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장사해온 상인들 "앞이 캄캄"
활기 넘쳐야 할 대목 시장에 한숨만
고객들 "서민 삶과 정서 깃든 곳인데…"

"3천 원에 줄게. 어서 가져가."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있습니다. 사러 오이소."
'김해의 명물' 부원동 새벽시장이 오는 6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지난 1일 추석 명절을 앞두고 마지막 활기를 뿜어낸 새벽시장을 둘러봤다.

▲ "추석 지나면 어디에서 장사할 지 모르겠어." 추석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된 부원동 새벽시장에서 1일 물건을 팔던 한 할머니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폐장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지만, 새벽시장의 풍경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장터 깊숙이 들어가 상인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상인들의 착잡한 속내가 읽혔다.

"20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이번 주말이면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눈앞이 캄캄해요. 아직 새로운 자리를 구하지 못했는데…. 추석이 지나면 새벽시장 근처 어딘가에 마땅한 장소가 있는지 찾아봐야죠." 새벽시장 입구에서 생선을 팔고 있던 이점숙(60·여·봉황동) 씨는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내려놓더니 한참이나 신세 한탄을 했다.

장터 중앙에서 잡곡을 팔고 있는 나덕주(70) 씨 역시 옮길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김해시 공무원들과 김해의 정치인들을 비난하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얼마 전에 지방선거가 있었잖아요. 그때 김해시장 후보들은 물론 시의원 후보들도 새벽시장을 찾아와 표를 부탁했습니다. 그때는 새벽시장이 사라질 거란 얘기는 아무도 안 했어요. 도와준다고만 했지….그 사람들이 정말 새벽시장이 사라질 거란 사실을 몰랐을까요?"

나 씨는 손님도 외면한 채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상인들은 일터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시에서는 말단 공무원 하나 찾아오지 않았어요. 서민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개선해 주는 게 시가 할 일 아닙니까?"

장터 안에 자리 잡은 상인들은 자신들보다 새벽시장 주변 인도에서 난전을 펼쳐 온 할머니들을 먼저 걱정했다. 경남은행 김해영업부 앞에서 가지와 우엉을 팔고 있던 백기순(79·여·한림면) 할머니의 등 뒤로 대형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새벽 4시에 왔는데 좋은 자리를 못 잡아 여기에 앉았다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추석이 지나면 몽땅 나가라고 하니 무심하기도 하지. 하루에 5천 원, 1만 원 벌려고 밤잠 설치고 이곳에 모이는 할매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갈꼬."

새벽시장에서 15년째 과일 장사를 해 온 박주환(52) 씨는 동상동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장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새벽시장이 이렇게 북적대는 건 김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이 찾기 때문입니다. 새벽시장은 접근성이 좋고, 식자재를 대량으로 쌓아둘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습니다. 동상동시장은 그렇지가 않죠. 거기로 가면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게 뻔합니다."

박 씨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손님이 맞장구를 쳤다. 부원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정순(50) 씨였다. "앞으로 식당 하는 사람들은 새벽부터 부산에 나가 식재료를 사와야 할 판입니다. 김해대로 주변에 대형마트가 줄줄이 들어서면 뭐합니까. 식당 하는 사람들은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하지 않아요."

차례 상을 차리기 위해 새벽시장을 찾았다는 손님 이홍연(50·안동) 씨도 말을 거들었다. "새벽시장은 서민들의 삶과 정서가 녹아들어 있는 곳이에요. 개발도 좋지만 김해 구도심이 삭막해지는 것 같아 아쉽네요." 

김해뉴스 /김명규·정혜민 기자  kmk@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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