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치근 한글학회 이사·동아대 명예교수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은 우리에게 외부적인 이해의 세계를 구성하고 내면적인 정신세계를 이룩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인 실체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따라서 모든 언어에는 한 겨레의 문화적인 전통 속에서 자라난 얼이 담겨 있다. 일제시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는 이와 같은 언어관의 바탕 위에서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한글 강습회를 열고 우리말과 글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언어 습득은 어린이에게 하나의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언어 습득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 삶의 세계 안에서 스스로의 올바른 위치를 찾고 인류가 역사적으로 창조한 정신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고운 말, 바른 말 쓰기 운동은 단순히 의사표현의 도구를 곱게 다듬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바로 훌륭한 사람됨의 운동이다. 다만 그것이 빈말들의 아름다운 꾸밈으로 타락하지 않고 알맹이 있는 말들의 책임 있고 정확한 사용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지난 4월 발생했던 '세월호' 사고는 선박 회사 경영자를 비롯한 관련 기관, 선장, 기관사, 종교 단체 등이 위계질서를 지키지 않은 무질서한 상태에서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발생한 인재였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말과 글도 고유한 우리의 말과 글이 있는 반면 한자어나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소통 상의 질서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대표가 되는 말과 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언어생활이 무질서한 상태가 되어 소통의 벽이 두터워질 것이다.
 
소통의 벽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그 대표적인 글자를 한글로 정한 법이 국어기본법(한글전용법)이다. 이 법은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했다.
 
국어기본법의 시행 규정에 보면 공공기관의 공문서는 어문 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 단,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어렵거나 낯선 전문어 또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어나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즈음 일부 인사들이 국어기본법을 폐기하고 한자를 국자화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주장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국경을 없애 버리자는 주장과 같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글과 한자는 언어학적인 특성이 전혀 다른 글자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문자의 특성상 음소문자이면서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문자상의 특성이 전혀 다르다. 이런데도 과거의 역사적, 문화적인 영향 관계를 고려해서 한자를 국자화하자는 주장은 바로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없애버리자는 주장처럼 모순된 억지 주장이다.
 
오는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학년이 사용하는 교과서에 한자를 한글과 병기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 과정' 주요 사항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한자 교육 강화 방안을 포함시켰다. 언어 습득은 어린이에게 하나의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문을 열어주는 과정이다. 언어 습득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 삶의 세계 안에서 스스로의 올바른 위치를 찾고 인류가 역사적으로 창조한 정신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면 문자 학습의 부담을 가중시켜 초등교육의 기본 목표 수행에 장애 요소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초등 교육은 기본적으로 모국어를 통한 인성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어기본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한자나 영어 교육은 적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저지를 우려가 있다.
 
영어 공용화나 한자 국자화와 같은 국어 문화의 가치를 무시하는 학문 태도, 학문적 바탕 없이 맹목적으로 국어 사랑을 외치는 국어 운동의 태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

지난 9월 25일자 중앙일보에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62학번 일동의 이름으로 '우리말을 이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그 내용 가운데 "우리의 글과 말이 찢기면 우리의 문화도 말살된다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우리 모두 우리말의 순화에 앞장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희들은 호소합니다"라는 간곡한 바람은 568돌 한글날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언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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