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리 고분군 발견돼 전국적 명성마을 일대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예안리 고분군. 김해시민들이라면 한번 쯤은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다. 가야시대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곳, 지금의 장시(長市)마을이 있는 곳이다. 대동면 예안리에 위치한 장시마을은 시례마을에서 분리된 마을이다. 2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일제시대 때 생긴 마을로 추정
다른 나라 시장·음식문화 조사 위해 홍콩·베트남·캄보디아 등 매년 다녀와손님별 특성에 맞는 상품으로 공략 부위별 요리법도 꼼꼼히 알려줘 인기졸업한 상인대학 재입학 '억척이' "돈보다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 공부""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아 외국인 손님들을 상대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들의 문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어도,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말이 있다. 노랫말은, 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음색은 듣는 이의 가슴에 직접적으로 와닿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1939년에 처음 나온 '홍도야 우지마라'가 바로 그런 노래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김해 사람 김영춘이다. 김영춘의 노래 '홍도야 우지마라'와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진영마을의 원조시장에서 진영로에 나서면 2009년 11월의 증축 개소로 말끔해진 진영지구대가 있다. 광복 후에 이북지서, 진영지서(1948.8), 한림지서(1987.1), 진영파출소(1991.8), 진영지구대 진례치안센터(2003.12)를 거쳐 2009년 11월에 진영지구대가 되었다. 2010년 2분기에는 전국 3위의 '베스트 파출소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함박산 아래 소나무 골짜기여서 옛날엔 '솔말' '솔마실'이라 불러김해 최초 '농촌건강장수마을' 유명세 타면서 인구도 점점 늘어"주민 여러분, 경로당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잠시 일손 멈추시고 식사하러 오세요!" 생림면 마사리 송촌마을에 들어서자 '마을 방송'이 들려왔다. 취재를 간 날은 부녀회에서 점심을 마련해 마을사람
"너무 감사했어요.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에 처음 본 손님한테 그렇게 믿음을 베풀어 주는 상인이 흔하진 않잖아요? 제가 겪었던 이 훈훈한 이야기를 수업시간 학생들에게도 들려주고 있답니다." 진영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한 여교사는 지난 달에 진영 5일장에 들렀다가 가슴이 훈훈해지는 일을 겪었다. 사연은 이렇다. 상인들이 장사를 마칠 준비를 서두
한 사람의 생몰연도를 보면, 그의 인생에 작용했을 굵직한 사건들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삶은, 우리나라의 엄혹한 근현대사와 맞물려 있기 마련이다. 국가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했던 시기였다.정진업(1916~1983) 시인의 삶 역시 그러했다. 정진업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갖은 수탈과 억압을 받았던
주촌 사람들에게 '주촌에는 무슨 산이 있습니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꼽는 산이 '주주봉(酒主峯)'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촌에서 제일 높은 산인 황새봉도 있지만, 그들은 주주봉을 주촌면의 '주봉(主峰)'으로 생각들 하고 있다.김해시내에서 주촌으로 들어갈 때 제일 먼저 맞이하는 산이 주주봉인데다, 주주봉 아래의 마을이라 '주촌(酒
진영읍의 마을들은 주산(主山)의 금병산(271m)을 사방에서 에워싸는 모양으로 생겨났다. 금병산 산자락에 생긴 마을 만해도 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진영리(북), 여래리(동), 내룡리(동남), 하계리(남), 방동리(남서), 좌곤리(서) 등으로 진영의 13개 동리 중 6개 마을이 여기에 해당한다. 는 옥황상제가 신선들을 모아 조회를 벌이
상동면의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서로 생림면, 남으로 삼안동과 접하는 묵방(墨方)마을. 김해 시내에서 신어산 뒷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마을인데,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는 곳이다. 35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김해 시내에서 묵방마을행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어느새 바깥 풍경은 물
