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우리나라 고대사의 수수께끼다.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세운 이 나라는 500여년 간 김해를 수도로 정하고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일본과의 왕성한 교류를 통해 국가 부흥을 도모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최근 들어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제4의 제국'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야의 유적과 유물이 많지 않은 탓에 대부분의 역사는 장막에 가려져 있다. 역사고고학자 등 전문가들은 고대 가야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일본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왜)과 교류했던 가야의 흔적이 일본 열도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일본의 역사 기록이나 유적과 유물, 신사의 지명 등에서는 손쉽게 가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김해뉴스>는 인제대학교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 대성동고분박물관 송원영 학예사의 자문을 바탕으로 일본 현지를 방문, '일본 속의 가야'를 찾아봤다.

 

▲ 일본 후쿠오카에서 기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이토시마 반도의 '카야산'. 지난 6월 25일 촬영 당시 현지 날씨가 흐린 탓에 산 전체가 운무에 쌓여 흐릿하게 보인다. 후쿠오카(일본)=김병찬 기자 kbc@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30㎞ 떨어진
이토시마 반도에 우뚝 솟아 녹음 장관
규슈 북부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 꼽혀

츠쿠시후지·이토시마산으로 불려도
이토시마 현지인들 "카야산이 유명"
가야와 일본의 해상교류 역사적 증거

 

▲ 후쿠오카의 카야산 위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40분가량 날아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도착했다. 김해와 후쿠오카 간의 직선거리는 불과 200㎞ 정도. 김해와 대전 사이의 거리와 비슷하다. '일본 속의 가야'를 취재하기 위해 후쿠오카를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카야산(可也山·365m) 때문이다. 이름부터가 가야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
 
후쿠오카 공항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 중앙부두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산이 하나 보인다. 바로 이 산이 카야산이다. 이 산은 규슈(九州) 북부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츠쿠시후지(筑紫富士)라고도 불린다. 츠쿠시는 규슈 북부의 옛 이름이고, 후지는 일본에서 가장 높다는 후지산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영식 교수는 "일본 지도에는 이 산을 카야산이라 표시한 뒤 괄호 안에 츠쿠시후지라고 써 넣고 있다"면서 "카야산은 합천의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伽倻山)과 같은 이름이다. 서로 다른 한자를 쓰고 있지만, '가야'라는 같은 소리를 표현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카야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2천~1천500년 전 가야인들이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 열도에 진출했을 때 가장 먼저 본 곳이 카야산이다. 이영식 교수는 "가야는 일본사람들이 처음으로 알게 됐던 외국이었다. 고대 삼한의 세 나라 중에서 가장 먼저 교류를 가졌던 사람들도 가야인들이었다"면서 "일본열도로 이주했던 가야인들의 흔적은 무려 1천5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카야산은 대한해협을 향해 돌출해 있는 이토시마( 島) 반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가던 가야의 항해사들에게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야산은 후쿠오카 공항에서 30㎞가량 떨어진 이토시마 시에 위치해 있다. 후쿠오카 시내 하카타 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가량 달리면 이토시마의 지쿠젠마에바루 역에 닿는다. 지쿠젠마에바루 역은 카야산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다. 역 앞에는 카야산 입구로 가는 버스가 다닌다.
 
카야산으로 향하는 버스는 1시간 30분마다 한 대씩 있다. 지쿠젠마에바루 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의 직원은 "택시를 타면 20분 정도 만에 카야산에 도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현지인의 입을 통해 '카야'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합천의 가야산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산이 일본 열도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인들은 가야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카야산 주변마을의 경치를 살펴보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본인들에게 카야산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카야산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지쿠젠마에바루 역에서 카야산이 있는 북쪽으로 30여 분 걷다보면 주택가를 지나 농촌마을이 나온다. 김해 대동면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일본 농촌의 경치를 감상하던 중 넓게 펼쳐진 농지 끝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산 하나를 발견했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있는 저 산이 카야산일까?
 
행인에게 산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저 산이 카야산이 맞다. 혹시 한국인인가? 듣기론 오래 전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 건너와 살았다고 해서 저 산 이름을 카야산이라 부른다고 한다"라고 대답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붙잡고 말을 더 붙였다.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테(60) 씨라고 했다. 그는 "후쿠오카에 사는 사람들은 카야산을 츠쿠시후지라 부르지만, 이토시마에 사는 사람들은 이토시마산 또는 카야산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가야의 본래 한자와는 다르지만 분명 발음은 가야였다. 이테 씨는 "한국의 역사 중에 가야라는 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카야병원' 이정표. 이 또한 가야와의 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흥분된 마음으로 다시 카야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연히 도로 바닥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표지판 하나를 발견했다. '카야병원 2.5㎞'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카야산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의 이름을 딴 병원이 들어서 있는 것이었다. 카야산 입구의 위치를 가리키는 표지판도 보였다. 도로 곳곳에 있는 표지판에서 카야라는 한자를 발견할 때마다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카야산 말고도 일본 지명 중에는 가야와 관련된 것이 적지 않다. 일본어사전에 보면 '카라'(加羅)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어나 일본문화를 모르는 외국인 또는 외국제 물건'을 뜻한다고 한다. 이영식 교수는 "카라의 어원은 가야의 다른 이름인 가라(加羅)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는 일본어학계나 일본고대사학계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후쿠오카 현의 카라(韓良), 카라향(韓良鄕)이나 사가(佐賀) 현의 카라츠(唐津), 오카야마(岡山) 현의 카야군(賀陽郡) 등도 그런 지명들이다.
 
학교를 마친 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던 소년을 만났다. 이름은 스이(15)였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카야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한국 사람이 여기 많이 살아서 산 이름을 카야산이라 불렀다고 한다"고 말했다. "가야가 한국의 옛 국가 이름인 것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도 가야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보거나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영식 교수는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일본열도의 산 이름이 카야산이고, 이 산이 후쿠오카 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가야와 일본이 해상교류를 활발하게 해왔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증거로 해석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시간가량 더 걸어간 뒤에야 카야산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카야산은 신어산 높이의 절반 정도였다. 일본 지도에는 카야산의 높이를 '해발 365m'로 기록해 놓고 있다. 그러면서 '현해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산'이라 설명돼 있다. 대마도에 있는 산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산인 셈이다.
 

▲ 카야산.

카야산 부근에 도착하자 산 입구에 작은 농촌마을이 나타났다. 혹시 이 마을 사람들 중에 가야인의 후손이 살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에서 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와 일본의 카야산 부근에 정착했던 가야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을에는 대략 100여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농번기를 맞아 다들 일하러 나갔는지 주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20여 분을 더 걸어 카야산 입구에 도달했지만 산에 올라갈 수 없었다. 등산로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카야산은 울창한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해가 저물 시간이 됐는데다 무작정 산을 오르다간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지쿠젠마에바루 역의 관광안내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카야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정상까지 올라가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이 돌아왔다.
 
카야산 정상에 오르면 대한해협과 인접해있는 후쿠오카 북쪽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고 한다. 대한해협을 건너 카야산을 바라보며 일본에 건너왔던 가야인들은 거꾸로 카야산 정상에 올라가 대한해협을 보면서 떠나온 조국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산 정상에서 가야인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둘러볼 수 없었던 게 새삼 아쉽다.

김해뉴스 /후쿠오카(일본)=김명규 기자 kmk@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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