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괴롭힌 역병 중의 하나로 14세기의 중세에 대대적으로 창궐하여 전 유럽 인구의 3분의1이 희생된 흑사병을 들 수 있다. 이 병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후 숙주인 설치류 동물들에 의해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전파된 것이지만 당시에는 이 병의 근원을 알지 못해 전 유럽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또 지금까지도 그 정확한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17세기 런던의 대역병이 발생하였을 때 이 병에 의하여 당시 런던 인구의 5분의1 정도인 10만여 명이 사망하였고 그 유명한 런던 대화재가 발생하자 비로소 진정되었다.
 
대규모의 역병 또는 재난에 대한 원인을 모르면 두려움과 재앙은 서로 부채질하여 활활 타오르다가 결국은 희생양을 찾게 된다. 중세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는 유태인들이 병을 퍼뜨렸다는 소문과 함께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 집단학살이 끊이지 않았으며, 네로 황제 때의 로마 화재에서도 유태인이 희생되었다. 런던 대역병에서는 런던의 최빈민층이, 그리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본 관동대지진 때에는 우리 조선인들이 희생되었다.
 
이제는 과학의 발달로 인류는 거의 모든 질병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통제할 능력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기술과 문명은 칼의 양쪽날과 같아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재앙을 우리에게 짐지우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원자력 에너지이다.

지난 3월 초 일본 동북부에서 발생한 미증유의 지진과 해일을 우리는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2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의 직접적 피해는 점차 관심에서 멀어지는 반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의한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증폭되고 있다. 방사능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은 구름처럼 걷잡을 수 없이 피어 오른다. 후쿠시마 지역의 농어산물은 물론 일본산 농수산물은 경계 대상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잡힌 수산물조차 기피되고 있다.

언론은 연일 원전 사고와 그에 따른 방사능 누출 등을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조는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고 잔뜩 흥분되고 격앙된 어조이다. 방사능의 위해에 대한 공포스러운 내용을 이야기하고 끝에 가서 '그러나 아직은 양이 적어 건강에는 영향이 없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또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극단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원전 옹호자들은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므로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는 극히 예외적인 것이며 앞으로도 원전의 건설과 운전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원전 반대자들은 후쿠시마 사고는 이미 예측된 사고로서 모든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전 옹호자들은 지금의 방사선량은 건강에 하등 영향이 없다고 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암이나 유전적 기형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무릇 공포는 무지로부터 시작되며 무지는 정보의 부족, 또는 부정확한 정보에 기인한다. 지금은 페스트에 쫓겨 도망치는 데카메론의 중세시대가 아니다. 방사선의 건강에 대한 영향은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히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우리 국민이 경험하고 있는 두려움은 전적으로 정보 부족에 기인한다. 그리고 정보의 전달 방식 또한 우리의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생경한 전문용어가 아닌, 국민의 생활을 고려한 언어로서 현재의 후쿠시마 원자력 방사능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아울러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매뉴얼도 공개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언론은 정보에 대한 감정적 윤색을 삼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국민들 역시 방사능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걱정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