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1960년 4·19혁명은 자유당 정권을 붕괴시키고,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이후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구성되고 의원내각제를 골자로 헌법이 개정되었다. 또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국무총리로 선출한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 9개월의 짧은 정치생명을 갖게 되는 제2공화국의 탄생이다.
 
해평윤씨 명문가의 장남으로 유복하게 성장한 윤보선 대통령은 영국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유학파다. 건국 이후 서울시장, 상공부장관, 제3대 민의원, 제4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1959년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선출된다. 4·19로 제4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야당의 총수를 지내며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하게 된다.
 
1897년 충남 아산 출생인 그는 1990년 94세로 서거할 때까지 장수했다. 윤보선 대통령 집안 사람들은 대체로 장수했다. 윤 대통령의 조부가 85세, 부친인 윤치소 공이 70세, 한국 YMCA를 만든 삼촌 윤치영 씨는 100세를 넘겼다. 조카 윤남경 씨가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면 "70대에 돌아가시면 요절했다고 하고, 80세에 돌아가시면 빨리 돌아가셨다고 하고, 90세에 돌아가시면 수를 다하셨다고 할만큼 장수 집안이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장수비결로 "타고난 건강과 절제, 종교 생활, 덕담을 꼽는다"고 했다.
 
윤보선 대통령의 체질은 태음인으로 생각된다. 태음인은 내수(內守)라 하여 안에 머물며 지키려는 기질이 강하다.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을 보면 '기질적으로 권력에 집착한다거나 탐하는 편은 아니었다'고 되어 있다. 또 '오늘날에 이르도록 내가 어떤 자리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해본 일이 없고, 어떤 자리에 앉고 싶은데 협력해 달라고 한 적도 물론 없다'라고도 되어 있다. 주어진 것을 묵묵히 감당하는 태음인의 성정을 느낄 수 있다.
 
태음인은 재물에 대한 탐심이 남다른 편이지만, 윤보선 대통령의 회고록을 보면 '치심'의 절제를 읽을 수 있다. 치심은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이 먼저 대접받고 싶어 하는 조급함이다. 사치스러운 마음이 사라지면 태음인의 어깨에서는 위의를 느낄 수 있다. 1960년 민주당내 구파였던 그가 신파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치심이 절제된 온화한 성품이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윤보선 대통령의 4대조가 술이 과하여 가세를 기울게 했다 하여 윤보선의 조부는 금주를 권했고, 그는 평생 절주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함께 조카 윤남경 씨가 건강의 비결로 꼽는 최고의 부분은 잡곡밥 식사이다. 흰 쌀밥으로만 식사를 한 게 아니라 콩·보리·팥·조 등 여러 잡곡을 섞어 식사를 했다고 한다. 흔히 오곡밥은 찹쌀·수수·차조·팥·콩을 말한다. 속이 냉하기 쉬운 소음인이라면 뱃속을 따뜻하게 하는 찹쌀의 양을 늘리는 것이 좋을 것이며, 윤보선 대통령과 같은 태음인은 콩의 비율을 늘려서 식사를 하면 좋다.
 
태음인은 양질의 단백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콩에 함유된 단백질과 비타민·철분은 오장을 보호하고 기의 순환을 맞는 체질에 적합한 곡류이다. 소양인은 팥의 비율을 늘리고, 태양인은 보리의 비율을 늘려서 같은 오곡밥이라도 곡류의 비율을 체질에 맞게 조정하여 식사를 하면 더 도움이 된다.

김해뉴스 / 이현효 활천경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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