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하지만, 한 국가나 지역의 문화를 다른 곳으로 전파하고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달리 '도자기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다. 전란 중 일본은 조선의 사기장들을 무수히 끌고 갔다. 도자기 생산 기법을 몰랐던 일본은 이들 덕에 비로소 도자기를 생산하게 됐고, 도자기 발전의 혁명적 계기를 맞았다.
한림면 면소재지 한림정으로 가는 길은 낙동강에 막힌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쪽의 세 갈래 길이 있다. 남쪽 김해대로의 명동삼거리에서 한림로를 따라 화포교를 건너가는 길, 서쪽 진영 본산의 봉하마을에서 봉화산 아래 봉하로와 한림로343번길로 화포천을 따라 가는 길, 동쪽 생림면에서 장재로를 따라 장재교에서 화포천을 건너가는 길 등이
석룡산(石龍山)은 금동산과 더불어 신어산군과 무척산군의 마루금을 이어주는 산이다.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져 산세가 진중하고 기품이 있다. 금동산과 이어지는 산줄기 쪽으로는 사람 손길 한번 닿지 않은 듯, 보기 드물게 빽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이번 산행은 생림면 상사촌에서 여차마을로 넘어가는 여덟말 고개를 시작으로, 산불초소, 석류봉(470m),
대동면 주동리 원동마을은 산으로 둘러 싸여있는 아늑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덕에 주변 환경이 훼손되지 않은, 김해의 소중한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조식 선생 학문적 숨결 깃든 산해정, 누워있는 호랑이 형상 북호산300년 이상 수령 모과 과실수 당산나무, 용머리 용두바위·북호산 선달바위왕실 사람 태 묻었다는 안태백골, 개발도
부원동 새벽시장에 위치한 '충무농산물'은 이원국(58), 안경애(56·여) 부부가 1남2녀의 자식들과 함께 14년째 꾸려온 채소도매상이다. 가게 건물은 마치 비닐하우스처럼 생겼는데 주차장 공간까지 합하면 760㎡(230평) 정도로 새벽시장의 채소가게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채소도 구색이 잘 갖춰져 있다. 한 손님은 농담 삼아 이곳을 '새벽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운동 초기, 조선의 유림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인 유림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다는 사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엄청난 충격과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유림들은 한국의 독립의지를 밝힌 독립청원서를, 1919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
한림면의 이름은 참 개성적이다. 대부분의 지명이나 행정구역명이 마을의 지리적 특징이나 좋은 뜻글자에 매달렸던 데 반해, 이 고장 출신인물 김계희(金係熙) 공의 관직명이었던 한림학사에서 마을이름의 유래를 구했던 것은 좀 유별나다. 신라 경덕왕 때부터 유행했던 중국지명의 채용과 변용이 좋은 글자 뜻에 기초해 보편적인 공(公)으로 여겨지던 전통 속에서 사(私)로
우죽 배병민(又竹 裵秉民·1875~1936)은 차산 배전(1843~1899·조선말 개화사상가·시인·서화가. 김해뉴스 지난 2월 22일자 '인물열전' 참조)의 직제자이다. 차산의 화풍을 이어받아 문인들의 정신세계를 담은 사군자를 주로 그렸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우죽은 일제강점기하에서 일본인들이 주관하는 전
보초 세우고 살았다고 전해져 산성이 있던 곳이란 데서 이름 유래수호신 할배·할매나무 당산제 지극정성생림초 청딱따구리 소식 마을 경사마을 대상 사업부지 심의 진행에 걱정무척산 자락에는 가야시대 때 쌓았다는 마현산성이 있다. 김해 시내에서 생림대로를 빠져나오면 봉림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무척산을 바라보면 마현산성이 보인다. 지금 답사를 시작하
20년 전만 하더라도 서상동 5일장 입구에는 뻥튀기 노점이 있었다. 뻥튀기 장수가 기관차 화통처럼 생긴 뻥튀기 기계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그물자루를 받쳐 놓을 때면 아이들은 일제히 귀를 막았다. '뻥이요!' 대포소리 같은 뻥튀기 소리가 시장 골목을 메울 때면 아이들의 두 손엔 하얀 강냉이 뻥튀기가 가득했다. 강승진·이두희 씨 부부 7년 전 시
