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두를 볶아 커피의 맛과 향을 이끌어내 음료로 가공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을 로스팅(Roasting)이라 한다. 로스팅은 생두의 종류와 건조 상태에 따라 8~10단계로 구분 되지만, 날씨와 습도에 따라 더욱 세분화 된다. 로스팅 과정을 거친 생두를 '원두'라고 한다. 원두를 분쇄해 물을 이용해 여러 향미 성분을 뽑아내는 과정을 추출이라고 한다. 커피 추출 원리는 침지, 달임, 진공여과, 드립 추출, 가압여과 추출, 순환 추출 등 크게 6가지로 구분된다. 커피전문점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한 가압여과 추출 방식과 페이퍼드립,
넬드립 등의 드립 추출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같은 추출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물의 종류와 온도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난다.

커피의 완성도는 생두의 신선도가 결정적이기는 하지만, 로스팅과 추출 과정을 통해 커피의 맛과 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 진다. 로스팅은 로스터(Roaster)란 기계를 사용해야 하지만, 약간의 요령만 알면 일반 가정에서 프라이팬으로도 가능하다. 추출 역시 주전자와 여과지 등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된다. 이처럼 소비자의 자기 결정권이 크기 때문에 커피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헌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이 또한 커피의 매력이다. 초보자든 전문가든 생두를 가공해 커피라는 최종 결과물은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 맛과 향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커피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을 뿐 모두가 만족하는 답은 없다.

음식점 운영하다 커피 매력 빠져
통나무집에 전문점 차린 김종달 씨
감각적이고 여유있는 드립 일품
몽글몽글 커피 맛 "아들아 어때?"

커피전문점 역시 마찬가지다. 고객의 기호에 따라 각자가 선호하는 커피전문점이 있을 뿐, 최고라 단언할 수 있는 커피전문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는 위치가 좋아서, 누구는 인테리어가 훌륭해서, 또 누구는 커피가 내 입맛에 맞아서 선택할 뿐이다. 최근 김해에도 카페베네, 엔젤리너스, 스타벅스 등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뿐만 아니라 로스팅까지도 직접 하는 커피전문점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커피전문점을 한 곳 소개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하지만 시작은 늘 어렵다. 그 많은 전문점들 가운데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전문가의 조언도 구하고 블로그를 통해 비교적 많이 소개된 몇몇 곳을 돌아봤다. 인구 50만의 도시 김해에도 제법 수준 높고, 개성 넘치는 커피전문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곳, 각별한 스토리를 가진 '커피산책'을 소개하기로 한다.
 

인제대를 지나 가야컨트리클럽 왼편에 있는 생림면 나전리 윗안금마을. 차에서 내리니 벚꽃이 유난히 흐드러지게 핀 통나무집 한 채가 멀리서도 눈에 띈다. 입구에서부터 10여 그루의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클래식한 느낌의 가구며 소품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밖으로 난 테라스에는 벚꽃이 눈처럼 휘날린다. 깊어가는 봄 날의 정취가 커피의 맛과 향을 더욱 짙게 해줄 것 같다.
 
어느 커피전문점을 가건 가장 먼저 맛을 보는 하우스블렌드 한 잔을 앞에 놓고 '커피산책'의 '큰사장님'으로 불리는 김종달(57) 대표와 '작은사장님'으로 불리는 김형근(30) 씨와 마주 앉았다. 커피산책의 커피 맛이 각별한 것은 이 부자의 스토리 때문이다. 김종달 대표는 어방동에서 14년간 갈비집을 운영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부가 운영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에 커피를 만났다. 2006년에는 기어이 갈비집을 접고 서울과 부산 그리고 일본으로 커피전문점 운영에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을 받으러 다녔다. 직업으로 커피를 선택했지만 그는 커피의 매력에 푹 빠졌다. 특히 로스팅에 매료됐다. "로스팅은 결국 책에서 배우기 보다는 경험을 통해 자기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그가 내민 두 권의 노트에는 생두의 종류와 특징에 따른 로스팅 방법과 시간이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커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애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힙합춤에 빠져 살던 아들 형근 씨
라떼아트 매료돼 가족경영 합류
섬세함으로 가득찬 드립 부전자전
카랑카랑 스타일 맛 "만만찮죠?"

