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슭을 내닫던 꿈/ 종이배에 띄워 놓고/ 밤이슬 맞는 산하(山河)/ 굽어 돌아 흐르는 강(江)/ 어쩌다 침묵을 배워/ 안으로만 흐르는가// 겨울바람 불어오면/ 얼음 되어 가슴 죄고/ 소나기 내린 날은/ 울음으로 지샜거니/ 어느 뉘 그의 흐름을/ 체념이라 이르리// 둥근 해 솟는 세월/ 굽이마다 외로워도/ 바위 갈아 새긴 인고(忍苦)/ 전설처럼 흐르는 강(江)/ 내일도 흐르오소서/ 소리 않는 뜻이여'

1974년 어느 여름날, 문학청년 서태수가 홍수가 져서 굽이쳐 흘러가는 낙동강을 구포다리에서 바라보며 쓴 시조이다. 유신의 혹독함을 온 몸으로 느끼던 시절, 그 시대를 도도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에 비유한 작품이다. 이 시가 서태수(67) 시인의 시조 '강-낙동강·1'이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낙동강을 부제로 한 시조만 450편 써 온 '낙동강의 시인' 서태수 시인을 만났다.

▲ 낙동강을 부제로 한 시조만 450편 써 온 '낙동강의 시인' 서태수 시인

천방지축 흐르는 강물을 감싸는 강둑
그렇게 조화를 이루는 게 바로 강이다
하물며, 사람이라 다르겠나
우리도 강 같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절, 나의 시는
낙동강에 안기며 지금처럼 흘러왔으니…

서태수 시인은 낙동강 연작 시조집만 다섯 권을 엮어낸 시인이다.(김해뉴스 6월 25일자 11면 보도) 낙동강을 주제로 혹은 부주제로 써 온 시조가 무려 450여 편에 이른다. 서태수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낙동강의 시인'이라 부른다.

서태수의 '공간'은 낙동강이다. 김해를 에워 감싸며 흐르는 낙동강을 보면서 인터뷰를 하자는 제의에 시인은 흔쾌히 승낙했다. 고맙게도 김해문인협회 양민주 회장이 운전을 자처하고 나섰다. 후배문인까지 함께 참석한 이날의 인터뷰는 하루치 문학기행처럼 이어졌다. '낙동강 문학기행'. 낙동강을 볼 수 있는 김해의 강 언덕을 찾아다니는 차 안에서 시인의 삶은 강물처럼 흘러나왔다.

서태수는 1948년 장유면 대청리 대청마을에서 태어났다. 서낙동강 주변에서 줄곧 살았으며, 현재도 낙동강 옆에서 살고 있다. 그의 자택은 부산시 강서구 강동동이다. 장유초등학교, 장유중학교를 다녔다. 7남매 중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 누나와 형들의 책을 함께 읽는 '독서조숙아'였다. "집에서 형, 누나들과 함께 시조카드놀이를 자주 했습니다. 초장이 제시되면 재빨리 중장과 종장을 찾는 놀이였지요. 소월시집도 그때 읽었구요, 중학교 때는 한하운 시인의 '황톳길'을 읽으며 울기도 했지요."

그는 7남매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는데, 집에서는 그를 실업계학교로 보냈다. "형들이 다 대학을 나왔는데, 대학 나와도 별 수 없으니 실업계를 가라지 뭡니까. 그래서 부산 경남상고를 졸업했어요. 3학년 여름에 취업이 미리 결정됐는데, 직장생활을 1년 정도 하다가 다시 입시공부를 해 부산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지요."

당시 부산대 국문과에는 고전문학의 대가로 꼽히던 최동원 교수와 소설가인 요산 김정한 교수 등이 재직 중이었고, 임종찬 시조시인과 김창근 시인이 학과 선배였다. 시인은 "대학 재학시절에는 모든 장르를 한두 번씩 습작했다. 최동원 교수님과 임종찬 선배의 영향으로 시조도 썼다. 학보인 <부대신문>에 '입추의 오후'라는 자유시를 발표해 불문과 서림환 교수님의 호평을 받았다"면서 "소설이 쓰고 싶어 수해복구 내용을 담은 소설 '수남댁'을 써서 요산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새마을 운동 같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때 요산 선생이 나를 칭찬했더라면 소설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요산 선생이 낙동강에 소재 취재를 나오면 안내를 맡아 함께 다니곤 했다"고 옛 추억을 전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를 다녀오고, 부산 혜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했다.

