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김해 땅에 착하고 어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더란다. 그 사람들은 꽃이 피고 지고, 비 내리고 눈 오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의좋게 지냈지. 호호할머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귀여운 아가들이 또 태어났단다. 그래서 언덕 하나 넘고 개울 하나 팔짝 뛰어넘어가도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는구나. 지금부터 <김해뉴스>가 들려주는 김해의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2주일 만에 한 번씩 풀려고 해. 귀 쫑긋 세우고 한번 들어보렴.

"사내가 요강을 비우다니…" 놀림에도
"어린 제가 할 수 있는 일일뿐입니다"
어머니 병구완 효심에 범마저도 지켜줘


▲ 그림=정원조 화가

조선 영조 임금이 즉위한 지 26년이 되던 해. 김해 회현마을 허림의 집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허림은 아이의 이름을 동엄이라 지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동쪽에 뜬 해가 지지 않고 집 주위를 왔다갔다하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는 예사롭지가 않아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를 지그시 쳐다보는 것이, 어머니 절 낳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아요."

아내가 갓난아기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허허. 아무리…. 너무 기다리던 아이라 그런가 보오."

아내의 말을 무시하는 척하면서도 허림은 속으로 몹시 기뻤다. 아이의 얼굴에는 맑은 기운이 가득했다. 회현마을 허씨 집안은 가락국 시조 허황옥 왕후의 후손들이었다. 충과 효, 예를 갖춘 인물이 두루 태어나 왕후족의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동엄은 잘 보채지도 않고 늘 방글방글 웃는 것이 꼭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다. 말을 익히자 곧 글을 익혔고, 행동거지가 반듯해 마치 학문을 닦은 어른 같았다. 

"어쩜 저렇게 천인(天人) 같은 아이를 얻었을까. 복도 많네, 복도 많아."

"집안 내력인 게지. 멀리로 왕후의 후손이요, 가까이로 죽암 선생의 6대손이 아니신가. 보통 인물이 아니야."

동엄은 무럭무럭 자랐으나 아버지 허림은 동엄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영특한 동엄은 아버지가 하던 일을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아침 일찍 일어난 동엄은 할머니 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방문 앞에 꿇어앉아서 아버지가 하던 대로 아침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방이 차지는 않던가요? 나쁜 꿈을 꾸지는 않으셨어요?"

할머니가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다. 조그만 아이가 의젓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문안인사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동엄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이 어린 것이, 이 어린 것이 어쩜…."

할머니 품속에서 동엄은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 아버지가 안 계셔서 슬퍼하시는 거 알아요. 이제부터는 동엄이를 아버지라 여기셔요."

"오냐. 오냐. 그러고 말고."

할머니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본 동엄은 무척 기뻤다. 할머니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때 방구석에 놓인 요강이 보였다. 아버지가 아침마다 비우던 요강이었다.

"할머니. 이제 요강은 제가 비울게요."

동엄은 낑낑거리면서 요강을 비우러 갔다. 동엄이 대문 밖 거름더미에 요강을 비우고 있는 것을 지나가던 이웃사람이 보았다. 이웃사람은 혀를 차며 놀렸다.

"사내자식이 요강을 비우다니. 꼭 첨지 꼴이구나."

"첨지가 뭐예요?"

"첨지란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 별로 쓸 데가 없는 남자를 이르는 말이란다. 사내자식이 요강이나 비우다니, 앞날이 훤하다."

동엄은 잠시 생각하다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저는 아직 어려서 할머니와 어머니께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요. 그러니까 첨지 맞아요. 요강첨지."

"허, 참. 정말 영특한 아이로구나. 너의 진심을 모르고 흉을 보아 미안하구나."

이웃사람은 동네방네 동엄을 칭찬했다.

"어린 것이 효성스럽고 어른스럽기 짝이 없더라니까요. 영특한 아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이 입 저 입 오르내리다 보니 동엄에게는 그만 요강첨지라는 별명이 붙고 말았다. 소문은 동엄의 할머니와 어머니 귀에도 들어갔다. 동엄은 할머니에게 불려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소복을 입고 엄한 표정으로 동엄을 꿇어 앉혔다. 

"학문을 닦고 덕을 길러 큰 선비가 되어야 할 네게 요강을 비우게 했으니 내 죄가 크다. 내  죽어 무슨 면목으로 니 할아버지와 애비를 만난단 말이냐. 이제 네가 내 종아리를 치거라."

할머니가 일어나 소복 치마를 걷어올렸다. 동엄은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말했다.

"더 이상 요강을 비우지 말라 하시면 저는 정말 요강첨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저는 아직 어려 두 분의 요강을 비워 드리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지 말라 하시면 앞으로도 자꾸 눈치를 살펴 꾀를 부릴 것이니, 나이가 들면 정말 첨지가 될 것입니다."

할머니가 회초리를 거두고 다가앉으며 물었다.

"첨지가 안 좋은 말이라는 건 알고 있느냐?"

동엄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할머니. 저는 어리니 모자라고 부족해서 첨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두 분을 잘 받들어 첨지가 아니 되도록 하겠습니다."

회초리를 내려놓은 할머니는 팔을 벌려 동엄을 안았다. 

"그렇구나, 아가야. 내가 너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였구나."

동엄의 진심을 알게 된 할머니는 이후 동엄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믿고 내버려두었다.

동엄은 자라 서당에 다니게 되었다. 서당 동무들이 요강첨지라 놀렸지만 동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당 동무들에게 효를 행함에 있어서는 건강을 챙기는 것이 으뜸이요, 변의 상태를 통해 어른의 건강을 살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더럽지 않아? 냄새도 나고…."

