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소리쳐 부르면 가슴까지 다 시원해지는 노래 '연'의 가사이다. 누가 처음으로 연을 날렸을까. 그는 어쩌면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꾸다가 연을 발명했을지도 모른다. 연날리기는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연이 처음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열전'편에는 신라 선덕여왕 말년에 김유신이 밤에 풍연에 불을 달아 하늘로 올려 민심을 수습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도 전쟁터에서 연을 이용했고, 이순신 장군도 연을 전투의 신호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연은 백성들 사이에서 놀이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정월 대보름에 연날리기를 즐겼다. 대표적인 겨울 민속놀이가 된 것이다. 김해우리연보존회 회장 김철웅(71) 씨를 만나 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굵기와 길이, 무게와 탄력도 일치하게
대나무살 만드는 과정 대단히 정교해야
하늘에 띄웠을 때 자유자재 조종 가능

그림도 안료·소주·목공본드 섞어 사용
국제대회 가면 "한국 연 튼튼" 감탄
즐기는 사람들 많아야 전통 보존 계승


김철웅은 연제작자이자 연을 날리는 사람이다. 연날리기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들 중에는 연제작자에게서 연을 따로 구입하는 이도 있다는데, 김철웅은 만드는 것과 날리는 분야에서 모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김해우리연보존회 회장, (사)부산민속연보존회 회원, 연산민속연보존회 고문 등을 맡으며 30여 년 간 연을 만들고 날려 왔다.

그가 연을 만드는 곳은 김해 대성동의 가야공예협회와 부산 연산동의 연산민속보존회 두 곳이다. 연산민속연보존회 사무실에 연이 많이 있다고 해서 부산 연제구 연산동 1198의 보존회를 방문했다.

보존회에 들어서니 김철웅이 만든 방패연들이 먼저 눈에 뜨인다. 태극무늬, 국화그림, 가야문양 탁본까지 연을 장식한 그림도 다양하다. 벽면에는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다는 신호연들을 그려 넣은 액자가 걸려있다. 연마다 '일출에 공격하라', '일몰에 공격하라' 등 상세한 전투지시의 의미가 담겨있는 신호연이다. 줄 연은 박스에 담아 선반에 정리해두었다. 취재는 제쳐놓고 연줄을 얼레에 감고, 연을 들고 나가 날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자 역시 맵싸한 겨울바람에 연을 날려보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김철웅은 부산 용당동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 슬하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 별다른 놀잇감이 없었어요. 여름에는 구슬치기, 겨울에는 썰매타기와 연날리기를 하며 놀았지요.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바쁘고, 아버지가 외동이라 삼촌도 없었고, 제가 장남이라 형도 없었으니 연은 제가 직접 만들었지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연날리기에 빠져들었다. "대연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교장선생님  성함도 기억납니다. 배이준 교장선생님께서 연날리기에 관심이 많으셨던가 봐요. 4~6학년 남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연날리기 대회를 했어요. 한꺼번에 많은 연들이 하늘을 날던 장면, 장관이었지요. 그 연날리기 대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일이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연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는 연을 잘 날린 아이들에게 상으로 주는 크레용을 받은 기억이 난다며 웃음 지었다. "연을 처음 만들었을 때 애먹었지요. 연 만드는 걸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동네 형들이 만드는 걸 옆에서 보면서 배웠습니다."

어린 소년이 처음 만든 연은 제대로 날지 않았다. "연을 만드는 것은 매우 정교한 작업입니다. 그걸 모르고 만들었으니 처음에는 뱅뱅 돌다가 땅바닥에 처박히기 일쑤였지요. 이렇게도 만들어 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보고…. 혼자서 온갖 궁리를 하면서 만들고 또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연 만들기를 익혔지요."

공들여 만든 연을 들고 나가 친구들과 연날리기를 하면 으레 연싸움으로 이어졌다. 친구의 연줄을 끊어먹을 때면 신이 났고, 반대로 연줄이 끊기면 약이 올랐다. "그럴 때면 입이 어디까지 튀어나와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또 연을 만드는 거죠. 그렇게 연을 참 많이도 만들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한 뒤 그는 김해 대동면에서 장미농사를 지었다. "동생들이 먼저 김해로 와서 장미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는 진영에서 장미농사를 짓다가, 부산 유엔묘지 옆으로 옮겼다가 다시 대동으로 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흔 즈음에 본격적으로 연을 만들고 날리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부산에는 온천장과 연산동 등지에서 우리 전통연을 만들고 날리는 어른들이 아직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

"살아계신다면 90대 이상의 연세가 되실 겁니다. 그분들과 함께 연산민속연보존회, 부산민속연보존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함께 연을 날리는 분들을 추억했다. 

