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우리(노점상)는 갈 곳이 없어졌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쫓아내면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20여 년 동안 김해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온 부원동 새벽시장이 지난 6일 폐쇄됐다. 새벽시장 부지 소유주는 주상복합건물을 세우기 위해 이날 부지 일대에 철제 담장을 설치했다. 새벽시장에서는 울긋불긋한 간이천막들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동상동시장 이전 우선권 없어
옛시장 둘러싼 담장 아래 보따리
단속 공무원들 "거리장사 불법"
오전 10시면 "정리하라" 방송
서러운 맘 "조금만 더 늘려줘도…"


▲ 노점상들이 지난 15일 김해시의 단속에도 아랑곳없이 철제담장으로 둘러싸인 옛 새벽시장 앞에 물건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옛 새벽시장 인근 경전철 부산~김해 부원역 앞. 며칠 전만 해도 상인들과 손님들로 북적였던 이 일대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새벽시장 부지 일대를 빙 둘러서 쳐진 담장에는 '새벽시장 폐쇄'라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여전히 일부 노점상들이 채소와 과일 등을 팔고 있었다. 물론 그전과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상인들과 손님들의 숫자가 적었다.

시계바늘이 오전 10시를 향해 가자 상인들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하나 둘씩 거리에 벌여놨던 상품을 정리했다. 부원역 인근에서 과일을 팔던 김 모(47·여) 씨는 "오전 10시만 되면 김해시에서 공무원들이 나와 단속을 하기 때문에 빨리 짐을 싸야 한다. 손님 수도 확 줄었고 해서 물건을 얼마 가져오지 않았다"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동상동시장으로 자리를 안 옮기냐는 질문에 김 씨는 손사래를 치며 울분을 토했다. 김 씨는 "동상동시장에 갔더니 자리가 부족하더라. 하루가 멀다 하고 상인들끼리 자리싸움을 한다. 그래서 다시 새벽시장 인근 거리로 나왔다. 이제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 이곳에서 오전 10시 30분까지 만이라도 장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남은행 인근에서 채소를 팔고 있던 정 모(55·여) 씨는 "새벽시장 인근에서 20년째 채소를 팔았다. 새벽시장 안에서 장사를 했던 상인들만 동상동시장 안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우선권을 받았다. 인도에서 장사하던 노점상들은 추첨권조차 없었다. 이곳에서 오전 11시까지 만이라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시에서 배려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김해시의 단속트럭이 부원역 인근으로 진입했다. 단속트럭에서는 "시장이 폐쇄됐습니다. 물건을 정리하고 가져가세요"라는 음성이 기계적으로 반복됐다. 트럭에서 공무원이 내리더니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인들을 노려봤다. 상인들은 눈치를 보며 하나 둘씩 상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채소를 팔던 염 모(53) 씨는 공무원들의 태도를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공무원들은 무조건 시장이 폐쇄됐다며 짐을 싸라고 한다. 사전에 공고문이나 경고장을 받은 게 없다.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거리에서 장사한다고 무시하는 건지, 무조건 쫓아내기만 한다"고 말했다.

▲ 새벽시장 폐쇄를 알리는 플래카드.

일부 상인들은 김맹곤 시장이 상인들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며 원망했다. 직접 재배한 채소를 판다는 박 모(69·여) 씨는 "새벽시장을 도와달라는 뜻에서 지난 6·4지방선거 때 김맹곤 시장에게 표를 줬지만 아무런 통보도 없이 바로 새벽시장을 없애버렸다.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내쫓는다는데 사람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내쫓을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단속방송이 귓전을 어지럽혀 불면증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반찬거리를 팔던 박 모(55·여) 씨는 "지난 6·4지방선거 때 당시 김맹곤 시장 후보는 '새벽시장 상인들이 오전 11시까지는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이런 약속을 믿고 그를 지지했지만 약속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며 김 시장을 성토했다.

박 씨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김 모(74) 씨도 맞장구를 쳤다. 20년째 도넛을 만들어 팔아온 그는 "김맹곤 시장은 선거 때 한 표라도 얻기 위해 '새벽시장을 11시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김해시는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무조건 새벽시장을 없애버렸다. 칠십이 넘은 나 같은 노인이 어디 가서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김해시는 새벽시장 인근 노점상 단속에 대해 완강한 입장을 밝혔다. 단속을 나온 김해시 관계자는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새벽시장과 거리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와 판매하는 장사꾼이다. 생계형으로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 말고 이런 장사꾼들 위주로 단속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 도로과 관계자는 "무턱대고 장사를 접으라고 한 적이 없다. 지금은 비공식적으로 장사를 묵인하고 있다. 주변 상가나 통행에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민원 때문에 단속을 하는 것이다. 단속을 해도 오후 1시까지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부딪히지 않게 오전 10~11시에는 자진 철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새벽시장 부지에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해시 건축과 관계자는 "건물 신축허가를 위한 신청서는 접수됐다. 하지만 아직 사업승인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착공 날짜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정혜민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