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 터전에 살기 좋아 옛 부자 동네
효자 마을로 소문 자자하고 인물 많아
박영식 전 교육부장관도 마을 출신
어버이날은 명절보다 소중해 큰 잔치


▲ 효동마을에 있는 화목1통마을회관.

조선 말기 고종 때 김해의 한 마을에 부모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형제가 있었다. 박시형, 박만형 형제였다. 그들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은 뒤 피를 어머니가 마시게 해 소생시켰다. 이들은 어머니가 숨을 거둔 뒤에도 묘 서쪽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지내는 등 마지막까지 효를 다했다. 형제의 조카 박남규 역시 늙은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했다. 고종은 세 사람의 효심에 감동해 이들에게 벼슬을 내렸다. 이후 사람들은 세 효자가 살았던 마을을 효동(孝洞)이라 불렀다.

행정동으로는 화목1통인 화목동 효동마을은 푸른 칠산(七山)의 한 봉우리를 등지고 자리잡은 농촌마을이다. 화목1통 마을회관에 갔더니 할머니 8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터줏대감들이다. 마을의 옛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80대 할머니들이 '장유유서'를 앞세운다. 마을의 '왕언니'인 홍복남(94) 할머니의 말부터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우리 마을이 김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 중에 하나였지. 마을에 있는 땅 대부분이 논이었어. 김해평야 중에서도 우리 마을의 땅이 으뜸이라고 그랬지. 땅이 좋아서 그때는 마을사람들 전부가 벼농사를 지었어. 집집마다 가진 논이 넓다보니 이맘때면 동네 사람들 30~40명씩 모여 품앗이를 했어. 매번 마을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니 이웃이 모두 내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어."

한두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자 함께 있던 할머니들도 덩달아 신이 난 모양이다. 잠깐 잊고 있었던 이웃의 대소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을은 화목동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지. 사람살기 좋은 양지였지. 그래서 그런지 김해에 이름난 부자들도 우리 마을에 많이 살았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았어.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박영식 전 교육부장관도 우리 마을 출신이야." 우기연(85) 할머니가 마을자랑을 했다.

할머니들의 기억 속 효동마을에는 푸른 논이 드넓게 펼쳐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마을에서 논을 찾아보기 힘들다. 20여 년 전부터 마을에 공장들이 들어서 대부분의 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마을에 들어선 공장만 10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집과 공장이 서로 뒤엉켜 있고 인적이 드문 마을길에는 쇠를 깎는 소리가 들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효동마을의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우후죽순 들어선 공장 때문에 인정이 메마른 것 같다. 날아오는 쇳가루와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 효자 마을로 유명한 효동마을 전경.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논은 물론 주민들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주민들로 북적였고 효심 가득한 청년들도 많았다던 효동마을에는 지금 40여 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70~80대 어르신들이고, 홀몸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박금식(60) 효동마을 이장은 "공장이 사라지고 마을에 집이 많이 생겨 옛날처럼 이웃이 함께 오순도순 사는 게 마을 어르신들의 꿈"이라며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많이 이주해 어르신들에게 효의 가치를 배웠으면 좋겠다. 나아가 앞으로 효동마을이 김해에서 가장 어르신들이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효동마을에서는 한해 중 명절보다 중요한 날이 있다. 바로 어버이날이다. 마을 부녀회와 청년회는 어버이날마다 마을 주민들을 모아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어온 이 행사는 마을의 전통이 됐다. 강임순(83) 할머니는 "우리 마을처럼 주민들이 마음을 다해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마을은 보기 드물다. 이장 등 주민들은 어버이날뿐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며 주민들을 칭찬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웃기 시작한다. 한 할머니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노인회관에 영감, 영감이 있었으면 좋겠어!" 외로운 할머니들이 노령의 로맨스를 꿈꾸는 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할머니들이 말하는 '영감'은 다름 아닌 '노래방기계'였다. 

김해뉴스 /김명규 기자 kmk@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