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또래 아이들 70% 이상 "ABC"
내 아이만 뒤처질까 걱정에 너도 나도
학원 우후죽순 … 주입식 교육 경고도


지난 2일 오후 4시 율하동 한 아파트의 놀이터. 예찬이(6·가명)는 혼자서 놀고 있었다. 놀이터에는 유모차를 탄 영아부터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 기껏해야 3~4세 된 아이들 등 동생들만 있었다. 예찬이는 다행히 5세인 옆집 동생과 친해져 둘이서 신나게 놀이터에서 뛰놀았다.

예찬이 엄마 이진영(35) 씨는 놀이터 의자에 앉아 아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예찬이 친구들은 어디서 무슨 교육을 받고 있을까. 지금처럼 유치원과 아이가 원하는 태권도학원만 보내도 괜찮을까.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이제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 영어 조기교육열이 뜨거운 율하신도시의 한 상가. 영어학원들이 경쟁하듯 들어서 있다.

영어 교육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과거 중학교 교과목이었던 영어는 이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하는 교과목이 됐다. 하지만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초등학교 1~2학년은 물론 4~7세 미취학 아동의 영어 조기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김해에서는 율하신도시의 영어 조기교육열이 어느 지역보다 뜨겁다.

율하신도시의 경우 영어유치원 수업료가 한 달에 35만~70만 원이다. 영어학원 유치부의 경우 10만~15만 원 정도다. 3세 아이를 둔 이현진(34) 씨는 "어릴 때부터 놀이처럼 생활에서 배우게 되면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능력이 되는대로 영어교육을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영어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유아들이 배우는 영어는 알파벳을 익히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영어유치원의 경우 하루 종일 영어로만 수업을 한다. 유아들은 영어유치원을 마치면 영어학원에서 1~2시간 정도 영어를 또 배운다. 여기에 영어 학습지도 하나 이상을 본다.

이진영 씨는 "다른 엄마들을 만나면 다들 '별 교육을 안 시킨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학습지라도 하나씩은 다 시킨다. 10명 중 7~8명은 영어교육을 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아이들은 뛰어 놀면서 커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영어교육을 따로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지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유아 영어교육에 대해 아예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엄마의 욕심 때문이란 것이다. 자녀를 1년 동안 영어유치원에 보낸 적이 있다는 임애란(34) 씨는 "어린 나이에 영어를 배울 때는 배우는 대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그때 배운 것을 다 까먹었다. 습득이 빠른 대신 잊는 것도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라기보다는 놀이로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더 들여 아이들을 영어유치원, 영어학원에 보내면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게 되고 결국 아이들이 지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4, 6세 두 자녀를 둔 허윤정(33) 씨는 "주변에서 영어교육을 많이 시켜 고민을 많이 했지만 무엇이든 아이들이 하고 싶을 때 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모(34) 씨도 "영어 공부를 앞으로 계속 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가르치면 아이가 영어와 더 멀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 교육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한 교사는 "율하의 경우 교육열이 굉장히 높다. 엄마들이 욕심 때문에 너도나도 시작하는 주입식 교육은 위험하다. 특히 유아의 경우에는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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