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모산과 김해시내를 내려다보는 장유사의 대형 황금불. 금관국을 부흥시키려는 질지왕의 염원이 엿보이는 듯하다.
'물이 맑구나. 무척 맑아. 이처럼 우리 금관국의 미래도 맑으면 얼마나 좋으리.'

왕은 기슭에 서서 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해반천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시각은 진시를 지나 사시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벌써 두 시진째 해반천을 보고 있었다. 붉은 색감이 해반천에 물들어 있던 때부터 하얀빛이 감도는 지금까지. 질지왕은 고개를 들어 투명하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눈은 부시고 가슴은 일순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그의 마음은 몹시도 무거웠다.

'어떻게 세운 가락국인데. 수로대왕과 허왕후께서 창업한 위대한 철의 나라가 어찌 이다지도 허물어지는고.'


# 해반천 기슭의 질지왕
때는 서기 450년의 초여름이었다. 가락국 8대왕으로 등극한 질지왕이 다스리던 시대였고, 가야 제국의 세력권이 이미 대가야로 넘어간 시대였다. 오십년 전, 광활한 중국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 호태왕은 오만의 군사를 몰아 반도의 남단을 휩쓸어버렸다. 가락국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고구려의 침략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바다 건너 야마타이국의 병사들까지 총동원했지만 고구려 군은 너무 막강했다. 그들의 철기병은 가락국을 초토화시켰고 가야 백성들은 고구려에 포로로 끌려갔다. 가락국 몰락의 서막이었다.
 
하지만 질지왕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땅에 불국토를 창건한 장유화상의 사리만 찾을 수 있다면 위대했던 가락국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분의 사리만 찾을 수 있다면, 대사의 원력을 빌릴 수만 있다면….'

질지왕은 나지막이 읊조리며 다시 해반천으로 눈길을 돌렸다. 왕이 고개를 숙이자 금동관에 달린 옥구슬이 강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관옥같이 깨끗한 왕의 얼굴에서 두 눈동자가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그때였다.

"대왕이시여, 추영장군이 돌아왔나이다."
 
내관의 말에 왕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 추영장군이 돌아왔다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전 앞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나이다."

왕은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나 급했으면 금동관이 다 떨어질 지경이었을까? 몇 달 전에 추영장군에게 영을 내린 적이 있었다. 장유화상의 사리를 찾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말라고. 그런 그가 돌아왔으니 사리를 찾았다는 말이 아닌가! 왕의 발걸음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 마침내 장유화상의 사리를 찾다

▲ 장유사 삼성각에 모셔진 장유화상 영정.
추영장군은 가락국 3대왕인 마품왕 시절에 활약하던 가평장군의 후손이었다. 포상팔국의 침략 때 가평장군의 장남인 미유장군은 혼신의 힘을 다해 분산성을 지켜냈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가락국 왕실을 위해 충성을 바친 무인 집안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전 앞뜰에서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뜰 가녘에는 허왕후께서 좋아했던 도화나무들이 한껏 심어져 있었다. 복숭아꽃은 이미 지고 없었지만 푸른 잎들만은 여전히 밝은 햇살 아래 초록의 빛을 띠고 있었다. 추영장군의 옆구리에는 붉은 비단으로 둘러싸인 궤짝 하나가 들려 있었다.

"추…추영장군! 어디…어디 계시오?"

질지왕은 급한 걸음으로 내전 앞뜰로 들이닥쳤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던지 턱밑에 달린 수염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대왕이시여. 저 추영, 대왕을 뵈옵니다."

추영장군은 무릎을 꿇으며 왕을 알현했다.

"그래, 장유화상의 사리는 찾았소?"

"찾았나이다."

"틀림없소?"

"이것이옵니다. 옛 골포국의 사찰에서 찾았나이다."

추영장군은 두 손을 높이 받들어 궤짝을 왕에게 바쳤다. 질지왕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붉은 비단에 싸인 궤짝을 두 손으로 받았다.

"이…이것이 정녕 장유화상의 사리란 말이오?"

"틀림없습니다. 그 사찰의 주지한테서 확인을 했습니다."

