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4만1800여명으로 8% 차지
지난해 신고건수 57건중 23건 학대 판명
가해자 대부분 가족 탓 기관 개입 한계
인식 개선과 보호시설 확충 등 서둘러야


▲ 지난달 15일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열린 노인학대 인식 캠페인 장면.

지난달 15일은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었다. 유엔(UN)과 세계노인학대방지망(INPEA)이 2006년에 제정했다.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노인학대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노인학대는 해마다 늘고 있다. 각 단체 조사에 따르면 노인학대율은 14~3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젊은 도시로 불리는 김해도 노인학대의 청정지역은 아니다. "설마 이런 일이"라고 혀를 찰만한 일들이 김해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노인 문제 전문가들은 노인학대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때리고 욕하고 재산 빼앗고

올해 76세인 강 모 씨는 20년 전부터 막내아들에게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조울증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막내아들은 군을 제대한 뒤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강 씨는 갈비뼈가 부러져 두 차례나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막내아들이 무서워 친척집에서 자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강 씨는 고민 끝에 경찰에 신고를 했고, 막내아들과 따로 살게 됐다.

올해 83세인 박 모 씨는 슬하에 아들 셋을 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함께 사는 조건으로 첫째 아들 부부에게 자신의 집을 증여했다. 하지만 함께 살게 된 첫째아들 부부는 밥을 챙겨주지 않았다. 며느리는 피부병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더럽다'고 구박했다. 빨래를 할 때는 시어머니의 옷만 빼고 세탁기를 돌렸다. 박 씨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자 첫째아들 부부는 병원카드를 만들어준다며 통장에 들어 있는 2천만 원을 빼내가기도 했다. 박 씨는 다른 두 아들에게 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첫째아들 부부로부터 정서적, 경제적 학대를 당했다며 경상남도노인보호전문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다른 두 아들과 살고 있다.
 
■ 학대당하고도 신고 꺼려
지난해 12월 기준 김해시 전체 인구는 52만 2천49명이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4만 1천800명으로 전체의 8%를 차지한다.

경남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김해지역의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모두 57건이었다. 이중 노인학대로 판명된 사례는 23건이었다. 2012년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총 79건, 노인학대 판명 사례는 28건이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가정의 최고 어른으로 대우 받던 노인들이 왜 학대의 대상이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핵가족화, 효 가치관 변화, 노인복지시설 부족 등을 꼽는다. 김해생명의전화 노인복지센터의 정주환 센터장은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족 공동체 안에서 노인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자식들이 출가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노인 방임 문제 등도 발생한다. 시부모와 며느리의 갈등도 노인학대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노인학대는 학대받는 노인이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인지하기 힘들다고 한다. 학대 가해자가 자식, 배우자 등이기 때문이다. 학대받는 당사자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외부 사람들은 사정을 잘 모르거나, 가족 내 문제로 치부하고 만다. 정 센터장은 "자식들의 방임과 학대 등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자식 잘못은 다 부모 탓'이라며 보듬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 학대 신고를 직접 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노인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경남노인보호전문기관의 상담사가 현장조사를 나간다. 학대 사실이 확인되면 학대 정도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대가 피해자의 가족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학대 신고 시에도 상담사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경상남도노인보호전문기관 강숙희 팀장은 "노인들은 자식과 인연을 끊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외부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 인식 개선 캠페인, 시설 확충 노력 필요
전문가들은 노인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노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홍보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 센터장은 "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아주고 노인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노인들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이해하더라. 또 캠페인, 홍보 등을 통해 노인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역군이며, 노인을 통해 연륜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또 노인학대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인력과 보호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남의 경우 창원에 경남노인보호전문기관이 있다. 진주에는 곧 경남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경남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는 전문상담사 6명이 창원, 김해, 양산, 거제 등 11개 시·군을 담당한다. 진주의 경남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은 진주, 사천, 남해군 등 경남 서부권 7개 시·군을 관할하게 된다. 두 기관 모두 노인학대 문제를 다룰 인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신체기능이 떨어지는 노인들은 학대를 받더라도 집에서 쉽게 뛰쳐나올 수 없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가해자로부터 분리해서 보호하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한 게 엄중한 현실이다. 경남의 경우 학대 피해 노인들은 경남학대피해노인쉼터에서 최대 4개월 동안 머물 수 있다. 김해에는 경남도와 김해시가 지정한 학대피해노인쉼터가 2곳 있다.

문제는 이 시설들의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강 팀장은 "경남학대피해노인쉼터의 최대 수용인원은 5명이다. 김해의 학대피해노인쉼터도 수용 인원이 제한적이다. 학대 피해 노인은 정신적 치료, 정서적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김해의 쉼터에서는 숙식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 학대 피해 노인을 위한 쉼터를 더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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