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거야. 나중에 내가 커서 결혼할 때 가져 갈 거야!" 큰 딸이 먼저 엄마가 한지공예로 만든 콘솔경대를 '찜'했다. 선수를 빼앗긴 둘째 딸은 기회를 엿보다가 엄마가 이층장을 만들었을 때 재빨리 나섰다. "언니야, 이제 이건 내거야!" 두 딸아이가 서로 가지겠다고 다툼을 할 만큼 예쁜 공예품들을 만들어내는 한지공예가 최명희(40) 씨의 집을 방문했다.

▲ 최명희 씨가 고지공예 찻상 앞에 앉아 작업에 쓸 한지를 고르고 있다. 그 앞에 있는 작품은 색실함이다. 수실을 넣어 보관하는 함이다.

최명희는 따로 공방이 없고, 집에서 작업을 하며 외부에 출강을 다닌다. 그는 장유 삼문동 갑오마을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이곳이 아파트인지 옛 한옥의 안방인지 잠시 헷갈렸다. 나비장, 콘솔경대, 탁상경대, 십장생반닫이, 색실함, 보석함, 접시세트, 온통 예쁘고 아기자기한 한지공예품들이 거실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나씩 꺼내서 쓰다듬으면 '알라딘의 램프'처럼 홀연히 아리따운 규수가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곱고 예쁜 이들 공예품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배어있는 듯 했다. 한쪽에는 한지 보관함도 세워져 있었다. 거실에 놓인 찻상도 고지공예 작품이었다.

최명희는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결혼을 한 뒤 남편 직장을 따라 창원에서 살다가 10여 년 전 장유로 이사를 왔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고무줄뛰기를 하면서 노는 것보다 혼자서 노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림은 잘 못 그렸지만 만들기는 좋아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종이접기 하고….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놀았었죠. 지금도 그렇게 혼자 앉아서 한지공예를 하고 있는 셈이죠."

기자가 딱히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그가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했다니 그의 어린 시절이 더 궁금했다.

"책을 잡으면 끝까지 다 읽고, 더 이상 접을 종이가 없을 때까지 다 접고, 그러고 놀았죠. 뭐. 옆에서 엄마가 심부름 시키려고 불러도 그 소리를 못 듣고 종이만 접고 있다가 엄마한테 혼이 난 적도 많아요. 그게 집중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한번 작업에 빠지면 옆에서 싸움이 일어나도 모른단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그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주위에서는 의견 충돌이 일어나 분위기가 썰렁한데, 그걸 전혀 알아채지 못해서 눈치 없다고 면박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한번 종이를 잡으면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 최명희 씨가 고지공예 찻상 앞에 앉아 작업에 쓸 한지를 고르고 있다. 그 앞에 있는 작품은 색실함이다. 수실을 넣어 보관하는 함이다.

힘들게 작업하고 있는 그에게
"힘들다면서 그건 왜 하는데?"
그러던 어느날 "당신, 좀 하네"
이윽고 공예품대전에서 수상을 하자
그의 노력과 열정을 인정한 남편

결혼할 때 가져갈 거라고 점 찍은 딸들
팔각찻상 좋다며 리폼 의뢰한 시어머니
친정 어머니의 자랑인 쌀뒤주까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그저 작품이기보다는 생활의 도구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직장생활 할 때도 퇴근하고 난 뒤에는 계속 뭔가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알공예, 테디베어, 매듭공예, 뜨개질. 종이접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배우러 다녔는데, 그 중에서 종이접기를 가장 오래 배웠어요."

종이접기로 만든 벽걸이나 장식품 등은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 선물들은 인기가 많았다. 불심이 깊은 어머니가 절에 갈 때는 그가 만든 종이꽃을 가지고 가서 불단에 헌화도 많이 했다.

그는 "잡다하게 이것 저것 배우러 다녔다"고 말했지만, 사실 지금의 한지공예 작업에 모두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는 주변부터 천천히 배워 한지공예로 걸어들어간 것이었다. "배울 때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그 기법들이 한지공예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장유로 이사를 와서 첫 딸이 어린이집에 갈 즈음, 장유도서관에서 한지공예를 배웠다. 한지공예가 전순희 선생이 가르치는 과정을 1년 정도 배웠다. 한지공예에 푹 빠져든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취미로 배울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배워보자. 자격증도 따고 제대로 해보자!"

한지공예 전문과정을 배우기로 결심한 그는 삼방동에 있는 전순희 선생의 작업실로 매일 출퇴근을 했다. "7년 전쯤이었죠. 그 당시는 지금보다 교통사정이 안 좋아서, 97번 버스를 타면 빙빙 돌아서 삼방동에 도착했어요. 아침에 나가서 종일 한지공예를 배우고 오후 5시에 장유로 돌아왔죠. 전 선생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출강을 나가면 보조강사도 했어요."

