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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버린 '가야 마을' 감춰진 역사 현장(2)후쿠오카 니시진마치 유적지
  • 수정 2017.11.01 16:32
  • 게재 2014.07.29 15:07
  • 호수 184
  • 10면
  • 김명규 기자(kmk@gimhaenews.co.kr)

카야산(可也山·365m) 취재를 마치고 후쿠오카로 돌아오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산에 '가야'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면 수많은 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인들은 어디에 정착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일본에 어떤 문화를 전파했을까.

 

   
▲ 일본 후쿠오카 니시진마치 표시지도

일본 최초 발견 부뚜막 포함된 부엌
가야 철기 문화양식 닮은 제철 흔적
김해 출토물 닮은 토기 등 대량 발굴
3~4세기 건너간 이주민 유적지 추정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발굴조사
학자들 "민간교류·문화전파의 증거"
이후 고교 건물 지으며 묻어 흔적 묘연
한·일 양국 공동 역사적 재조명 필요



일본에 정착한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 유적지가 있다.  후쿠오카 현 사와라 구 니시진에 있는 니시진마치(西新町) 유적지다.

이 유적지는 1998년 니시진의 슈컨고등학교가 학교 건물을 증설하기 위해 땅을 파던 중 발견됐다. 당시 발굴 조사는 후쿠오카교육청 문화재보호과가 담당했다. 발굴 당시 니시진마치 유적지에 대한 후쿠오카 교육청의 기록은 이렇게 돼 있다. '이 유적지는 하얀 모래에 덮여 있었다. 발굴해보니 3세기 초부터 4세기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초기 이주민들의 대규모 주거지가 나타났다. 발굴된 40곳의 주거지 가운데 5곳에서 부뚜막이 딸린 부엌을 발견했다. 이밖에도 토기 100여 점도 함께 발굴했다.'

당시 한·일 양국의 언론에서도 니시진마치 유적지를 자세히 보도했다. 1998년 국내 한 언론은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는 가야의 마을 하나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유물이 발굴됐다'면서 '가야계통의 토기들이 대량 발굴되었고 일본 최초로 발견된 부뚜막과 가야의 철기 문화양식을 닮은 제철의 흔적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니시진마치 유적을 살펴보면 3세기 중·후반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니시진에 정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뚜막이 있는 주거 유적과 당시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토기가 출토됐다'고 전했다.

 

   
▲ 후쿠오카시립박물관의 전경. 아쉽게도 가야와 관련된 유물들은 보관되어 있지 않다.


니시진마치 유적은 하카타 역에서 기차로 25분가량 이동하면 갈 수 있다. 카야산이 있는 이토시마 시의 지쿠젠마에바루 역에서는 기차로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기자는 몹시 당황했다. 니시진마치 유적지라고 일본지도에 표기돼 있는 장소에는 유적지 대신 슈컨고등학교 체육관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유적지에 대해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지도에 유적지 표기가 있고 인터넷에서도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데, 막상 현장에는 유적지가 이 장소에 있었다는 안내 표지판하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후쿠오카교육청 기록을 다시 살펴보니 이런 내용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니시진마치 유적지 발굴조사를 마쳤다. 이후 교육위원회가 학교 건물 증설을 다시 논의했다.'

후쿠오카교육청 등 일본 측은 니시진마치 유적지를 보존하지 않고 체육관을 짓기 위해 터를 덮어버렸던 것이다. 가야와 일본의 왕성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적지를 설명문 하나 남겨두지 않고 묻어버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슈컨고등학교 체육관 앞에는 니시진 겐코방루터(西新 元寇防壘址)라는 유적지가 있다. 길이가 30㎡가량 되는 유적지다. 13세기에 고려를 침공했던 몽골군이 일본을 침략하려 했을 때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가 몽골군을 막기 위해 지은 방벽의 터다. 일본이 한반도와의 교류의 흔적은 묻어두고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은 방벽 터만 이처럼 남겨둔 이유가 뭘까.

슈컨고등학교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후쿠오카시립박물관을 찾아갔다. 혹시 이곳에는 니시진마치 유적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후쿠오카시립박물관에서 다시 허탈감을 맛봐야 했다. 박물관에는 조선, 일본의 교류와 관련된 유물만이 전시되고 있었다. 니시진마치 유적지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다. 후쿠오카박물관 연구원의 연락처를 물어 니시진마치 유적지와 가야의 역사에 대해 물었지만 그 연구원도 아는 게 없었다.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은 어디에 보관돼 있을까. 기자는 한국에 돌아와 부산대학교 역사고고학과 신경철 교수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류가 후쿠오카매장문화재센터에 일부 보관돼 있다는 것이었다.

   
▲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후쿠오카매장문화재센터. 사진제공=서일본신문사


자료를 찾아보니 2006년 한 국내 언론이 후쿠오카매장문화재센터 구수미 다케오 연구원과 인터뷰를 한 게 보였다. 다케오 연구원은 "3세기 중엽 토기를 대량 생산한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상당량의 가야계 토기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그 시기에 가야의 도공들이 많이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에서 야마토 정권이 시작된 4세기 이전부터 이미 김해 등 한반도 남부와 일본 규슈지방을 중심으로 민간차원의 교류가 지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발굴된 가야계통의 토기는 주둥이가 넓은 항아리에서부터 찻잔 형태의 토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인제대학교 이영식 역사고고학과 교수는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는 가야계통의 토기와 백제계통의 토기가 발견됐다. 이중 단경호(短頸壺)라 불리는 짧은 목 항아리는 가야 계통으로 주촌면 양동리 고분군과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것과 모양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출토된 오렌지색을 띠는 토기는 적갈색 연질토기로 김해 조개무지에서 처음 발견돼 적색소성토기(赤色素燒土器) 또는 적갈색김해식토기(赤褐色金海式土器)로 불리고 있는 가야계통의 토기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발견된 일본 최초의 부뚜막은 일본인들의 주거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1980년 동아대박물관이 발굴한 부원동 유적에서 고정식부뚜막을 갖춘 가야시대 움집이 나온 적이 있는데, 니시진마치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정식 부뚜막은 부원동 유적에서 발굴된 부뚜막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본 최초의 부뚜막이 한반도와 가까운 후쿠오카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가야인들이 부뚜막 문화를 가지고 일본 열도로 이주하고 또 정착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며 "가야의 부뚜막 문화는 고대일본의 심장부인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오사카(大阪)까지 전파됐다. 5세기 이후부터 부뚜막은 고대일본의 취사와 난방을 책임지던 중요한 주거시설 중에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고 말했다.

양국의 역사학자들은 니시진마치 유적지를 가야와 일본의 교류를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이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슈컨고등학교 땅 아래에 묻혀 있는 니시진마치 유적. 언젠가는 한·일 양국의 역사학자들이 화려하게 재조명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김해뉴스 /후쿠오카(일본)=김명규 기자 kmk@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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