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 올림픽. 100m를 9초69로 달리는 자메이카의 단거리 선수 우사인 볼트를 보았을 때 입이 딱 벌어졌다. 100m를 겨우 20초 안에 통과하는 기자로서는, 경기 도중 운동화 끈이 풀어지고 결승선 10여m 앞두고는 전력질주를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저렇게 달릴 수 있는 사람의 유전자 속에 달리기 능력에 관련한 특질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굳이 육상선수가 아니라도 시원스럽게 잘 달리는 사람을 보면 한없이 부럽다.
 
인류가 직립을 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건강한 두 다리로 걷기만 하기에는 답답한 일, 아마 실컷 달려보지 않았을까. 걸을 수 있으면 달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 삼림지대가 사바나 초원으로 바뀌면서 인간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냥감을 쫓기 위해 달리고,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렸다. 전쟁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달렸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달렸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달리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스포츠를 통해 인류사를 재조명해온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민속학자인 토르 고타스가 달리기를 통해 세계 역사를 되돌아보는 책 <러닝: 한편의 세계사>를 펴냈다. 달리기를 주제로 쓴 흥미로운 문화사이다.
 
빨리 달리는 것이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경쟁을 불러왔고, 분과 초를 측정할 수 있는 시계의 등장으로 합리적 스포츠로 탄생한다. 달리기가 전 세계인이 모두 공감하는 스포츠가 된 건 올림픽의 부활 때문이다. 근대 올림픽은 국가 간 경쟁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명백하게 승부가 갈리는 달리기는 국가나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발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열린 달리기 경주는 주목할 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걸고 참가해야 했지만, 우승을 한 손기정 선수의 쾌거는 당시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던 조선인들에게 우리가 일본인들보다 체력적으로 강하다는 자신감, 우리민족이 우수하다는 자부심을 다시 일깨워준 중요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베를린 올림픽의 또 다른 충격은 미국 흑인선수 제시 오언스가 100m, 200m, 400m계주, 멀리뛰기 등 4개 종목에서 우승을 한 일이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주장하던 독일의 히틀러는 충격을 받았고,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지 않았다. 흑인의 우승을 백인들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각 나라는 달리기를 기본으로 한 육상에 많은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달리기는 특히 신발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나이키를 비롯한 유수의 스포츠 기업들은 달리기를 내세워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조깅 열풍을 지나 달리기는 남녀노소를 초월해 사랑받는 가장 친근한 스포츠이자 일상의 즐거움으로 자리잡는다. 식을 줄 모르는 마라톤 인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꼭 1등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완주하겠다는 꿈을 생각하면서, 뭔가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기와 희망을 가지기 위해, 회사나 단체의 단결된 팀워크를 위해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달린다는 행위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온 것이다.
 
달리기에 빠진 사람들은 말한다. "육체와 정신과 세상이 하나 되는 쾌감을 느낄 수가 있다."
▶토르 고타스 지음, 석기용 옮김/ 책세상/ 744p/ 3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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