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영배 팔판문화연구회 총무가 장유 '오늘은 청국짱'의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있다.
전통 발효 방식 그대로 만들어 '제대로'
택시기사들 입소문 타고 일반 단골 북적
"메뉴에 없어도 먹고 싶은 것 다 되지요"

"기사 식당은 어떻습니까? 택시기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드는 밥집이 하나 있습니다."
 
팔판문화연구회 허영배(44) 총무에게 단골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오늘은 청국짱'을 추천했다. 맛집을 찾을 때는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정보는 없다는데 장유콜택시에서 14년째 일해 온 허 총무의 자신감 넘치는 추천에 믿음이 갔다.

허 총무는 "이 가게와의 인연이 벌써 11년째"라며 "틈날 때마다 오고 근처를 지날 때마다 오는, 집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12시 반부터는 손님들이 많다는 그의 말에 오전 11시 30분께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오늘은 청국짱'을 찾았다. 장유스포츠센터 근처 재영프라자 사거리와 가까운 이 가게는 따뜻한 느낌을 풍겼다. 소박해 보이는 하얀 2층 건물은 식당을 찾았기보다는 자주 놀러가는 친구 집인 듯한 친근함을 풍겼다.

식당에 들어서자 허 총무는 "성미야. 내 왔다"라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청국짱'의 김정석 사장의 딸인 김진희(38) 씨였다. 이 가게는 김정석(66) 사장과 부인, 김진희 씨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족 가게다. '성미'는 김 씨의 첫째 딸 이름이다. 가족의 대소사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친정오빠와 여동생 같았다.

김 씨는 "기자는 안 데리고 와도 된다니깐, 특별한 것도 없는데…"라며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괜찮다. 내가 알아서 먹고 갈게"라며 '동생'을 안심시킨 허 총무는 식당의 대표 메뉴인 청국장정식 2인분을 주문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따뜻한 숭늉이 나왔다. 기사 식당이라고 해서 간단하게 '된장찌개에 밥'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가게 분위기며, 식전 숭늉이며 제대로 된 밥집을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롱박 모양의 바가지로 숭늉을 한 그릇씩 떠놓고 팔판문화연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팔판문화연구회(회장 정현대)는 장유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성된 단체다. 지난 추석에 반룡산 정상에서 열린 만날제 행사를 비롯해, 정월대보름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세시 풍속을 그대로 재현하는 행사를 매년 주최하고 있다. 올 초에는 팔판문화연구회 고문들과 장유 지역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장유면지'를 펴내기도 했다. 지금은 장유동으로 전환됐지만 장유면이었던 장유 지역의 유래와 연혁, 역사, 문화유산, 문화재와 개발과정 등을 빼곡히 담았다. 허 총무는 "그냥 지나가면 잊혀버릴 일들이지만 이렇게 기록을 남겨 후대에게 전하고 전통을 이어갈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상 그득하게 차려져 나왔다. 콩나물무침, 호박나물, 어묵볶음, 감자볶음, 고추장돼지불고기, 오이무침, 햄 구이, 고등어조림 등 정겨운 집 반찬이 나왔다. 익숙한 반찬이라 그런지 반찬 하나하나에 손이 갔다. 처음 오는 가게인데도 늘 먹던, 엄마가 차려준 반찬처럼 짜지도, 싱겁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고 입에 딱 맞았다. 텃밭에서 직접 재배했다는 신선한 호박잎과 상추에 고추장불고기와 밥을 크게 한술 떠 싸서 먹으니 맛이 일품이었다. 주 요리인 청국장이 없어도 전혀 허전하지 않을 정도로 반찬이 하나같이 맛있었다.

연한 갈색 빛을 띠는 청국장이 작은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나오자 코와 눈과 손이 저절로 청국장으로 향했다. 사실 발효 콩으로 만드는 청국장은 냄새가 강해 비위가 약한 사람이나 일부 여성들은 싫어하기도 하는 음식이다. 맛을 보면 냄새로 먼저 접한 청국장에 대한 염려들이 싹 사라지지만 청국장 특유의 강한 냄새에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 조심스러운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집 청국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 풍겼다. 생각해보니 가게에 처음 들어올 때도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양파와 무, 두부가 듬뿍 들어간 청국장을 한 입 떠먹으니 따뜻하고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맛이 부드럽죠?" 맛있게 청국장을 떠먹고 있으려니 허 총무가 물었다. 그의 말대로 많이 뻑뻑하지도 묽지도 않고 적당하게 된 청국장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반찬 한 젓가락에, 청국장 한 술, 밥 한 술을 먹다보니 금세 밥공기가 비었다. "귀한 반찬, 몸에 좋은 청국장이라 남기면 안 되는데 밥 한 공기 더 드시죠?"라는 허 총무의 말에 밥 한 공기를 더 시켜 나눠 먹었다.

밥 한 공기 반에 배가 불러오자 밥을 먹느라 잠시 미뤄뒀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허 총무는 "여기는 청국장집이지만 오면 아무거나 다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김치찌개도 먹고, 된장찌개도 먹고, 라면도 먹고…"라고 말했다. 차림표를 보니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보였는데 라면은 도통 보이지 않아 "라면은 없는데요?"라고 물었더니 와서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보통은 다 해준다고 했다. 청국장도 맛있지만 먹고 싶은 걸 부탁하면 메뉴에 없어도 바로 조리해준다니 하며 감탄을 하고 있으니, 복날에는 삼계탕도 끓여준다고 허 총무가 덧붙였다. 삼계탕이면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비쌀 텐데 메뉴에 없는 돈 계산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모두 정식 값이란다. 청국장 정식은 7천 원, 택시 기사들은 특별히 6천 원이다. 허 총무는 "11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최근까지는 5천 원이었는데 천 원 올랐네요. 하지만 이렇게 푸짐하고 든든한 한상에 6천 원이면 정말 저렴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택시 손님들이 혹시라도 맛집 물으면 제일 먼저 추천하는 곳이 이 곳입니다. 이 가격에 이 맛에, 소개시켜주고 욕먹을 일이 전혀 없는 곳이기도 하구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12시 10분 정도가 지나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생각보다 기사 식당에 택시 기사들이 잘 안 보인다 했더니, 이제는 입소문을 타고 온 일반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단다.

청국장 맛의 비결에 대해 물어봤더니 네 식구가 하나 같이 특별한 게 없다고 한다. 주방을 맡고 있는 김정석 사장의 부인 남가미(62) 씨는 친정어머니에게 배운 청국장 만드는 방법 그대로 오늘도 청국장을 만든다고 한다. 이 가게의 유별난 특징은 없다고 하지만 국산 콩을 사서 깨끗이 씻고, 반나절동안 큰 솥에 삶고, 며칠을 따뜻한 방에서 발효시키는 모든 과정이 정석대로 이뤄진다고 하니 그 정성이야말로 속도와 편의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특별함일 터. 더 돋보이고 더 크게 보이려는 세상에서 소박한 한 마디가 인상에 남았다. "특별한 점이나 특징은 잘 모르겠네요. 그냥 집에서 하듯이 내 식구 먹이는 것처럼 하는 거죠."


▶오늘은 청국짱 /삼문동 567-8. 055-314-3325. 청국장 정식·된장찌개·김치찌개 7천 원.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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