2007년 '커피산책'을 시작한 그는 아들 형근 씨에게 커피를 권한다. 중학교 때부터 힙합댄서로 활동했던 형근 씨는 댄스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방과후교실의 강사로까지 활동하고 있던 터였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처음엔 시큰둥하던 형근씨까지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순서를 밟았다. 아버지가 로스팅과 드립으로 시작을 했다면, 형근씨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는 법과 커피에 스팀밀크를 이용하여 다양한 이미지를 만드는 라떼아트(Latte Art)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 커피산책은 김종달 대표 부부와 형근씨 부부, 이렇게 네 식구가 완벽한 가족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아버지와 아들에게 드립커피 한 잔씩을 부탁했다. 김종달 대표는 "모처럼 부자지간에 배틀 한번 할까?"라며 흔쾌히 응해 주셨다. 아버지는 과테말라를 선택했고 아들은 인도네시아 만데린을 선택했다. 둘 다 맛있기로 소문난 커피다. 아버지의 드립은 감각적이고 여유가 있었다. 물 온도까지 섬세하게 체크하는 아들의 드립은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커피 맛은 몽글몽글했고 아들의 커피 맛은 카랑카랑했다. 이는 다만 스타일일 뿐, 우열을 가릴 성질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내린 커피를 맛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부자커피'라 해서 별도의 메뉴로 판매한다면 꽤 관심을 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탈리아어로 '바(Bar) 안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란 뜻의 바리스타(Barista)는 생두의 선택, 로스팅, 추출을 통해 고객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어 내는 전문가다. 세계 13위 규모의 소비국으로서 커피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최근 유망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커피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관련 학과를 전공하거나 학원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관련자격증으로는 한국바리스타협회에서 주관하는 바리스타 1·2·3급이 있다.
 
힙합댄서로 출발해 2008년부터 가게 일을 돕기 시작한 형근씨는 이러한 정규 교육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커피산책이 곧 그에게 있어 현장이자 학습의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라떼아트 등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점점 커피의 본질에 다가갔다. 결국 생두의 선택과 로스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연구는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마다 그는 유명 커피전문점을 찾아갔다. 사교성 좋은 그는 소문난 '고수'들에게 한 수 배움을 청했고, '고수'들은 그의 청을 뿌리치지 않았다.
 
형근씨에게 '작품'을 부탁했다. 카푸치노에는 곰돌이를, 카페라떼에는 나뭇잎을, 아포가토에는 국화문양을 새겼다. 2년 동안 독학으로 터득한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그 맛이었다. 커피음료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이 우선 뛰어났다. 그리고 스팀밀크와 우유거품의 비율이 절묘했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단한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감각이다. 기자의 경험으로 봤을 때, 형근씨는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다. 그의 노력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그의 감각이 더욱 정교해진다면, 바리스타로서 그의 능력은 지금보다 다음을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저서 '위대한 장소'에서 직장·학교·집이 아닌 '제3의 장소(The third place)'에 주목했다. 제3의 장소는 집에 있는 것과 같이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집과는 다른 재미를 줄 수 있어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되는 장소를 지칭한다. 주로 사람들을 만나 공통된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사회적 활력을 얻는 곳으로서 카페, 서점, 커뮤니티센터, 쇼핑센터 등이 해당된다.
 
도심에서 벗어난 김해시 생림면 윗안금마을. 한적한 곳에 터를 잡은, 수 십여 그루의 벚나무에 둘러 싸인 통나무집 한 채. 그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커피를 볶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쿠키를 굽고 있다. 네 식구가 만들어내는 행복한 향기와 편안한 분위기. 그 향기와 분위기 속에서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대화를 나누고, 또 누군가는 느긋하게 시간을 즐긴다. 그래서 '커피산책'이야말로 안정감과 더불어 집과는 다른 재미를 주는 '제3의 장소'로 제격이 아닐까 싶다.


Tip. '커피산책' 메뉴와 연락처 ───────

▶핸드드립커피(5,000~7,000원)
▶에스프레소 베이에이션(5,000~6,500원)
▶토스트와 케익(4,000~5,500원)
 
▶주소 : 김해시 생림면 나전리 57번지
▶연락처 : 055)332-3506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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