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의회 전영기 부의장이 시원한 얼음이 떠 있는 녹찻물에 만 굴비정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
소금 간 참조기 말려 1년 이상 보관
전남 영광 '보리굴비' 맛 그대로 느껴져
짭짤하고 담백한 굴비 살과 찬 물밥
더위에 지친 입맛 살리는 데 으뜸

김해시의회 전영기(새누리당) 부의장이 차를 몰아간 곳은 내동이었다. 한 빌딩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더니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5층에서 내렸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눈앞에 일식당이 나타났다. '석정'이었다.
 
"날씨가 더워서 입맛이 없을 텐데, 시원한 녹차 물에 굴비 한 마리 말아 훌훌 마시면 어떨까요?"
 
전 부의장이 식당 문을 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폭염 탓에 고기집이나 다른 식당에 가면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식단을 골랐다는 이야기였다.
 
'녹찻 물에 굴비라….'

어렸을 때 여름이면 어머니가 밥을 물에 만 뒤 생선살을 발라 떠먹여주던 기억이 났다.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하고 달콤한 계곡물에 말아먹는 담백한 물밥. 약간 비릿한 생선까지 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먹을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음식이었다.

▲ 잘게 찢은 굴비와 연한 녹찻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어릴적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사진 위부터)
전 부의장은 자리를 잡은 뒤 굴비정식을 주문했다. 물에 밥을 말아 굴비를 얹어 먹는 방식은 전남 영광 등지에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잘 말라 꼬들꼬들한 보리굴비를 녹찻 물에 말아 먹는 것이다. 굴비는 참조기를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내장까지 통째로 말린 것이다. 굴비는 1년 이상 장기 보관해야 한다. 굴비의 본고장인 영광에서는 말린 통보리를 항아리에 넣고 굴비와 보리를 겹겹으로 쌓아 보관했다고 한다. 이를 보리굴비라고 한다.

굴비는 단백질이 풍부해 몸이 쇠약하거나 피로할 때 먹으면 좋다고 한다. 또 만성 설사와 식욕 부진 때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여름철에 입맛이 떨어졌을 때 가장 적합한 음식인 셈이다.

전 부의장은 경남 고성이 고향이다.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다. 그는 처음에는 부산 범일동에서 공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혼자서 설계, 시공, 영업, 자금 등의 업무를 모두 맡다보니 공장 관리가 제대로 안돼 부도를 맞았다고 한다.

그때 전 부의장은 물설고 낯선 남아메리카의 우루과이로 건너갔다. 미군 미사일기지에서 유압인덱스테이블 설계를 맡았다. 당시 국내의 엔지니어 월급은 40만~50만 원 정도였지만, 미군 측은 1천200달러를 제공했다. 당시 환율로 따지면 100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국내의 임금이 오르자, 그는 2년간의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전 부의장은 김해 삼계동에 맹선산업기계라는 공장을 차렸다. 한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였다. 그런데 당시 그 대기업은 매년 3~4개월씩 파업을 하는 게 일상사였다. 8개월만 납품을 하는 식으로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는 회사를 정리한 뒤 고려용접봉 대리점을 차렸다. 이후에는 구산동에서 공구백화점을 연 뒤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 음식들이 하나둘 상에 올랐다. 회와 튀김 등이 차려졌다. 간단하게 입맛을 다시기에 적당한 음식들이었다. 이어 약간 푸르스름한 물에 얼음이 담긴 그릇이 하나 나왔다. 종업원에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녹찻 물이라고 했다. 이어 밥과 함께 잘게 찢은 굴비를 담은 접시가 상에 올랐다.

"물에 밥을 말아 굴비를 취향대로 드시면 됩니다. 굴비를 한꺼번에 다 넣어 드셔도 되고, 하나씩 얹어 드셔도 됩니다."

음식을 챙기던 여성종업원이 밝게 미소 지으며 굴비정식 먹는 요령을 가르쳐줬다. 전 부의장은 굴비를 녹찻 물에 한꺼번에 넣었다. 그래야 굴비 맛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전 부의장을 따라 굴비를 모두 녹찻 물에 쏟아 부은 뒤 한 숟갈 떠먹었다. 약간 짭짤하면서도 담백한 살이 씹혔다. 그다지 단단하지 않고 적당히 꼬들꼬들한 게 먹기에 딱 좋았다. 녹찻 물도 연한 편이어서 먹는 데 부담이 없었다. 잘 말린 굴비의 꼬들꼬들한 느낌과 녹찻 물의 시원한 감각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녹찻 물이 아니라 그냥 냉수였다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밑반찬으로는 고추절임과 깻잎, 김치, 고구마줄기 등이 나왔다. 녹찻 물과 굴비의 조합을 약간 싱겁다 느끼는 사람들은 밑반찬을 얹어 먹으면 딱 맞겠다 싶었다. 그래서 깻잎을 하나 얹어 먹어보았다. 녹찻 물의 시원함, 굴비의 짭쪼름 함에 깻잎의 고소하고 약간 매콤한 맛이 더해져 무더위 탓에 사라졌던 입맛이 되돌아왔다.

전 부의장은 2012년 보궐선거 때 시의원이 됐다. 6·4지방선거 때는 새누리당에서 '다'로 공천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당선이 어렵다며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김해는 물론 전국의 모든 선거구를 통틀어 '다' 공천자 중 유일하게 당선의 기쁨을 맛보며 재선의원이 됐다.

전 부의장은 도의원이나 국회의원 쪽을 쳐다볼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정치인이 된 것은 기업인들의 애로를 시의회에서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의원, 국회의원들은 지역 기업인들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시의원으로 계속 일하면서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전 부의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굴비정식을 먹다 보니 어느새 밥그릇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영향도 있었겠지만, 시원한 국물 덕분에 덥다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차가운 차 한 잔을 곁들이자 오히려 춥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전 부의장은 앞으로 기업 규제 완화 문제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시외버스터미널과 폐수처리장 같은 현안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시원한 시의원이 되겠다'는 그의 각오는 귀에 잘 들리지 않았고 머릿속에서는 '이 시원한 굴비정식을 먹으러 다음에 또 와야지' 하는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석정/내동 스카이빌 5층. 055-324-2799. 굴비정식 2만 원, 특초밥 2만 원, 생선초밥 1만 5천 원.

김해뉴스 /남태우 기자 le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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