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 '가라쿠니무라지'의 '무라지'
고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신분 중 하나
가라쿠니는 한자로 '韓國'으로 표기
가야인을 주신으로 받듦을 방증
왜에게 가야는 경외의 대상임을 짐작



오카야마의 기비츠(吉備津) 신사를 뒤로 하고 오사카로 향했다. 가야의 신을 모시는 오사카의 한 신사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이름만으로도 한국과의 관계를 짐작케 하는 가라쿠니(韓國) 신사. '가라(韓)'는 가야국의 '가야'에서 음이 유래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본 경제의 중심지인 오사카에 가야국의 신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오사카 가라쿠니 신사의 정문. 신과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새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에서 '토리이(鳥居)'라고 불리며 세속과 성역을 구분하는 경계로 여겨지고 있다. 오사카(일본)=김병찬 기자 kbc@


가라쿠니 신사는 오사카 남부 후지이데라(藤井寺市) 시에 있었다. 일본열차 긴데쓰 미나미오사카 선을 타고 높은 빌딩 숲을 지나 후지이데라 역에 도착했다. 한 행인에게 가라쿠니 신사의 위치를 물었다. 역사에서 남쪽으로 10분가량 걸으면 나오는 가와치(河內)라는 동네에 있으며, 후지이데라 초등학교 옆이라고 전해주었다.

행인이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가던 중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공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숲길을 따라 공원의 가운데로 걷다 보니 5m 높이의 신사 정문이 나왔다. 봉황동 수로왕릉에 설치된 문과 유사하게 생긴 이 문을 일본인들은 토리이(鳥居)라고 불렀다. '새 조(鳥)' '있을 거(居)' 즉, '새가 머무는 곳'이란 뜻이다. 일본 사람들은 새가 신과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연락꾼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새가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하기도 하고, 인간의 하소연을 신에게 전달하기도 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 신사의 정문은 세속과 성역을 구분하는 경계인 셈이었다.
 

▲ 가라쿠니 신사의 전경.


정문을 살펴보다 잠시 발걸음을 멈칫했다. 정문 위 현판에 새겨져 있는 가라쿠니 신사의 한자 이름이 찾고 있던 것과 달랐던 것이었다. 가라쿠니라는 발음은 같지만 현판에는 '韓國'이 아니라 '辛國(신국)'으로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가라쿠니 신사에 대해 사전 조사를 했을 때는 분명 이곳에 '韓國 神社'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한국에 돌아와 가라쿠니 신사에 대해 다시 조사한 결과 그 비밀을 알게 됐다. 원래 이 신사의 이름은 '韓國 神社'였으나 메이지시대(1868~1912) 때 일본이 자기 땅에 남아 있는 한반도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개칭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일본열도에는 가라시마(韓島) 신사, 가라카미시라기(韓神新羅) 신사, 가라쿠니이타테(韓國伊太) 신사 등 고대 한반도를 뜻하는 한자 '韓'이 들어간 신사가 10여 곳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신사 모두 가라쿠니 신사처럼 현재는 '韓'이 사라지고, 발음은 같지만 다른 한자로 대체되어 있는 상태다.
 

▲ 가라쿠니 신사 본전과 방문객들의 소원이 적혀 있는 '에마'.


신사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신사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정면에는 신당이 있었으며, 신당 왼쪽으로 신사 안내소가 보였다. 검은 도포를 입은 신사 안내소 직원 마사키(52) 씨에게 가라쿠니 신사는 어떤 신(神)을 모시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이 가라쿠니 신사에서는 가라쿠니무라지(韓國連)라는 신을 주신으로 모신다"고 대답했다. 일본말로 '무라지'라 읽히는 '련(連)은 고대 일본에서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호칭 가운데 가장 높은 신분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인제대학교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는 가라쿠니 신사에 대해 "가야 출신으로서 최고 신분인 사람을 받들어 모신 신사다. 카라국(加羅國) 즉, 가야국(加耶國)의 신사인 셈이다. 가야의 후예들이 오사카 지역에 정착한 뒤 자신들의 조상을 모셨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오사카 남부에는 오오카라(大賀良)라는 씨족이 있다. 이들은 신라 낭자왕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오오카라'는 '커다란 가라'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가야(大伽倻)로 이해할 수 있다. 오오카라는 신라에 통합된 대가야의 후손이라는 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안내소에서 일본어로 된 신사 안내서를 찾았다. 안내서에는 '가라쿠니를 기리기 위하여 신사를 창건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도 일본 사람들은 가라쿠니 신사에서 가야인을 주신으로 기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과거 가야는 왜에게 경외의 대상이었지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신사 본전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여행객.

마사키 씨는 "가라쿠니무라지는 역병을 다스리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막 아기를 낳은 부부가 아기의 건강을 빌기 위해 이곳을 찾거나, 나이 많은 노인들이 장수를 기원하면서 여기에서 기도를 드린다"고 전했다.

고대 일본에서는 마을에 역병이 돌면 신이 노했다고 생각했다. 이 때 가라쿠니 신사와 같이 역병을 다스리는 신을 모신 신사에 가서 '마츠리(祭)'를 지낸다. 지금도 가라쿠니 신사에서는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본전 앞에서는 짚으로 만든 작고 동그란 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양쪽에 대나무가 서 있는 이 문을 통과하면 몸에 있는 병과 악귀를 쫓아내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신사 중앙에 있는 본전은 제법 규모가 컸다. 단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본전의 문은 닫혀 있어 평소에는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본전 문은 제를 지내는 시기에만 열리며, 제를 지내기 위한 복장을 갖춘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마침 한 여행객이 본전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평소에는 본전 앞에서만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본전 왼쪽에는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설치돼 있었다.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나무판에 소원 등을 적어 걸어둘 수 있도록 해뒀다. 바로 '에마(繪馬)'였다. 일본 사람들이 걸어둔 수많은 에마는  대나무 숲 사이에서 불어온 바람에 살며시 흔들렸다. 안내소에 300엔을 지불하고 에마 하나를 구입해 글을 적었다. '김수로왕의 후손, 가야의 땅 김해에서 가라쿠니 신사를 찾아오다.' 

김해뉴스 /오사카(일본)=김명규 기자  kmk@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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