그는 문양파기를 배울 때가 가장 힘들고, 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문양의 윤곽을 먼저 파고, 윤곽 안을 메우는 부분을 따로 또 파야해요. 한번 잡으면 놓기가 힘들 정도로 빠져듭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뒤 새벽까지 혼자 종이를 붙잡고 있는 거죠.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양 파고 배접해서 붙이고…. 남편이 자다 깨서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봐도 파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 눈 비비고 밤새 한 작업의 결과물을 보다가 종이를 뒤집어 붙인 걸 알고 좌절(?)도 하고요. 그땐 다시 뜯어내고 새로 작업하는 거죠."

남편은 그런 최명희를 묵묵히 바라보면서 말했단다. "힘들다면서 그건 왜 하는데?" 이 말은 최명희가 남편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리사인 남편은 요리의 최종 장식을 위해 조각도로 당근이나 오이 등을 다듬는다. 그때 최명희는 "먹는 거 가지고 뭐 하는데?"라고 응수한다. 알고 보니 부부가 모두 손재주가 보통이 아닌 것이다.

그는 남편 때문에 약이 오른 적도 많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 걸려 작품 하나 만들어놓으면 남편이 귀신같이 잘못된 부분을 콕 집어냈기 때문이다. 사방 1㎜쯤 되는 작은 나뭇잎 하나 붙이려다가 실패해 하는 수 없이 그 부분을 오려내고 작품을 완성해놓으면, 남편은 바로 그 부분을 가리키면서 "이 부분은 좀 이상하다"고 지적을 하곤 했단다. "이건 좀 잘못됐는데?" "색상이 별로다." 남편은 최명희의 작품에서 족집게처럼 흠집을 찾아냈다. 보다 못한 아이들이 "아빠! 엄마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지 말고 멀리서 보는 거야"라며 편들고 나서기도 했다.

그랬던 남편이 어느날 한 작품을 보고는 "와, 이거 괜찮네!"라며 처음으로 감탄을 했다. 남편이 인정한 그 작품은 2012년 김해공예품대전 입선, 이어 열린 2012년 경남공예품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한지를 조각보형태로 반닫이에 붙인 작품이다. 한지공예는 문양을 파서 붙인다는 기존의 생각을 넘어 최명희의 창의적 발상이 인정받은 작품이다. 수상소식이 날아들자 남편은 "좀 하나?"라는 반응으로 돌아섰다고.

큰딸 서영이와 작은딸 승빈이도 엄마의 작품에 관심이 많다. "두 딸들이 내 작품을 자기들 마음대로 이미 다 자기 것이라고 정해놓았어요. 서영이는 콘솔경대에 조그맣게 '이서영'이라고 칼로 자기 이름까지 새겨 넣었어요." 거실을 장식한 많은 작품들 중에서 콘솔경대는 기자의 마음에도 쏙 들어, 저걸 돈 주고 살 수는 없을까 궁금했는데 이미 임자가 정해져 있었다. "엄마 작품에 네 이름을 칼로 새겨 넣으면 어떡하느냐고 혼냈죠. 승빈이는 서영이가 찜해놓지 않은 것 중에서 자기 것 찾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그는 TV에서 드라마를 볼 때 줄거리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사극을 볼 때는 당연히 화면 안의 한지공예품이 보이고, 현대극을 볼 때도 남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지공예품이 보이기 때문이다. "눈앞으로 그 물건들만 확 다가오는 걸요. 그 순간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저걸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곤 하지요."

그는 자신이 만든 공예품이 실생활에서 쓰이길 바란다. 5년쯤 전에 시댁에 만들어드린 작은 팔각 찻상은 얼마 전  시어머니로부터 리폼 의뢰가 들어와 빨간색 한지로 화려하게 새 옷을 입었다. 그 찻상은 "우리 며느리가 만든 작품"이라는 시어머니의 자랑을 받으며 손님들 앞에 여전히 놓이고 있다.

친정집 거실에는 육각기둥 형태로 만든 쌀뒤주가 있다. 친정어머니는 밥 지을 때면 그 뒤주에서 보란 듯이 쌀을 꺼낸다. 그러면 거실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장식품인 줄 알았는데 쌀뒤주였냐?"며 깜짝 놀란다. "우리 딸이 만든 작품"이라는 자랑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최명희는 한지공예가 옛 전통이 아니라 실생활에 쓰이길 바라고 있다. "현대생활에서도 쓰일 수 있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한지공예품을 만들고 싶어요. 배울 때 많이 힘들었는데, 좀 쉽게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쉽게 배우고, 쓰임새도 많고. 한지공예가 그렇게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 최명희한지공예가. 2012년 김해공예품대전 입선·경남공예품대전 은상, 2013년 김해공예품대전 동상·경남공예품대전 은상. 김해 각 지역 학교와 작은도서관 등에서 공예강사로 활동. 현재 풀잎문화센터 장유·진영·창원 용호 지부에 외부강사로 출강 중.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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