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촌면 농소리 농소마을 입구에서 마을 안쪽을 바라보면 연초록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멀리서 보았는데도, 그 품새가 넉넉한 것이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그 나무에 반해, 수필가 박경용(74) 씨는 농소마을에 집을 구했다. 하루에 한번쯤 들러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는 공간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벨라회(vella, 2001년 9월 창단된 문
쪽, 양파껍질, 연지, 오미자, 오배자, 울금, 익모초, 치자, 홍화, 감국, 계피, 꼭두서니, 댓잎, 메리골드…. 꽃이든, 나무뿌리든, 풀잎이든 식물은 모두 본래의 색을 가지고 있다. 자연적으로 색을 가지고 있는 식물은 모두 천연염색의 재료, 염재가 된다. 우리 민족이 천연염색에 사용해 온 염재는 20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
흙이 없으면 식물은 성장할 수 없다. 흙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물과 공기만큼 중요한 것이다. 흙은 인류가 촌락을 이루며 살기 시작한 1만 년 전부터 주거공간을 위한 주된 재료였다. 인류는 생활필수품인 그릇을 흙으로 만들었고, 염원과 기원을 담아 신과 인간의 형상을 한 토우도 빚었다. 흙으로 빚고 불로 구워낸 그릇과 토우, 지붕을 장식한 기와는 인류의 역
가을 추수가 끝나면 부지런한 농부들은 나락 갈무리를 끝낸 뒤, 햇볏짚으로 초가지붕을 새로 이었다. 새끼줄도 미리미리 꼬아두었다. 굵기도 여러 종류였다. 그 새끼줄로 짚신을 만들고, 맷방석을 엮고, 멍석을 짜고, 곡물 씨앗 보관용 씨오쟁이를 만들었다. 이처럼 벼농사를 지었던 우리 민족에게 추수가 끝난 뒤의 짚이나 산과 들에서 구할 수 있는 풀들은 생활용품을
"늦은 밤, 아버지는 스탠드를 켜놓고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앉아계신 책상 주변을 비추고 있는 스탠드 불빛은 따뜻해 보였다. 무슨 일엔가 열중하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린 나조차도 숨죽이게 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엿본 책상 위의 세계는 신기했다. 아버지는 섬세한 손길로 무언가를 그리고 계셨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꽃꽂이를, 서양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우리 민족은 고유의 꽃꽂이 문화를 가지고 있다. 불교의 전성기였던 신라·고려시대에는, 불단 장식용으로 활용됐던 꽃꽂이가 귀족들의 집과 방을 장식하기 위한 방편으로 발전해 가면서 특유의 영역을 구축했다. 조선시대의 꽃꽂이는 궁중 의식을 화려하게 빛냈고, 사대부 집안에서는 대청
문자가 없었던 고대에는 새끼줄의 묶은 모양과 수를 통해 의사소통을 했다. 비록 제대로 된 문자는 아니었지만, 의사소통의 수단이었기에 이를 두고 '결승문자'라 했다.새끼줄을 묶으면서부터 인류는 매듭을 발전시켜 왔다. 매듭을 지음으로써 인류는 사냥이나 낚시, 주거의 건축, 물건 운반 등을 할 수 있었다. 매듭은 인류의 기억 보조장치였고, 문자 구실을 했으며
주전자를 든 여자아이는 논에서 일하는 아버지한테 새참을 갖다 드릴 참이다. 대나무 낚싯대를 든 두 개구쟁이는 마을 앞의 강을 향해 출동할 태세다. 호랑이를 피해 나무 위에 올라간 오라비와 누이동생은 얼마 후면 해님 달님이 될 테다. 책보를 둘러맨 남자아이는 황소 등에 올라탄 동무들을 만나 활짝 웃고 있다. 고운 옷 차려 입고 청사초롱을 든 귀여운 도련님과
"음악은 영혼이다. 판소리의 깊고 아득한 경지를 향유해 보라. 들을 가치가 있는 음악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것이 최고'라고 무조건 우겨보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및 음악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 헤더 A 윌로비 교수의 말이다. 북을 치는 고수와 소리꾼 단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연. 북장단과 소리만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나이와 상관없이 '문학청년'이라 부르자. 나이 든 '문학청년'들은 비록 머리숱이 반백이어도 가슴만은 뜨거운 시심(詩心)으로 가득하다.나이 든 '문학청년'들은 대개 '사사(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할 시인을 정해 "선생님한테서 시를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이병관(68) 시인은 '
신문을 볼 때, 한 칸 만화 형식의 '시사만평'을 보면서 무슨 의미인지 고개를 끄덕거렸다면 당신은 그 신문의 가장 중요한 기사를 이해한 것이다. 시사만평은 기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촘촘하게 박혀 있는 글자들을 보느라 피로한 눈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하고, 때로는 무릎을 칠만큼 감탄하는 촌철살인의 묘미도 느낄 수 있다.