22살 차이 모로코인 아내와 장사방송 등 매스컴 소개돼 유명인사남편 길 씨 암투병 힘든 시간 불구 항상 밝은 모습으로 손님 맞으며"많은 분들께 행복 전하려고요""날씨가 더워서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날 때면 서상동 5일장에 가요. 장에 가면 '국민두부장수' 아저씨가 있거든요. 그 아저씨가 파는 콩국도 무척 맛있지만 말을 어찌나 재
권탁은 안동 권씨의 후손으로, 경상도 선산부 월동리에서 아버지 권길원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사원(思遠)이다. 얼굴과 거동이 뛰어나게 아름다웠고, 키가 컸으며, 힘 또한 셌다. 권탁은 김해 출신이 아니지만, '김해의 인물'로 꼽힌다. 는 권탁에 관한 내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안동인(안동 권씨). 임란
육십 평생을 장유면에서 살아 온 박기수(61) 씨. 박 씨는 어릴 적의 장유면을 '낙남정맥(백두대간 산줄기의 하나)의 준산들과 낙동강의 맑은 지류 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동네'로 기억했다. 박 씨는 "장유사람들은 용지봉과 불모산을 닮아 굳세고 믿음이 있었다"며 "90년대 초 신도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외지 인구가 급격히 늘어
분동 논란에 대한 각계 입장과 청사진내년 7월 분동을 앞둔 장유면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심한 내홍을 앓고 있다. 먼저 분동 시점과 관련된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다. 김해시에서는 장유면이 분동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더 이상 분동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장유 주민 일각에서는 동에 걸맞는 인프라 구축이 먼저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주요
대동벌 일대에는 동그마한 작은 구릉 산이 몇 개 연이어 자리하고 있다. 마산(馬山), 지라안산(池羅安山), 각성산(閣城山) 등이 그 것이다. 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각각의 산마다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시간이 허락되면 슬며시 다녀볼 생각을 내심 하고 있던 산들이었다. 몸집도 작고 높이도 100여m 내외이지만 낙동강과 서낙동강을 지척에 두고 대동
세 개의 천 흐른 데서 이름 유래맑은 물과 문전옥답 어우러져 김해 최고의 곡창지대로 유명공단 들어선 후 쌀 명성도 사라져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었는데…""우리 마을… 이젠 두 번 쳐다볼 곳이 없는데요." 취재 요청을 하자 주촌면 내삼리 내삼마을 주세규(57) 이장은 난색을 표했다. 공장이 많이
대동면 유명 국수골목 언저리 간판도 없이 알음알음으로 장사가게 형색 낡았어도 야채 백화점찾아와주는 이들과 말벗 하며 "장사? 하는 데까지는 해야지"대동면에는 예로부터 이름난 전통시장이 2곳 있다. 한 곳은 선암마을 입구에 열리는 '선암 5일장'으로, 지금도 매달 5·10일이 되면 어김없이 장이 열린다. 지금의 서상동 5일장
수로왕릉은 김해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왕의 무덤으로 인해 김해는 '가야 고도'로서 빛난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만약 이 수로왕릉이 훼손되어 없어졌다면 지금 김해의 처지는 어떠할까?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뻔 했다. 김해를 침략한 왜적들은 수로왕릉을 파헤쳤다. 왜적을 피해 노모를 모시고 피란을 갔던 죽암 허경윤(竹巖 許景胤
#사례1=택시기사 최 모(58·장유면) 씨는 지난해 12월 초 한 대부업체에게서 200만 원을 빌렸다. 아내가 암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급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업자는 선이자로 10만 원을 뗐고, 이 씨는 매일 3만 원씩 이자를 갚았다. 보름 가량 이자를 갚지 못하자 업자는 조직폭력배를 들먹이며 이 씨를 협박했다. 업자와 대부업체 직원들은 아내가
골프장 건설로 허물어져 가는 '무릉도원'의 고령마을서 내려와 화포천 건너 진영의 고모삼거리로 나갔다가 남쪽으로 서부로를 따라 다시 진례로 돌아온다. 백산도예원(문광수) 앞 삼거리에서 도로표지판의 화살표와는 반대로 오른편의 면사무소 쪽으로 들어서서 김해가 자랑하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관장 최정은)에 이른다. 왼쪽을 가리켰던 표지판의 화살표는 대형버스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