▲ "연은 하늘에 그냥 떠있는 게 아닙니다. 상하좌우, 대각선 아래로 위로 조종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김철웅 씨가 방패연을 든 채 연날리기를 설명하고 있다.

"연은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집니다. 대나무를 쪼갤 때는 굵기와 길이가 정확해야 하고, 대칭되는 자리에 붙이는 대나무살은 무게와 탄력도까지 정확히 일치해야 합니다. 매 과정마다 무게와 길이, 그리고 탄력도를 일일이 확인해야 합니다. 오래 만들다보니 이제 손끝으로도 감각이 전해져옵니다."

김철웅이 연을 펼쳐놓고 설명했다. "우리 전통 한지는 앞면과 뒷면의 결이 달라요. 한지의 매끈한 앞면은 연을 만들 때도 앞면으로 해요. 이 매끈한 면이 바람을 막아주죠. 뒷면에는 한지제작 과정에서 생긴 잔털이 있어요. 이 잔털이 공기가 못 나가도록 잡아줍니다. 그래서 연이 날 수 있어요. 연은 하늘에 그냥 떠있는 게 아니에요. 상하좌우, 대각선 아래로 위로 조종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연을 움직이는 장면을 설명할 때 그의 표정은 마치 들판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연을 조종하고 있는 듯 했다.

"방패연이 직사각형인줄 아셨죠? 위가 아래보다 조금 더 길어요. 가운데 방구멍 위를 '어깨'라고 해요. 어깨로 바람을 받고, 방구멍 아래 부분으로는 바람을 흘려보냅니다. 연줄을 풀고 당기면서 바람을 타고, 공격도 하고, 방어도 하고, 도망도 치고, 각도를 재면서 상대방 연줄도 끊고…."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치 눈앞에서 연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듯 하다.

"연날리기 국제대회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연에 감탄합니다. 연을 날리는 사람의 재주에도 감탄하지만, 연 자체에 놀라는 겁니다. 우리는 '연이 좋다'라고 말하는데, 외국인들이 감탄하며 하는 말을 번역하면 '한국 연은 튼튼하다'는 뜻이에요. 그만큼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잘 만든다는 의미이지요."

연의 앞면을 장식하는 그림 역시 단순히 색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안료를 물로 개는 것이 아니라 소주를 사용해요. 물을 사용하면 시일이 흐른 후 곰팡이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목공본드를 섞어요. 그러면 물이 튀어도 색이 번지지 않아요. 연줄은 명주실에 유리가루를 먹여 만든다는 거 아시죠?"

김철웅은 연을 만드는 것도, 날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에게는 그 두 개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그는 부산과 김해를 오가며 어린이들을 위한 연 만들기와 날리기 체험을 계속 해왔다. 가야문화축제의 연 체험은 모두 그가 이끌어간다.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의 연 체험 역시 그의 몫이다. 부산과 김해의 학교에서 체험교실을 열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데 잘 보존계승 되려면 어린이들이 연날리기를 계속 해야지요. 어린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하고 있으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좁아져요. 단단한 땅 위를 뛰어다니고 높푸른 하늘을 보면서 연을 날리다 보면 마음도 탁 트이고, 몸도 튼튼해질 텐데 말입니다."

연날리기의 좋은 점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연을 날리려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데 그 자체가 몸에 좋답니다. 눈 운동도 많이 하게 되고, 자세도 바르게 된다고요. 뛰기도 해야 하고요.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은 운동이 되는 놀이라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도 담을 수 있지요. 소원을 빌기도 하고, 액을 실어 떠나보내기도 하고…. 하늘 높이 마음을 실어 보내고 그 마음의 줄을 잡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연입니다."

≫ 김철웅
김해우리연보존회 회장, (사)부산민속연보존회 회원, 연산민속연보존회 고문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