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이은상 옮김/지식공작소/894p/1만 5천920원)

"정유년 구월 열엿새 맑음. 이른 아침에 특별 정찰 부대가 보고하기를 '적선이 수효를 알 수 없도록 많이 명량으로 해서 곧장 우리가 진 치고 있는 곳을 향해 들어온다'고 하므로, 곧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니, 적선 백 삼십여 척이 우리 배들을 에워쌌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 중에서 명량대첩이 일어난 1597년(선조 30년) 9월 16일의 일을 기록한 일기의 첫 부분이다. <난중일기>는 충무공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전쟁터에서 쓴 진중일기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됐다. 역사적 사실과 학술연구 자료로서 높은 가치가 인정될 뿐 아니라, 전쟁 중에 지휘관이 직접 기록한 드문 사례란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 중에서 <난중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난중일기>를 읽지 않은 까닭은, 읽을 수 있는 만한 형태를 갖춘 <난중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 당대 최고의 한학자들이 모여 충무공이 남긴 기록들을 국역해 <국역 주해 이충무공전서>를 펴냈다. 시조시인이자 사학자였던 노산 이은상은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을 바탕으로 하고 <국역 주해 이충무공전서>에 있는 내용을 보충해 1968년에 <난중일기>(현암사)를 펴냈다. 노산 역주해본 <난중일기>는 이후 출간되는 <난중일기>들의 국역본 원조가 됐다. 그 책을 저본으로 삼은 <난중일기>가 2014년에 다시 출간됐다. 맞춤법 표기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 1968년에 국역한 책의 문장과 표현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 관련자료를 참조해 오류와 오기도 바로 잡았다. 책의 디자인은 호서대학교 송성재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활자체에서 구성까지 모두를 다듬었다. 본문은 세로쓰기 편집이다. 원문의 구성을 따라 세로로 내려쓰기를 했고, 독자의 호흡 리듬에 맞추어 글줄을 꺾어 올렸다. 그래서 가로쓰기 편집 책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도 세로쓰기로 편집된 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송성재 교수는 "이 책의 디자인과 출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읽혀지는 <난중일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894쪽의 책은 두껍다. 그러나 재생지를 사용했기에 책은 가볍고,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읽어도 눈부시지 않다. 이렇게 두꺼운 책은 읽다 보면 책등 가운데 부분이 꺾일 수도 있는 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보통 책보다 3배 정도 강하게 책장을 묶어줄 수 있는 질긴 접착제를 사용해 제본하면서, 그 접착부분이 두껍지 않게 처리하는 과정을 거친 덕분이다. 책 본문의 하단은 바다, 왜선을 쫓는 거북선 그림들이 장식하고 있다. 그림은 본문의 글과는 또다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림만 보아도 위급에 빠진 나라를 구하느라 거친 파도를 넘나들었던 충무공과 조선 수군들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이 책의 가격은 1만 5천920원이다. 눈치 챘는가.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가 1592년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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