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문 연 뒤 도시개발로 쇠락의 길
지역 작가 등 2008년부터 작업공간화
공공미술·특화지구 등 프로젝트 진행
상인들과의 갈등도 소통 통해 화합무드
매달 한 번씩 예술이 춤추는 거리 변신



1955년 문을 연 대인시장은 광주의 전통시장이다. 하지만 도시계획에 따라 광주역과 터미널이 옮겨가면서 대인시장에서는 문을 닫는 가게가 점점 늘어갔다. 다른 지역의 시장들처럼 이 시장도 존폐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인시장은 완전히 되살아났다. 바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대인예술시장 덕분이다. 실험적으로 진행됐던 대인예술시장은 이제 예술 상품과 먹을거리, 체험이 공존하는 시장으로 거듭났다. 매달 새로운 얼굴로 관광객을 맞이하면서 하루 평균 5천~6천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 예술도 사고팔고 물건도 사고팔고
시장 내 좁은 골목 한쪽 벽면에는 한 상인이 과일수레를 끄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5·18광주민주항쟁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던 노점상 하문순 씨였다. 시장 천장에서는 대나무가 바람결에 춤을 췄다. 2010년 박문종 작가가 설치한 '대숲바람 시장에 불다'라는 조형물이었다. 굳게 닫힌 가게 문에는 역도 국가대표였던 장미란 선수가 문을 힘차게 들어올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 상인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장 선수가 금메달을 따길 기원하면서 그린 작품이다. 장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직접 대인예술시장을 찾았다"고 자랑했다.

▲ 한평갤러리를 둘러보는 어린이들과 장미란을 소재로 한 셔터 그림이 이채롭다.

대인예술시장은 전체가 작가의 캔버스다. 시장 낡은 건축물 사이사이에서는 조형, 건축, 예술, 푸드스타일링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25명이 작업공간을 마련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자 시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대인예술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판매자들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분필로 번호가 적혀 있었다. 모집을 통해 뽑힌 시민판매자들은 추첨을 통해 정해진 번호에 좌판을 깔고, 가져온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시민판매자들은 꽃등이 매달린 상가 앞에서만 물건을 팔 수 있었다.

오후 7시, 대인예술시장의 마스코트인 부엉이가 오색 빛을 뽐내고 상가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노란 꽃등에 하나 둘 불이 밝혀졌다. 야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정도로 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 골목 양 옆으로 늘어선 좌판에는 액세서리, 말린 꽃, 통장 지갑, 석고 방향제 등 시민판매자들이 공을 들여 만든 제품들이 진열돼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좌판에서 판매하는 제품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인예술시장에서는 액세서리 하나라도 같은 디자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작가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쳤고, 사람들은 그들의 재능을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다. 시민판매자로 참여한 정주하(27·여) 씨는 "대학 전공을 살려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스티커 문신과 휴대폰갑을 판다. 직접 기획하고 만든 제품들이다. 친구들에게 선물만 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제품을 선보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북적이는 사람들이 반가운 건 오래 전부터 대인시장에서 장사를 해오던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인 유양례(71·여) 씨는 "42년째 대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야시장이 열리는 날은 과거 대인시장의 전성기를 보는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니 참 기쁘다. 희망을 잃어버린 상인들에게 예술야시장은 희망이 됐다"며 웃었다.

시장 공터에서는 '야떨이 경매'가 한창이었다. 상인들이 하루 동안 판매하고 남은 물건을 경매를 통해 판매한다고 했다. 공터 옆 음식점에서는 상인이 구슬땀을 훔치며 불판 앞에서 열심히 전을 굽고 있었다. 야시장의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간이식탁들은 꽉 찼다. 간이식탁에 앉지 못했거나 간식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좌판에서 판매하는 꽃술, 직접 짠 오렌지·당근주스 등을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중후한 목소리의 남성들이 팝페라 공연을 하고 있었다. 시장에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야시장의 정취를 더했다. 미국에서 왔다는 로이(36) 씨는 "시장이 아니라 문화의 난장 같다.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수제품을 구경하고 멋진 공연도 감상할 수 있어 절로 흥이 난다"고 말했다.

대인예술시장에서는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재미있는 행사도 곳곳에서 열렸다. 손님맞이 공간인 '웰컴센터'에서는 사과 깎기 대회가 한창이었다. 참가자들은 대인예술시장 상인들이 판매하는 사과를 1천 원에 구매해 그 자리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깎았다. 사과껍질을 가장 길게 깎은 참가자에게 부채 등 경품이 주어졌다. 웰컴센터 한 쪽에서는 어린이들이 색연필을 사용해 대인예술시장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엽서는 공모전을 통해 대인예술시장 기념엽서로 선정돼 판매되기도 한다고 했다.
 

