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사방이 꽃이다. 봄꽃들은 제대로 보면서 살고 있는 중인지 지인들에게도 안부를 묻고, 나 자신에게도 물어본다. 일 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자락과 들판, 도로변 길에도 피어 있는 꽃을 보면 마음까지 환해지는 것 같다.
 
악양 동매리에 사는 박남준 시인은 아침에 일어나 마당의 꽃이 간밤에 잘 잤는지 살펴본다니, 이 봄 온 마을에 핀 꽃의 안부를 물으러 다니느라 바쁘겠다. 기자의 지인 중에는 길을 걷다가도 꽃을 보면 쭈그리고 앉아 "너, 참 예쁘구나. 핀다고 수고 많았어." 칭찬을 해주는 이가 있다. 그 언니도 바쁘겠다. 전남 장흥에 사는 한승원 소설가는 꽃이 자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거울을 비춰주고 싶다던데, 이 봄에 소설가의 거울로 처음으로 제 얼굴을 보는 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꽃에 미친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어느 봄날, 배나무 아래 무리지어 핀 흰 냉이꽃에 넋을 빼앗긴 백승훈 씨는 야생화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들꽃에게 말을 걸고 꽃들의 말을 받아 적는다. 그는 'joinsman'에 '흰벌'이라는 아이디로 블로그 '꽃에게 말을 거는 남자'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이다. 매일 천명 이상의 방문객이 흰벌이 물어 나르는 꽃소식을 읽고 있다. 그 글들이 '꽃에게 말을 걸다-흰벌의 들꽃 탐행기'라는 이름을 달고 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도 처음에는 화려한 꽃에 먼저 눈이 갔다고 한다. 그러나 곧 들꽃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들꽃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모든 꽃들이 각기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재인식한다. 꽃에게 말을 걸면서 느낀 것이 꽃을 제대로 보려면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눈을 맞추어 본 민들레를 이렇게 소개한다. "씨가 날아 앉으면 바위 위건 길 복판이건 마소의 수레바퀴에 짓밟혀가면서도 모진 환경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다."
 
저자는 꽃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고향 옛집에 서 있는 살구나무를 통해 본 아버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어느 해 봄 살구나무는 유난히도 많은 살구를 맺었다. 저자는 내심 흡족했지만 아버지는 살구나무 수피를 쓰다듬으며 "네가 마지막 심을 쓰는구나. 그 동안 애 많이 썼다"고 말씀하셨단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살구나무는 노란 살구를 모두 떨군 뒤 가지 끝부터 이파리가 시들시들해 지는가 싶더니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이내 말라 죽고 말았다.
 
그렇게 꽃들은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운다는 걸 또 하나 느꼈다. 사람은 때로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흘러 보내지만 꽃은 그렇지 않다. 꽃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자는 사람도 꽃처럼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만나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한다면 사람들의 인연도 꽃처럼 향기로워지지 않을까 말한다.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나 시를 쓰기엔 자신의 마음에 때가 너무 탔다고 여겨 스스로 시인이기를 포기했다는 저자는 '꽃은 곧 종교다'라고 고백한다. 꽃에게는 피는 일도 지는 일도 옴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소중한 삶의 순간이기에, 작가는 꽃에게 말을 걸면서 꽃잎 한 번 열고 닫는 일이 한 우주가 열렸다 닫히는 순간이란 것을 매번 깨닫는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도 "하나의 꽃잎, 또는 한 마리의 벌레가 도서실의 모든 책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저자가 전하는 꽃의 전언은 설레임, 그리움, 뜨거움, 눈물, 그리움의 다섯 개 주제로 나뉜다. '수국, 그 환한 적막', '어린 누이를 담은 꽃, 채송화', '달맞이꽃, 생각하면 가슴 따뜻한', '이룰 수 없는 사랑, 목련의 전설' 등 시적 감상으로 붙인 소제목들도 근사하다. 꽃으로 가득한 이 책, 펼치면 향기 가득한 꿈같은 꽃밭이 펼쳐질 듯하다.

백승훈 지음/416p /18,000원







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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