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독일어는 내게 적어도 읽을 순 있는 언어다. 뮌헨. 독일어로 Munchen. 찬찬히 다시 본다. 그렇네. 뮨첸. 그나저나 뮌헨은 어디서 왔을까?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그렇다. 일본이다. 뮌헨(ミュンヘン)이다. 으음, 기분이….
뮌헨이 대구쯤이라면 콜마르는 굴비 나는 영광 앞바다 어디쯤이다. 반시계 방향으로 여행코스를 잡고 영덕, 안동, 대전을 지나 군산쯤으로 내려가니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라인강이 보인다. 그동안 레겐스부르크, 벰베르크, 로텐부르크, 그리고 하이델베르크의 아랫마을들을 지나왔다. 프랑스 땅 스트라스부르 근처에서 라인강을 건너는데 '길 잃지 않게 해준다'는 네버로스트란 네비게이션이 또 다시 갈팡질팡 에버로스트로 변신한다.
처음이 아니다. 16세기 독일의 대표적 르네상스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생가를 찾아 뉘른베르크에 들어섰을 때도 무슨 일인지 네비 속 이 여인은 우릴 도시의 정반대쪽으로 데려 갔었다.
아무튼 지금은 라인강을 건너 알자스의 주도 스트라스부르 교외다. '여행이란 자신의 환상을 확인 하러 가는 것'이란 잔인한 말이 있다. 그렇다. 나의 환상. 내 머리 속에 알자스의 환상을 만든 것은 '마지막 수업'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 언제쯤부터 알자스에 가고 싶었다. 저 멀리 프로이센 군대의 소리가 들리고, 개똥지바뀌 새가 날고, 웬일인지 마을 아저씨들이 침묵 속에 교실 뒤편에 앉아 있고, 마침내는 선생님이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쓴다. 아무튼. 어수선한 스트라스부르를 등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좌우로 온통 포도밭이다. 와인가도라 이름 붙여진,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은 그 길을 따라 60여km를 내려가면 오늘의 목적지 콜마르다.
지금은 프랑스 땅이지만 한 시절 독일이 지배했던 기억을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간직 하고 있는 콜마르. 알자스 지방의 대부분 모습이 그렇듯 아기자기한 독일식 목조 건물이 구도심의 풍경을 이룬다. 콜마르 시내 운테린덴 미술관으로 가자는데 네비게이션의 이 여인, 또 다시 엉뚱한 머큐리호텔 문 앞에서 자꾸 목적지에 다 왔단다. 헌데 지도를 보니 다 왔다. 근처다. 한때 도미니크회 수녀원이었던 운테린덴 미술관 2층에 <이센하임 제단화>가 있다. 이걸 보러왔다.
이센하임이란 콜마르에서 또 다시 20여km 남쪽으로 떨어진 곳의 마을 이름이다. 15세기 이센하임에 손과 발에 괴저가 생겨 썩어 들어가는 병을 잘 치료하기로 소문났던 안토니우스파 수도회의 병원이 있었단다. 수도사들은 원인이 되는 곰팡이 균에 감염된 호밀 대신 신선한 호밀가루로 빵을 만들고, 성 안토니우스의 성물에 적신 약초를 넣은 포도주와 약초로 만든 연고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제공했다. 환자가 늘었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수도회측은 마인츠 교구의 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1475~1528)에게 니클라우스 하게나우어가 조각한 중앙 제단을 위해 일련의 날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이센하임 제단화>이고 지금은 콜마르의 운테린덴 미술관으로 옮겨와 있다.