'한국 현대무용의 개척자' 박외선은 훌륭한 선생이었고 또 아름다운 무용가였다. 1971년에 이화여대 무용학과에 입학한 정귀인 부산대 무용학과 교수는 학부 시절 내내 제자로, 대학원 시절에는 조교로, 박외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정 교수는 말했다. "선생님은 서 있는 자태만으로도 무용가이셨죠. 지적인 분위기, 아름다움, 그리고 우아한 품위까지
낙남정맥의 시작점 동신어산(459.6m). 낙동강을 시작으로 산이 일어나, 멀리 지리산까지 남해안을 달려가는 낙남정맥의 산줄기. 그 출발점이 김해 상동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만으로도 동신어산 산행은 낙동강을 근거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뜻있는 산행이 된다.이번 산행은 매리공단 입구 현대레미콘 옆 산길 배수로를 들머리로 하여 267m봉, 동신어산 능선,
진례 가장 북쪽에 있어 진영과 가깝고 공장 많은 외형과 달리 옛 시골 풍경시 지원 '청내골 참기름' 브랜드 사업 5년째 경로당서 이어오며 인기상품'고모실' 이라고도 불렸던 진례면 고모리 고모(古慕)마을. 송아지가 어미소를 그리워하며 되돌아보는 모습에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는 전하고 있다. 고모마을은 '황새봉'의 산줄기 아래에
진영상설시장에 위치한 '밀양상회'. 성경희(62·여) 씨가 27년 동안 운영해 온 과일가게다. 2년 전 상설시장 건물 안으로 점포를 옮기고 새 단장을 했지만, 진영 토박이들은 대부분 이 가게를 잘 알고 있다. 27년간 가게 일궈온 성경희 씨 2년 전 상설시장에 새단장 한 뒤사업 접은 사위 친구에 장사 제안"혼자 장사하기 힘들어 접으
지난 번 걸음에서 빠뜨린 데가 있다. 잊어서도 아니고 서둘러서도 아니다. 불친절한(?) 과거의 기록을 따라 현재의 땅 위에서 헤맸던 탐사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능묘 조에 수로왕릉과 허왕후릉 뒤에 등재되었고,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시인이었던 담헌(淡軒) 김극검(金克儉)의 묘를 찾았다. 묘를 관리해 오던 담헌공파 집안 분들께선 &qu
일제 때인 1920년대. 평범한 집안에서 딸이 무용을 배우겠다고 나설 경우 부모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요즘이야 자식이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딸이 무용을 배운다고 하면 반대하는 부모가 더 많았을 것이다. 한국 현대무용의 개척자이자 교육자였던 박외선(1915~2011) 선생도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용가의
마을 앞산이 소 우는 형국이라 '모산'여러 씨족 '모여 산다'는 데서 유래설도자연마을 취재를 해왔는데, 큰 도로에서 마을로 접어들기까지 공장 하나 안 보인 곳은 이 마을이 처음이지 싶다. 장유면 장유리 모산마을 말이다. 모내기를 끝낸 논은 바람이 스칠 때면 햇빛을 튕겨내고, 마을을 둘러싼 금병산 자락은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장유리(오늘날 장
평야지대인 김해에서 상동면은 유명 산군을 거느리고 있는 대표적인 산악지대이다. 북으로는 무척산, 금동산, 석룡산이, 남쪽으로는 신어산, 장척산, 도봉산 등이 김해의 근간을 이루며 상동면을 감싸 안고 있다. 그 중 도봉산(棹棒山·348m)은 장척마을의 수호산으로, 장척계곡을 끼고 흐르며 푸근한 산세를 형성하고 있는 상동의 안산이다. 이번 산행은
옮긴 회사 부도 후 떡 기술 배우기 시작"장유 한 떡집을 다짜고짜 찾아가 사정해 배우고 죽기살기로 공부했죠""김해에서 가장 큰 떡집을 차리는 게 제 꿈입니다. 손님들을 깜짝 놀라게 할 거예요. 330.5㎡(옛 100평) 규모의 가게에 재래식 떡에서부터 퓨전 떡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떡을 진열해 놓을 겁니다. 손님들의 입이 떡 벌
"'홍도야 우지마라' 노래를 들으면 오빠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나서…." 가수 김영춘의 여동생 김복득(88·부원동) 씨는 말끝을 잊지 못했다. 아직도 먼저 간 오빠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김 씨는 어방동 본가에서 태어나 부원동에서 한 평생을 살았고, 지금도 부원동에서 살고 있다. "부모님이 일곱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