"오, 정말 장하오. 너무 수고 많았소이다. 그대야말로 우리 가락국의 진정한 신하요."

질지왕은 떨리는 손으로 붉은 비단을 풀어 보았다. 향나무로 만든 작은 궤짝이 나왔다. 왕이 궤짝을 여니 옥으로 만든 호리병이 있었다. 그 병을 거꾸로 세우니 오색영롱한 사리들이 나왔다. 황홀했다. 은은한 가향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사리들이었다.

원래 장유화상의 사리는 신어산 은하사에 모셔져 있었다. 그러나 마품왕 시절 포상팔국의 침략 때 은하사가 불타면서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마품왕 이후 가락국의 역대 왕들은 장유화상의 사리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대사의 사리는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포상팔국의 하나였던 골포국에서 훔쳐갔고, 골포국 어느 사찰에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만 있었다. 그런데 그걸 마침내 가락국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그래 어떻게 찾아냈소?"

"소신이 옛 골포국 해안가에 있는 사찰을 찾았을 때이옵니다. 그 절에서 쫓겨난 사미승 하나가 저에게 다가오더니 자기 사찰에 가락국의 보물이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해서 그 길로 바로 그 사찰을 포위했습니다."
"오, 그랬구료. 어서 더 이야기해 보시오."

"한밤중에 주지를 결박하여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오래전 골포국의 장수 하나가 이 절에 몰래 숨겨놓은 것이라고 하더이다."

"참으로 수고했소. 이 모두가 다 하늘의 뜻인가 보오. 우리 왕실이 또 한 번 그대 가문에게 신세를 졌소이다."

질지왕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곁에 선 내관들과 시종들, 대신들 모두 그윽한 눈길로 추영장군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왕과 신하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장유화상의 사리함을 보는 모습이.
 

# 장유화상의 사리를 모실 탑을 지어라!
장유화상의 사리를 찾은 질지왕과 신하들은 이제 탑을 지어 사리를 고이 모셔야 했다. 왕은 어느 사찰에 모실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 신어산 은하사에 사리가 계셨으니 마땅히 그곳에 지어야 합니다."

"허나 은하사에서는 한 차례 도난을 당했으니 이미 인연을 떠난 곳입니다. 다른 곳에 세워야 합니다."

대신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 질지왕은 그들의 말을 듣고 여러 날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어머니 허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왕후사 근처의 작은 암자가 떠올랐다. 수로대왕과 허왕후께서는 처음 명월산에서 만나시어 사흘을 보낸 후, 불모산 고개에서 다시 하루를 보낸 후에 봉황대 궁궐로 들어왔었다. 그때 허왕후의 오빠인 장유화상께서 두 분을 인도하셨다.

질지왕은 즉위하자마자 두 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고개에 왕후사를 세웠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며 두 분을 추념했다. 그 절 근처에는 예전 장유화상께서 세웠던 작은 암자가 하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세월이 흘러 그만 퇴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왕은 장유화상께서 처음 발을 디딘 가락국의 땅에 그분의 사리를 모시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내 그분의 사리를 모실 곳을 찾으러 갈 것이오. 다녀와서 결정하리다."

수군거리던 대신들은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왕을 쳐다보았다. 왕은 내관을 불러 차비를 차리라고 영을 내렸다. 대신들의 궁금해 하는 눈빛을 뒤로 한 채 왕은 용상에서 일어나 총총히 대전 앞뜰로 걸음을 옮겼다.

왕후사로 가는 계곡은 유적했다. 초여름답게 산은 온통 녹의홍상의 자태로 가득했다. 숲속의 공기는 쾌청했고 푸른 하늘을 날던 새들이 가끔 나무 위에 내려 앉아 풀냄새 물씬 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바람소리에 섞여 청아한 음색을 내고 있었다. 가끔 아스라이 먼 곳에서 웅장한 폭포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질지왕은 계곡을 따라 왕후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멀리서 한 무리의 꽃무릇이 눈에 띠었다. 연붉은 꽃잎이 여러 조각으로 나뉜 채 가녀리게 떨고 있었다. 상사화였다. 잎이 피면 꽃이 없고 꽃이 피면 잎이 사라지는 상사화. 늘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결코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는 질지왕의 마음이었다. 수로대왕께서 창업한 이래 위대한 해상왕국의 깃발을 천하에 떨쳤던 가락국이었다. 허나 자기 대에 이르러 쇠락의 길을 걷고 있으니 그의 마음은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제 작은 희망이 보였다. 장유화상의 사리를 모실 탑을 지어 그분의 원력을 빌릴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리.

