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하략)".
 
심순덕 시인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시를 외국인 여성들이 서툰 한국어로 또박또박 돌아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시를 읽는 외국인 여성들도, 듣는 한국인들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는 '고마움'이라는 뜻을 가진 세계만국의 공통어였다.

▲ 결혼이주여성 문학동아리 '나도 꽃' 문학의 밤 행사에서 회원들이 노래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다문화카페 '통'에서 행사
각국 민속의상 차려 입은 회원들
고국에 보내는 편지 전시·시 낭송
 
지난 3일 오후 6시, 동상동 다문화카페 '통'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김해글로벗도서관이 주관한 결혼이주여성들의 문학동아리 '나도 꽃' 회원들이 준비한 '문학의 밤'이었다. 지난해 첫 행사에서 큰 감동을 주었던 행사여서 올해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행사가 열린 다문화카페 '통'의 한쪽 벽면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고국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들이 전시됐다. 한글로 정성스레, 그 아래는 모국어로 직접 쓴 편지였다.
 
"비가 오면 날이면 우산을 들고 밖에서 기다리시던 엄마, 결혼식 때 행복하라며 눈물을 훔치시던 엄마…"(초충평·중국) "먼 나라에 시집온 것도 어머니는 언제나 걱정이죠. 저도 항상 미안합니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르니까 엄마의 심정이 헤아려집니다."(오오타 히사코·일본) 내용도 감동적이었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글 글씨는 보통 한국인들의 글씨보다 더 예뻤다.
 
행사 시작 전에 도착한 김해시 도서관정책과 노순덕 과장은 이들의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노 과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쓴 편지와 시가 무척 감동적이다. 엄마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국적은 달라도 다 똑같구나 하는 걸 느꼈다"며 "다문화사회인 김해시에서 이 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행사장에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 벽면에 전시된 시와 편지를 둘러보는 사이 기모노, 아오자이, 치파오 등 각국 민속의상을 입은 '나도꽃'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다문화카페 '통'에 각국의 꽃이 한꺼번에 핀 듯 했다.
 
올해의 행사는 지난해보다 더 다채롭게 꾸며졌다. 혼자서 하는 낭송, 두 사람이 하는 낭송,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윤송, 노래 공연. 이날 회원들이 낭송한 시는 가족, 아이, 부부, 어머니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회원들은 문학수업 과정에서 이런 주제를 다룬 시를 주로 감상했다. 회원들은 한국에서 이룬 가정의 소중함을 이야기 했고,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함께 눈물 흘리고,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했단다.
 
이날 행사 중에는 즉석에서 특별 시낭송이 이루어졌다. 응웬티홍(베트남) 씨의 7세 딸 김민지 양은 갑작스레 불려나왔는데도 고은 시인의 짧은 시 '그 꽃'을 또록또록하게 낭송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민지는 "엄마가 집에서 계속 시를 외는 것을 보고 따라 외웠다"고 말해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시낭송 사이에는 노래공연도 이어졌다. 구라야마 마리코(일본) 씨의 우쿨렐레 연주, 초충평(중국) 씨의 중국악기 후루스 연주, 고월(중국) 씨의 '첨밀밀' 노래 등이 공연됐다. 중국악기 후루스의 독주 부분에서는 그 독특한 음색에 감탄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행사를 처음부터 지켜본 박경용 수필가는 "대단히 감동적인 행사이다. 다문화카페 '통'이 있는 이 자리는 고대 가락국부터 현재까지 어느 시대나 외국인이 가장 많이 오가던 곳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다문화가족이 참여하는 문학의 밤이 열려 의미가 더 크다. 다음 행사는 좀 더 넓은 장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볼 수 있도록 김해시에서 적극 지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민주 김해문협 회장은 "지난해 행사소식을 <김해뉴스>를 통해 보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감동이 더 크다. 고국은 달라도 마음으로 소통하고, 그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다문화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 많은 동남아국가 이주여성들이 참가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나도 꽃' 회원들의 수업을 이끌어가는 김경희 벨라회 회장은 "이 행사가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시를 통해 한국문화를 배우면서 뿌리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한편, 시낭송 발표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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