 가느다란 현의 울림으로 다가온 건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작가와 대상과의 내재적
친구의 기타를 처음 잡아 보았을 때, 그 느낌이 너무 좋아 그만 기타에 푹 빠져 버린 소년이 있었다.소년은 친구의 기타를 빌려서 코드 연습을 했는데, 손가락 아픈 줄을 몰랐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 준 기타는 그가 처음으로 가지게 된 '나만의 기타'였다.소년은 자라서 음악인이 되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라이브공연에서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기쁨을 느낀다는 김성훈(51)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김해지회장을 만났다. 중 1 때 친구집에서 처음 접한 기타그렇게 혼자서 연습하며 배우기 시작
"가야의 문양을 제 작품에 담고 싶습니다."도예가 김정태(49) 씨는 수로왕릉 영정각에 보관 전시돼 있는 허왕후의 표준영정에서 본 문양을 자신의 도자기에 새기고 있다. 그는 허왕후의 도포자락에서 희미한 둥근 원 모양의 문양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그 문양에서 가야의 문양을 찾아낸 것이다. 김정태 씨의 호제방
지난해 한 미술인에게서 '소를 키우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연락을 했더니 그림을 그릴 작업실을 짓고 있는 중이니 인터뷰를 조금 늦추자고 했다. 얼마 전에는 한 연극인에게서 '무대세트를 만들어 준 실력 뛰어난 화가'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취재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이번호 '공간&'에 '2015 뉴페이스인김해전
편물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샌들용 짧은 양말을 만든 데에서 시작됐다. 지금처럼 뜨개바늘로 뜨는 수편물은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양말 짜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전해졌다. 편물기계가 발명되면서 편물은 산업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한 코 두 코 직접 손으로 뜨는 손뜨개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