<이센하임 제단화>는 원래 접고 펴게 되어있던 것을 지금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물론 한쪽에 장난감처럼 작게, 원래의 모양으로 모형을 만들어 어떤 구조였는지 알 수 있게 해놓았다. <이센하임 제단화>의 아홉 장면 중 구조상 제일 먼저 보게 되며 제일 유명하기도 한 그림이 '십자가형'이다. '십자가형'은 중앙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그 양 옆으로 세례자 요한과 어린 양,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사도요한, 막달라 마리아가 각각 그려져 있다. '십자가형'은 고통을 못 이겨 하늘로 뻗쳐 올라간 예수의 손가락과 대못에 박혀 일그러진 발등.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붉은 선혈.숨 막히는 고통에 끊어질듯 잘록해진 허리. 그리고 점점이 박힌 상처와 얼룩들이 가득한 몸. 그리하여 성한 데 한군데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 예수의 적나라한 마지막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뤼네발트가 <이센하임 제단화>를 그렸던 16세기 북유럽은 르네상스의 절정기로 해부학을 통한 정확한 인체비례와 원근법 등 이미 새롭고 과학적인 미술 기법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오스트리아 평론가 곰브리치가 <이센하임 제단화>를 보고 '진보적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위대해질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라고 말했듯이 새로운 미술 기법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센하임 제단화>는 예술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웅변하듯 보여준다. 이것이 훗날 20세기 초 일군의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자신들 전범 중 하나로 <이센하임 제단화>를 내세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십자가형' 그림을 좌우로 펼치면 '아기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주제로 한 또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그림이 병자들을 위한 시설에 있었음을 생각하면 그뤼네발트의 의도적 고려가 무엇이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운테린덴 미술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 앞에 앉아있다. <이센하임 제단화>는 설렁설렁 지나가듯 바쁘게 구경하는 그림이 아니다. 숨을 고르고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도록 내버려둔 채 온몸으로 느끼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과 그림 속 내면의 열정이 하나가 되는 그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관람객들 모두 그렇게 천천히 그 순간을 느끼며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참! <마지막 수업>에 잘 안 알려진 반전이 있다. <마지막 수업>의 역사적 배경은 '보불전쟁' 즉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의 전쟁이다. 소설이 '이제 전쟁에 져서 프랑스어를 못 쓰고 독일어를 쓰게 되었다. 모국어의 소중함이란 이렇게 큰 것이다'하는 것인데.
당시 알자스 지방 사람들의 공용어는 정작 프랑스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들은 독일어의 사투리에 가까운 알자스어를 쓰고 있었다는데. 그러니까 '프랑스 말이 아닌 알자스 말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프랑스 말을 강요하다가 이젠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별>을 읽고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물론 작가의 삶과 작품은 별개라 하더라도, 복잡한 여자 문제로 마침내는 매독으로 고생하다 생을 마감한 알퐁스 도데의 생애를 들먹이는 것 역시 조금은 불편하다. 아무튼. <이센하임 제단화>는 1차대전 기간 중에는 독일에 의해 뮌헨의 알테 피나테코 미술관으로 옮겨져 안전하게 보관되었다가 돌아왔다. <이센하임 제단화>는 보리수나무에 오일과 템페라로 그려져 있는데 미술관 이름 운테린덴 또한 보리수나무 아래라는 뜻이다. 보리수. 린덴바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독일어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Matthi-as Grunewald·1475∼1528).
독일의 종교화가. 정확한 본명과 출생연도는 미상. 그뤼네발트는 17세기에 붙여진 이름. 그후 19세기 들어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본명이 마티아스 고트하르트 니트하르트로 추정됨. 1509년경 궁정화가가 되었고 1515년경 그의 대표작인 <이센하임 제단화>를 제작.
■ 콜마르 - 운테린덴 미술관 ─────
· 전화번호=+33 (0)3 89 20 15 50
· 개관시간=5월에서 10월까지 매일 개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11월에서 4월까지는 오후 5시로
당겨지며 화요일 휴관.
· 요금=성인 7유로. 30세 이하 학생 5유로. 12~18세 청소년 3유로.
· 가는 길=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는 기차로 4시간. 스트라스부르에서 콜마르까지 68km. 40분 정도.
콜마르 기차역에서 미술관까지 버스 1,3,4,5,7,8번.
http://www.musee-unterlinden.com
■ 여행팁 ─────
* 사르망 도르 호텔 레스토랑 http://riquewihr-sarment-dor.fr/index/en,
* 알자스 여행 http://www.tourisme-alsace.com
윤봉한 _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