▲ 대인예술야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팝페라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민판매자들의 수제품을 둘러보는 재미와 함께 다양한 문화공연도 즐길 수 있다.


■ 예술가 - 상인의 끊임없는 대화
대인시장이 대인예술시장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도시계획에 따라 대인시장 인근에 있던 광주역과 터미널, 전남도청 등이 이전하면서 사람 냄새 가득했던 대인시장 안의 가게는 하나 둘 씩 문을 닫았다.

이를 안타까워했던 광주지역 작가와 기획자들은 2008년 자발적으로 시장 내 빈 점포에 작업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광주비엔날레는 공공미술프로젝트로 '복덕방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2009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변의 예술거리와 대인시장이 '아시아문화예술 특화지구'로 지정되면서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아시아문화예술 활성화 거점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평범했던 시장은 이렇게 해서 예술시장이라는 옷을 하나 둘 걸쳐 입었다.

하지만 지역 작가들과 시장 상인들이 처음부터 사이좋게 지낸 것은 아니었다. 갈등하고 반목하면서 다투기도 했다. 이때 광주시는 상인 아카데미, 입주작가 창작 지원 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더불어 작가들과 상인들의 소통을 위해 대인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을 모두 기록했다. 기록물은 <시장사람들>이라는 책자로 발간됐다.

상인들의 마음은 차츰 열리기 시작했다. 2011년 아시아문화예술 활성화 거점 프로그램의 하나로 예술야시장이 시작됐다. 예술작품을 판매하고, 예술시장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체험을 활성화하자는 게 취지였다. 이듬해부터는 매월 정기행사로 진행됐다. 이렇게 수정과 보완을 반복하며 대인예술시장은 마침내 제자리를 잡았다.

대인예술시장이 성공을 거두기까지 광주시와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사무국, 상주 작가, 상인 들은 끊임없이 소통했다. 이들은 매월 정기적인 회의를 열어 문제점을 공유하고 상호 의견을 조율해 이를 개선해갔다. 

광주시 문화도시정책과 윤미라 주무관은 "대인예술시장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아시아문화예술 활성화 거점 프로그램은 오는 2018년까지 지원된다. 장기적으로 시장의 상주예술가, 상인회가 주체가 돼 야시장을 지속적으로 꾸릴 수 있는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철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 사무국장

"시간과 소통의 노력이 빚어낸 걸작"

작가들의 자발성과 지속성 밑바탕 큰힘
아시아문화예술 활성화 거점 사업 진행


"평범한 시장에 예술이 녹아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소통' 두 가지가 수반돼야 합니다."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사무국 박종철(40) 사무국장의 말이다. 대인예술시장은 아시아문화예술 활성화 거점 프로그램인 '대인예술시장 별장 프로젝트사업' 중의 하나다. 아시아문화예술 활성화 거점 프로그램은 오는 2018년까지 지원된다. 별장 프로젝트 사업은 올해부터 별장프로젝트사무국 직원 7명이 이끌어가고 있다.

박 국장은 "대인예술시장은 문화관광체육부가 추진하는 문전성시 사업의 유일한 모범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문전성시 사업이란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다. 문전성시 사업에서는 3년 간 사업비를 전통시장에 지원한다. 다른 지역의 시장들에서는 예술가들이 지원금만 보고 전통시장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인들과 갈등을 빚고, 사업비 지원이 끝나면 그대로 나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사업의 연속성이 끊어진다. 대인예술시장은 이와는 달리 지역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만든 예술시장이다. 박 국장은 '자발성'과 '인위성'의 차이가 평범한 시장을 예술시장으로 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소통의 통로를 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가들은 주로 작업을 늦은 저녁에 하는 반면 상인들은 새벽부터 일한다. 그래서 상인들은 작가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서로 삶의 형태가  달랐기 때문에 상인과 작가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 작가들이 시장에 벽화를 그리고, 상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하기도 했다. 작가와 상인들이 서로 조금씩 다가서면서 오해와 갈등은 점점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맨 처음 시장에 자리 잡은 작가들은 6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5명의 상주작가를 포함해 시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만 40명이 된다. 예술시장이 기반이 돼야 예술야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사업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도 대인예술시장이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상인과 예술가의 자생력 향상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뉴스 /광주=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 이 기사 취재 및 보도는 경남도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