"그렇지 않아.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더럽다 하지 않았잖아. 다 생각하기 나름인 거야."

동엄의 말이 하도 지극했기 때문에 서당 동무들은 더 이상 놀리지 않았다. 서당 동무들은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그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는 동엄을 귀한 벗으로 삼았다. 동엄은 또 할머니나 어머니, 친구들을 항상 웃는 얼굴로 대했다. 얼굴은 마음의 상태가 드러나는 곳이므로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 안 좋은 일이나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겼다.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더니, 요강첨지야말로 익은 곡식일세."

행여 칭찬의 직접 말을 듣기라도 하면 동엄은 허리를 숙여 부끄러워했다.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직 요강첨지라는 별명을 떼지도 못했습니다."

"아닐세, 아니야. 자네를 요강첨지라 부르는 것은 욕이 아니라 칭찬이라네."

의젓한 선비의 풍모를 갖춘 청년 동엄은 안동권씨 집안의 현숙한 처자와 혼인을 했다. 아내 권 씨 역시 효성스럽고 어진데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았다. 동엄은 슬하에 자식을 두고 권 씨와 더불어 할머니와 어머니를 공경함에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할머니가 병석에 누웠다. 가뭄과 홍수가 그치지 않는 흉흉한 시절이었다. 동엄은 몹시 걱정하고 슬퍼하며 할머니 병구완에 정성을 다했다. 직접 약을 달이고 식사를 챙기며, 잠자리를 돌보았다.

동엄은 요강을 비우는 일을 병의 차도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래서 요강을 비우기 전에 반드시 손가락으로 찍어 변의 맛을 보았다. 변을 맛보기까지 한다는 동엄의 소문이 고을에 널리 퍼졌다.

"요강첨지 효심은 하늘이 낸 것이야."

"어릴 때부터 남다르다 했는데 어른이 되어도 변함이 없구나."

하루는 권 씨가 동엄에게 몸을 돌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동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할머니의 병이 점점 깊어지는데 내 몸을 돌보고자 이를 소홀히 한다면 어찌 진심이라 할 수 있겠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스물일곱 살 동엄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음을 탓하며 보리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할머니의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를 시작했다.

죽으로 연명하면서 시묘하고 있던 어느 날 하인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어머니가 병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온나라를 휩쓴 전염병이 회현마을에도 퍼졌던 것이다. 동엄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염병에 걸린 어머니는 더 이상 마을에 있을 수 없었다. 동엄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범골에 초막을 지었다. 그리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초막으로 갔다.

초막이 있는 범골은 범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범이 무서워 얼씬도 않았다.

"저러다 호환을 당하지 않겠는가? 거긴 범이 득실거리는 곳인데."

마을사람들은 동엄을 걱정했다. 그러나 동엄은 초막에서 어머니의 병간호에 열중했다. 하루에 한 번 하인이 먹을 것과 집안 소식을 가지고 왔다 갈 뿐, 적막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동엄은 외딴곳의 적막함도, 범을 만나 화를 당할까 걱정할 겨를도 없었다. 어머니의 상태는 그만큼 위독했다.

어느 날 밤 동엄은 요강을 비우다 범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얼룩덜룩하고 커다란 짐승이 마당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었다. 동엄은 무서워하지 않고 말했다.

"나를 먹으러 왔느냐?"

범은 슬그머니 물러나더니 웅크리고 앉았다. 동엄은 범이 자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려는 것임을 알았다.

"하늘이 어머니를 지켜주시는구나."

범은 매일 밤 마당에 와서 동엄을 지켜주었다. 어머니가 결국 숨을 거두자 동엄은 애절하게 통곡했다.

마을 밖에서 죽은 사람은 사흘이 지난 뒤에야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 시신을 모시고 초막에서 지낸 동엄은 사흘 뒤 예의를 다해 어머니께 수의를 입히고 입관했다. 저녁이 되자 집으로 관을 모시는데 범이 조용히 뒤따라왔다. 범은 회현마을 입구에 이르러서야 돌아갔다.

동엄은 어머니의 묘 옆에도 여막을 지었다. 할머니 묘와 어머니 묘는 이십 리나 떨어져 있었으나 여섯 해 동안 밤낮으로 두 묘 사이를 오가며 시묘를 행했다. 이십 리를 매일 오가는 동엄의 뒤에 범 한 마리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함께했다.

사람들은 동엄을 허효자라 불렀다. 소문을 들은 동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야 첨지를 면하게 되었구나."

그러나 연이어 입은 상으로 인해 동엄은 1774년 서른넷의 나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부군의 상을 입은 권 씨는 옷고름으로 목을 매어 정절을 지키려 했다. 집안 어른들이 집안과 자식을 돌봐야 한다고 만류해 겨우 목숨을 부지한 권 씨는 남편의 삼 년 대상(大喪)을 마친 뒤 음독하고 순사했다.

허동엄의 효행과 권 씨의 열행(烈行)을 정려(旌閭)한 두 개의 비석이 김해 향교 효열각(孝烈閣)에 나란히 서 있다.

≫ 조명숙 작가
1958년 김해 출생.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장편 <농담이 사는 집>과 <바보 이랑>, 소설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창작동화 <샘바리 악바리> 등을 펴냈다. 2003년 부산작가상, 2006년 MBC창작동화대상, 2010년 부산소설문학상, 2012년 이주홍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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