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김해시 주촌면 노인요양보호시설 보현행원을 찾은 지적장애인들이 노인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일. 모처럼 날씨가 맑게 갠 화창한 토요일 오후 김해시 주촌면에 위치한 노인요양보호시설 보현행원. 오늘은 시설에 특별한 자원봉사자들이 방문하는 날이다. 시설 3층의 옥상, 갓 세탁을 마친 산더미 같은 빨래 사이로 오늘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사실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이다. 주말을 봉사활동으로 보내고 있는 위선정(28)·김영수(27)·안재현(26)·최민혜(23)·김두한(21) 씨 등 5명은 모두 혼자서는 간단한 외출도 어려울 만큼 중증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중증 지적장애인 위선정 씨 등 5명 주촌 노인요양시설서 주말 봉사활동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게 기뻐요"

이곳의 빨래를 널고 개는 일은 일반인이 하기도 힘들다. 빨래에는 옷가지는 물론이고 오물이 묻어 있던 천 기저귀도 간혹 섞여있는데다 그 양도 공업용 세탁기 4대가 쉼 없이 돌아가야 할 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래를 너는 5명의 지적장애인의 얼굴에서 힘든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얼굴에 맺힌 굵은 땀방울이 무색하게 "기쁘다"는 말만 오고 간다.
 
"나는 만날 받기만 했잖아요. 근데 나도 누굴 도울 수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해요. 그래서 기뻐요." 위선정 씨가 수줍게 웃었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하는 일도 발견했다. 밥이든 빨래든 집안일은 뭐든 자신 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빨래를 대충 너는 동생들을 매섭게 타박했다. "탁탁 펴서 널어야지, 큰 빨래는 중간을 접고 집게로 집어주고." 야무진 솜씨를 보니, 집안일 '마스터'라는 별칭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식당에 취직하고 싶다는 그의 꿈도 곧 이뤄질 것 같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인 덕분에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일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젠 막내 김두한 씨가 나설 차례다. 김 씨는 장애인교육시설인 '한마음학원' 내에서도 명가수로 통한다. 그가 국민트로트 '무조건'을 부르기 시작하자, 요양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엔 금세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가족과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는 정지훈(16·원경고) 군은 두한 씨의 흥을 이어 기타로 '오빠생각'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짓궂은 장난에 맏형 김 씨는 정 군의 연주에 맞춰 얼굴이 벌게 질 때까지 춤을 춰야 했지만 싫은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정 군은 "장애우 형, 누나가 땀을 흘리며 남을 돕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자신이 남을 돕고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장애인 봉사단은 앞으로 1년 동안 토요일을 이용해 매달 2회 '보현행원'을 찾게 된다. 주로 '빨래개기' 같은 단순한 업무를 맡지만, 앞으로는 차차 노인들의 말벗도 해주는 등 활동범위를 넓혀갈 생각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이 스스로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보현행원을 떠나게 되더라도 봉사활동은 계속될 예정이다. 따뜻한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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