▲ 장유사 뒤편에 있는 장유화상순적비(왼쪽)와 사리탑.
멀리서 차츰 왕후사가 눈에 들어왔다. 질지왕은 왕후사의 응향각에 모셔진 수로대왕과 허왕후의 명복을 빈 후에 다시 발걸음을 암자로 돌렸다. 고개를 조금 오르니 거의 허물어질 듯 한 전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전각 옆에는 너비가 열 자에 깊이는 삼 십 자 정도 되는 작은 토굴이 있었다. 장유화상께서 수도정진하던 토굴이었다.

"사리함을 내게로 가져오라."

왕의 명에 따라 내관이 장유화상의 사리함을 가져왔다. 호리병을 열어 사리를 꺼내든 질지왕은 토굴 한 가운데에 있는 반석 위에 조심스레 사리를 내려놓았다. 해가 차츰 서녘으로 넘어가면서 붉은 빛이 깊숙이 토굴 안으로 들어왔다. 왕은 다섯 과의 사리에 어리는 붉은 빛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빛은 사리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야 내 고향에 왔다는 듯이 사리는 금방이라도 일어나 움직일 것만 같았다. 질지왕은 확신했다. 이곳이야 말로 장유화상의 사리를 모실 최고의 장소라는 것을.

"모두들 보시오. 바로 이곳이 장유화상의 사리를 모실 곳이오. 짐은 저 전각을 보수하여 새롭게 사찰을 지을 것이고, 이 토굴 옆에 장유화상의 사리를 모실 탑을 만들 것이오."

왕을 따라온 내관들과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락국에 불법을 처음 전한 장유화상의 사리를 모실 최적의 장소라는 데에 이의가 없었다.
 

# 석조팔각대리석에 모셔진 장유화상의 사리
질지왕이 다녀간 후, 가락국의 모든 석수장이와 목수들이 동원되어 사리탑과 사찰 건립이 시작되었다. 먼저 허물어진 대웅전을 보수하고 두 채의 전각을 더 지었다. 대웅전 옆에 삼성각을 따로 지었고 범종루와 천왕문의 구실을 하는 전각이 절 입구를 장엄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절 안쪽 고즈넉한 곳에 석조팔각대리석을 만들기로 했다. 높이는 8자로 정했으며, 사리탑 앞에는 가락국사 장유화상비를 세워 이곳이 장유화상의 유지임을 분명히 하도록 했다.
 
마침내 사리탑이 완성되던 날, 질지왕과 왕비를 비롯한 가락국 왕족들과 만조백관들이 모두 모여 장유화상의 사리를 탑 안에 봉안하였다. 질지왕은 이 절을 장유사라고 칭했다. 은은한 풍경소리가 산자락을 가득 채운 가운데 왕은 친히 다섯과의 사리를 탑신 깊숙한 곳에 봉안하였다.
 
질지왕은 새삼 소회를 느끼며 사리탑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에 푹 쌓인 산세가 아담하고 예쁜 기운을 안겨주는 장유사가 눈에 들어왔다. 절로 향하는 초입의 장유폭포에서는 흰 물결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팔각 기단과 팔각 탑신, 옥개석으로 이루어진 장유화상 사리탑이 대웅전의 용마루를 디디며 장엄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수로대왕이시여, 허왕후시여, 그리고 장유화상이시여. 당신들께서 창업한 이 가락국을 대대손손 지켜주소서.'
 
질지왕은 두 손을 합장한 채 오래도록 사리탑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를 따라 모든 사람들도 합장을 하였다. 풍경소리 다시 은은하게 울려왔고 옥색 구름이 사리탑 위에 흘러가고 있었다. -끝-





김해뉴스
김대갑 문화유산 해설사·여행작가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