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선생 관련 책 김해도서관 보관
선생의 글이 실린 영인본 등 … 350권
존재 사실 홍보·활용 방안 모색 움직임


'아아 세상에 어찌 공리가 있다 하리오. 저 간세(奸細) 왜가 멀쩡하게 남의 땅을 빼앗으려 하건마는 이를 항의하려긴 고사하고, 돌이켜 그를 찾기로 애쓰는 자가 형벌을 받고 말았는구나. 아아 나는 조선사람이다. 살아도 조선을 위해 살고 죽어도 조선을 위해 죽을 것이다.'

김해 출신의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한뫼 이윤재 선생의 글 '쾌걸 안용복'의 일부이다. 이 글은 수양동우회에서 펴낸 잡지 <동광> 창간호(1926. 5.)에 실려 있다. 김해 시민들은 언제든 이 글을 직접 읽어볼 수 있다.

▲ 김해도서관 3층 세미나실에 있는 환산문고.

김해도서관에는 '환산문고'라는 게 있다. 한뫼 이윤재 선생 관련 책들을 모아 보관하는 문고다. 하지만 대부분의 김해 시민들은 김해도서관에 이런 문고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문고를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뫼 선생의 비석이 대구에 방치돼 있는 가운데, 환산문고조차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환산문고는 이른바 '개인문고'다.  환산은 이윤재 선생의 호다. 선생의 호는 환산, 한뫼, 한메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개인문고는 학문, 문화예술 분야 등에서 개인 장서가들이 소장하고 있던 특화자료 및 애장서를 기증 받아 별도의 공간에 비치한 문고를 말한다.

환산문고는 1991년 3월 6일 김해도서관에서 어록비 흉상을 세울 때 조성됐다. 어록비건립위원회는 당시 선생의 글이 수록된 잡지와 신문 등의 자료를 모아 환산문고를 구성한 뒤 김해도서관에 기증했다. 부산일보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한글학회 회원, 김해지역 문화계 인사 등을 중심으로 결성됐던 어록비건립위원회(위원장 허웅)가 그동안 기금마련에 나서는 등 건립사업을 착실히 추진해 오다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환산문고는 김해도서관 3층 세미나실에 있다. '우리 주장-조선을 위하여, 조선인의 조건, 자존자활'(<동광>, 1927년 3월), '조선역사에 가장 광휘 있는 페이지-세종성대의 문화'(<별건곤>, 1928년 5월), '우리 청년의 진로, 이론보다 실제로 나가자'(<신민>, 1929년 1월), '한글을 처음 내면서'(<한글> 창간호, 1932년 5월) 등 한뫼 선생의 글이 수록된 귀한 잡지들이 눈에 띈다.

▲ 한회 이윤재 선생의 글이 실린 일제 강점기 시대 잡지들의 영인본을 펼친 모습.

1925년에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신민>, 1926년에 창간된 월간 종합잡지 <동광>, 1926년에 창간된 대중잡지 <별건곤> 등은 1939년에 창간된 월간 문예잡지 <문장>, 1924년에 조선문단사에서 발행한 순문예지 <조선문단> 등과 함께  일제의 탄압 속에서 발간된 잡지들이다. 원본이 귀해서 영인본(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책)이 기증됐다. <한글>은 한뫼 선생이 편집책임을 맡았던 책이다. 그가 조선어연구회와 함께 간행에 힘쓴 <조선어사전> 등도 소장돼 있다. 책은 모두 350권이다.

김해여성복지회관의 꿈다락학교 강사로 활동 중인 허모영 씨는 "꿈다락학교 수강 어린이들을 데리고 환산문고를 찾은 일이 있다. 어록비 흉상도 보고 환산문고도 살펴보았다. 어린이들보다 학부모들이 '김해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라며 더 크게 감동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린이 청소년 학부모들에게 한뫼 선생과 환산문고를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글학회 하치근 이사는 "한뫼 선생은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고 한글을 지키다가 세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함흥의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선생의 뜻을 담은 자료를 모은 환산문고가 김해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선생이 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글학회 박용규 회원은 "한뫼 선생과 허웅 선생을 낳은 김해에 환산문고가 있다니, 김해는 '한글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며 반가워했다. 그는 한뫼 선생을 연구해서 <우리말 우리역사 보급의 거목 이윤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펴냄)라는 전기를 발간한 사람이다. 그는 "책은 서가에 꽂혀 있기만 하는 유물이 아니다. 환산문고에서 볼 수 있는 한뫼 선생의 글을 많은 사람이 읽고 고인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며 "광복 이전에 출간된 잡지들은 희귀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귀한 자료들이다. 환산문고는 당시의 자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한뫼 선생이 쓴 글의 일부분만이라도 확대 복사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특별전시를 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 "이제 대구 마천산에 홀로 남겨진 선생의 비석을 모셔오고 허웅 선생 기념관까지 세우면, 김해는 그야말로 '한글의 고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해도서관에서는 환산문고의 보존을 위해 도서관 밖으로 대출은 하지 않는다. 2층 종합자료실에 문의하면 열람할 수 있다. 

김해뉴스 /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