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정기회의에서 다양한 의견 수렴
관리권 쥔 주민들 뜻 반영 쉽고 빨라져

공동주택 관리 사전 지식 충분히 갖춰야

"우리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를 재정비하기로 했습니다. 공사업체를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눠드린 문서는 입찰 공고를 통해 모집한 업체 목록과 정보입니다. 참석하신 아파트 동별 입주자 대표님들과 소장님의 의견을 모아 업체를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해에서 아파트 자치관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월산마을 부영 12단지 아파트 전경.

장유 월산마을 부영 12단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최근 회의 모습이다. 이날 회의에는 동별 입주자대표 6명과 관리소장 등이 참석했다. 토론 끝에 가장 적절한 가격을 제시한 A사에 어린이 놀이터 재정비 사업을 맡기기로 했다. 관련 사항이 명시된 서류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소장의 확인 도장이 나란히 찍혔다.

부영 12단지는 김해지역 부영아파트들 가운데 처음으로 '주민자치관리'를 시작했다. 주민자치관리는 아파트 입주자대표들이 관리소장을 직접 선정하고, 입주자대표들과 관리소장이 매월 공동회의를 열어 아파트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체제를 말한다.

지난해 4월 부영 12단지 입주민들은 아파트 임대가 끝나고 분양으로 전환되자 아파트 관리방식을 재고하게 됐다.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위탁업체를 통해 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는데, 부영 12단지도 당시에는 같은 방식으로 아파트를 관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들은 위탁업체가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박재현(40)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입주민들로서는 저렴하게 위탁을 하면 좋다. 하지만 업체들이 위탁 수수료를 0원, 100원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수수료를 가져가지 않는 대신 아파트 관리비에 거품을 넣어 수수료를 대신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상당수의 아파트 관리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수익을 낸다"고 말했다.

부영 12단지 입주자대표들은 고민 끝에 더욱 책임감 있고 투명한 아파트 관리를 위해 주민자치관리제를 채택하기로 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전체 아파트 입주 가구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했다.

입주자대표들은 제대로 된 자치관리를 위해서는 관리소장을 잘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탁업체가 파견하는 관리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입주자대표들이 직접 관리소장을 선정하는 게 주민자치관리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주택관리협회에 관리소장 모집 공고를 낸 뒤 서류전형을 통해 6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했다. 그리고 주택관리사자격증을 보유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지원자를 채용했다. 그 후 소장과 입주자대표들이 함께 아파트 관리직원들을 뽑아 지금의 관리사무소 인원을 구성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눈에 띄게 좋아졌을까. 예전에는 관리소장이나 직원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인사권이 위탁업체에게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자치관리제에서는 주민들이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리소장이나 직원들이 주민들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친절한 자세로 다가선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입주자대표회의는 5명이었던 관리직원을 4명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토요일 오전 근무를 없앴다. 1년 단위로 관리소장과 직원들의 임금에 대한 협상을 하는데, 열심히 일한 만큼 임금도 올라간 덕에 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졌다고 한다.

▲ 장유 월산마을 부영 12단지 입주자대표들과 관리직원들이 함께 아파트 내의 나무 관리 작업을 하고 있다.
직원들도 입주민들에게 신경을 더 써야 하는 부담감이 생겼지만 입주민들과 더 친밀해지고 아파트에 대한 애정이 커지면서 오히려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관리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웃는 얼굴로 입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어려워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거리낌 없이 사무실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밖에 매달 입주자대표들과 관리소장이 함께 정기회의를 열어 입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아파트에 시급한 현안이 발생하면 임시회의를 열어 즉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누구나 와서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에는 회의 장면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하거나 녹화 방영할 계획이다.

물론 입주민들 중에서는 주민자치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있지만, 약 1년 반 동안 아파트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는 사실만은 대다수의 입주민들이 느끼고 있다고 한다. 입주민 이경숙(47) 씨는 "관리소장이 일을 열심히 해서 좋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비가 가구당 약 1만원씩 줄었지만 주민들이 불편을 느끼는 불만 사항은 이전보다 빨리 개선되다 보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입주민 김 모(42) 씨는 "아파트 도로가 꺼졌는데 일주일 만에 재포장됐다. 예전에는 위탁업체의 결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몇 년이나 밀리는 일들이 많았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니 훨씬 일 처리가 빠르다"고 말했다.

관리소장 최혜리(53) 씨는 "관리인의 처지에서는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위탁업체를 통한 관리보다 아파트 필요사항에 대한 일 처리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박재현 회장은 "주민자치관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위탁업체 관리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기우에 불과했다"면서 "관리소장이나 직원들은 이미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인데다 직접 고용 방식을 통해 한층 더 넓은 인재풀에서 채용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총책임자가 위탁업체일 경우 입주민들의 부담이 적어지는데, 이 문제는 공동주택관리 관련 보험을 통해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주민자치관리 체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자치관리를 하면서 공동주택 관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무턱대고 주민자치관리를 시행하면 오히려 아파트 관리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충분히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면 주민자치관리의 효과는 더 커지고, 입주민들의 만족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명규·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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