2007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김해문화의전당(이하 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당시, '부산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부산에는 '세계 4대 뮤지컬'(오페라의 유령·레미제라블·미스 사이공·캐츠 등으로, 규모와 작품성·흥행·작품의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세계
잘 탄다. 피죽(통나무의 표면에서 잘라낸 널조각)을 몇 개 집어넣으니 기다렸다는 듯 불꽃이 확 일었다. 짙은 주홍빛의 불길, 아름다웠다. 진례면 담안리 72 '미교다물요'. 도예가 정민호 씨의 작업공간이다. 지난 19일 오전 9시. 미교다물요의 장작가마에 올들어 첫 불이 들어갔다. 첫 불의 온기가 겨울 추위를 잊게 했다. 다섯 개로 연결된 터널식 장작가
인간이 고대부터 사용해온 귀금속은 금과 은이다. 그래서 중요한 귀금속과 보석 등을 '금은보화'라 부른다. 은은 금 다음으로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은은 빛을 잘 반사해서 반짝거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 물러서 가는 실이나 얇은 종이처럼 펼 수도 있다. 그런 은의 특성을 살려 인류는 고대부터 은을 이용해 화폐·장식품·장신구&m
염치 불구, 저 이불 덮고 한 시간쯤 낮잠이나 푹 잤으면….천염염색가 전지윤(51) 씨의 염색공방이자 작품 전시공간인 '풍뎅이'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물염색이 된 부드러운 면에 솜을 두둑하게 넣은 이불은 달콤하고, 은은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이불 아래의 온기는 더 강한 유혹이었다. 결국 이불을 덮고 앉아버렸다. 취재를
한 번 걸판지게 크고 화려한 행사를 하는 것, 작고 소박하지만 꾸준히 행사를 이어가는 것. 어느 게 더 문화적일까? 작고 소박하지만, 고향처럼 항상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열리는 행사가 보다 더 문화적이지 않을까? 예술창작공간인 생림면 도요리 245 도요창작스튜디오. 중앙 일변도로 진행되는 문화집중 현상 속에서 독특한 문화예술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공간이다.
인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종이는 중국 후한시대(105년)에 채륜이 발명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종이를 더 높이 쳤다. 우리 민족이 만든 종이는 닥나무 껍질을 재료로 한 한지이다. 우리 선조들은 종이를 귀하게 여겼다. 쓰고 남은 종이 한 장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종이를 몇 번이고 되풀이 해 사용한 선조들의 검소한 생활,
일상적으로 접하는 주변의 소소한 풍경에서 문득 자연의 에너지를 느낄 때가 있다. 여린 꽃 한송이, 풀 한 포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습관적 표현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종의 깨우침을 말한다), 그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게 가능하다고 한다. 화가 조경옥이 그랬다. 조경옥은 어느날 온종일 낚싯대를 드리우던 못 기슭에서, 항상 앉아 있던 그 자리에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를 하며 모내기를 하는 봄, 흐뭇한 마음으로 잘 여문 나락을 베는 가을, 그리고 추석과 설, 정월대보름에 마을 전체를 흥겹게 들썩이게 했던 농악놀이를 기억하시는지. 농악대가 징, 꽹과리, 소고, 장구를 치며 길굿(길놀이)를 하면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판을 벌여 판굿(공연)을 시작하면 농악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깨춤이 절로 났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설레고 마음 떨리는 순간은 언제일까.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할 때이다. 흙으로 빚어내고 유약을 발랐으니, 이제는 불이 할 일만 남았는데 가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불을 땐다. 그 과정이 끝나면, 작품이 빨리 보고 싶어 서둘러 가마를 연다. 열기가 식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