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주 김해문인협회 회장·인제대 행정실장
해마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축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이 축구 경기를 통해 울분을 달랜 이유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광복절 날 면 소재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한 마을 대항 축구대회 때문이다. 대략 여남은 개 마을에서 동네청년들을 주축으로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여 팀을 꾸려 자웅을 겨루었는데 그 풍경이 아련하다.
 
잡초가 듬성듬성 나 있는 운동장 안에서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공을 차는 선수들이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선수들의 땀방울은 한여름 무더위를 무색하게 했다. 운동장 가장자리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때어 국밥을 끓였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자기 마을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응원을 했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아이의 주위에는 '아이스께끼' 장수가 있었고, 목이 좋은 곳엔 수박과 참외를 파는 과일 장수가 있었다. 군데군데 '리어카'에 엿판을 싣고 뺑뺑이를 돌려 화살을 꽂아서 맞힌 숫자만큼 엿을 주는 엿장수와 검은 고무줄로 심지를 뽑게 하여 긴 고무줄이 나오면 엿을 많이 주는 야바위 엿장수도 있었다.
 
동네 형은 심지 뽑기로 엿치기를 했는데 용케도 긴 고무줄 심지를 계속 뽑아 나중엔 엿장수가 엿을 다 잃게 되었다. 화가 난 엿장수가 어른을 놀리는 이상한 놈이라고 트집을 잡아 엿을 도로 뺏으려고 하자 엿을 들고 산으로 도망치던 모습도 떠오른다. 나중에 그 비법을 물어보니 고무줄 중에 면도하다 남은 짧은 터럭처럼 고무가 붙은 게 있는데 그걸 뽑으면 되었다고 했다. 덧붙여 터럭 같은 고무가 야바위 엿장수의 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에는 뽑기를 다른 사람에게 슬쩍 양보했다고 했다.
 
온 면민이 모인 그곳은 잔치마당이요 소통의 장이었고, 어른들은 술기운을 빌어 사돈을 맺기도 했다. 여름 방학 중에 일어난 이러한 유년의 추억은 오래도록 남아있어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곤 한다. 아직도 시골 마을에선 광복을 기념하여 축구대회를 열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전국으로 확산시켜 영원히 계승할 일이다.
 
우리가 사는 김해도 알고 보면 축구의 도시다. 학교 축구로 김해외동초등학교, 김해중학교,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 인제대학교 등이 축구를 육성하여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며, 실업축구로 김해시청축구단이 내셔널리그에서 뛰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우리 고장을 홍보하는 일은 고무적이다.
 
그런데 최근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해시와 부산일보사가 주최하는 역사와 전통의 청룡기 전국 중·고교축구대회 개최를 김해시가 취소했다고 한다. 청룡기대회는 2005년에 부산에서 김해로 유치하여 9년째에 접어들었다. 올해에도 24개 팀이 참가신청을 한 가운데 개최를 한 달 앞둔 시점에 대회가 갑자기 취소돼 버렸단다.
 
취소한 이유는 김해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마케팅 효과가 없어서'라고 한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마케팅 효과로 치면 축구 만한 게 없다. 지난 3일 김해운동장에서 K리그 경남 FC와 서울 FC와의 경기가 열리자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치는 궂은 날씨에도 5천 명이 넘는 관중이 축구를 즐기고 갔다. 진정 마케팅 효과가 없다면 마케팅 효과를 내는 방안을 마련해야지 청룡기대회 자체를 열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이유는 마케팅 효과가 아니라 대회를 주최하는 사람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축구를 대표하는 박지성, 이영표 등 훌륭한 선수들이 청룡기 대회 출신이다. 이점을 고려한다면 대회 취소는 또 다른 박지성과 이영표를 꿈꾸는 어린 축구선수의 꿈을 빼앗는 행위와 다를 바 없으며 세월호 사고와 같은 총체적 어른들의 잘못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축구가 우리 민족 조국 광복의 희망이 되었고 나에겐 추억을 만들어 주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듯이 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 청룡기 대회를 취소하지는 못했으리라. 청소년의 꿈을 빼앗는 어른들의 잘못은 세월호 사고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젠 제발….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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