시인과 함께 한 낙동강 문학기행은 대동면 월촌리 월촌마을에서 시작됐다. "밤낚시를 하러 가족들과 함께 오던 곳입니다. 예전에는 밀양, 양산으로 오가는 배를 대던 나루터도 있었고, 주막도 있었지요. 이 마을까지는 차가 들어오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텐트에 음식까지 싸들고 와서 낚시를 즐기곤 했지요.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모습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마을이며 강의 옛 모습은 다행히 아직도 남아 있네요." 시인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월촌마을을 찾던 추억을 더듬었다. 언덕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시인 옆으로 시원한 강바람 한줄기가 불어왔다. 풀과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시인의 시선은 한동안 강에서 떠나지 않았다.

월촌리에서 낙동강을 따라 오다가 조눌리 조눌마을 옆 낙동강변에 조성된 생태공원에도 들렀다. 시인은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조성됐지만, 저곳이 전부 강변에 살던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곳이었다. 강변 사람들은 강에서 모든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강에서 놀면서 먹을 것을 구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 하루 종일 강에서 놀았어요. 밥만 주면 아예 강에서 안 나왔지요. 고무 다라이(대야)를 강 가운데까지 밀면서 헤엄쳐 들어갔어요. 자맥질을 하면 강바닥에는 재첩이 지천이었습니다. 재첩을 손으로 긁어 담아 고무 다라이에 담고, 다시 자맥질을 하고… 친구들과 그렇게 노는 것인지,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른 채 강 속에 종일 있었어요."

시인의 발길은 다시 대저수문에서 멈추었다. 인근 생태체육공원에서는 낙동강 본류와 만나는 서낙동강의 물길이 보였다. 시인은 "월촌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물은 흐르고 강은 남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강'이라고 할 때, 흘러가는 물길만을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강은 강둑 사이로 물이 흘러가는 구조입니다. 나도 쉰이 넘어서야 강둑이 보였어요. 강둑 너머에서 사는 사람들. 그 주위의 들판, 산맥도 비로소 함께 보이더군요."

퍼뜩 그가 들려주는 '강'의 정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천방지축으로 흐르는 물길을 한 줄기로 모아 물머리가 몰고 간다. 물머리를 따라 뒷물들이 따라 가는 거다. 길을 잃지 않고, 또 새로운 물길을 내주기도 하면서 흘러간다. 그렇게 흐르는 물줄기를 강둑이라는 위대한 어머니가 감싸고 있는 것, 그것이 강이다"라고 말했다.

서태수는 '인간도 하나의 강'이라고 표현했다. 흐르는 물길이 세상의 들판을 적시며 자신이 품고 있는 보물을 모두 내어놓고 바다로 가듯, 인간도 그렇게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그의 시조 '노인-낙동강·399'는 그렇게 한평생을 흘러온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조의 2연은 이렇다. '흘려보낸 깊이만큼 하염없는 흐린 눈은/ 한 생애 굴곡 굽이 어드메쯤 멈췄을까/ 담장 위 까치밥보다/ 더 작게 웅크린 강'.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며 살아온 늙으신 부모님의 좁은 어깨와 작아진 몸피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시인은 시조를 쓰게 된 까닭에 대해서도 말했다. "세상을 향해 시의 표창을 던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내 시는 격렬했지요. 그러나 표창으로는 시가 되지 못한다는 문학원론과, 세상을 향해 온몸을 던질 수 없는 소시민인 나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했습니다. 그 무렵 시조는 장르의 특성상, 단호한 결기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표창이 아닌 시로 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지요. 그것이 향토성에 초점을 맞춘 낙동강 연작시조를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서태수가 생각하는 문학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고, 그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신대로 낙동강(세상을 흐르는 모든 강)을 긴 시간동안 노래해왔다. "강물은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로 흘러간 강물은 비가 되어 내리고 그 물은 강물이 지나갔던 그 자리에 다시 반드시 돌아와 흐릅니다."

앞으로도 그는 낙동강 이름을 붙인 시를 계속 쓸 생각이다. "지인들이 '낙동강 언제까지 쓸거냐?'고 묻곤 합니다. 평생 가는 거지요. 저 강물처럼.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사람들이 '낙동강 시조시인 서태수'라고 기억하면서, 저 강도 함께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 서태수 시인
김해 장유 출생. <시조문학>(1991), <문학도시>(2005)로 등단했다. 낙동강연작시조집 1~5집, 수필집 <부모는 대장장이>, <현대시조의 지적 연구> 등의 논저를 펴냈다. 부산 혜광고등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부산시조문학회장·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성파시조문학상, 청백리문학상, 낙동강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협, 한국시조시인협회, 김해문협 회원, 부산강서문화원 문학 강사로 활동 중.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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