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에 불러보는 풍년가인가
수북하게 손에 쌓이는 벼 낱알

지난해 수확량보다 웃돌 전망에
억척스런 농사꾼 주름도 펴지고

"김해벌에 대풍년이 찾아왔구나! 얼씨구나 풍년이어라!"

김해의 들녘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추수의 계절이 다가왔다. 지난 15일 김해 시가지를 벗어나 생림면 생림리 경동마을로 갔다. 도심의 콘크리트 숲 속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가을의 정취가 곳곳에 머물러 있었다. 경동마을은 사람이 사는 집을 제외하곤 사방이 황금빛 논이었다.

경동마을에서 32년째 쌀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이봉술(67) 씨는 자신의 논 앞에서 어깨춤을 덩실 췄다. "어허허! 좋구나. 어얼씨구! 풍년 중의 풍년! 대풍이로구나!" 얼마 만에 불러보는 풍년가인가. 이 씨를 좇던 누렁이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그의 바지자락에 매달렸다.

"누렇게 익은 벼가 너무나도 탐스러워 베어내기 조차 아깝다오. 낱알이 얼마나 잘 여물었는지 이리로 한번 들어와 보시구려." 이 씨는 신발을 장화로 갈아 신는 것조차 잊은 채 밀짚모자만 주워 쓰고 그대로 자신의 논으로 뛰어들었다. 벼 이삭은 145개 안팎의 낱알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씨가 이삭을 손으로 스윽 훑더니 손 안에 담긴 벼 낱알을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옹골차게 여문 벼가 꽤나 수북하게 그의 손에 담겨 있었다.

"이런 풍년은 근 10년 만에 처음이라오. 오죽했으면 이 풍년을 알리고 싶어 신문사로 전화까지 했겠소. 희한하지. 희한해. 올 여름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덥긴 했지만 비도 적당히 와주었고 큰 태풍도 없었다오. 올해 풍년이 들 것을 예상하고 30년간의 벼농사 노하우를 올해 이 논에 다 쏟아 부었다오. 행여나 병충해가 들진 않았나, 비료는 적당하게 쓴 건가 해서 지난해보다 배는 더 자주 논에 왔을 게야."

▲ 마치 소중한 자식을 품에 앉은 듯 황금들녘에서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농심이 더없이 풍성해 보인다. 김해 생림 경동마을 농사꾼 이봉술 씨의 논에서.

이 씨가 허리춤에서 낫을 꺼내들었다. 추수용 농기계를 타고 논을 밀고 지나가면 일이 수월할 터. 하지만 이는 오랜만에 찾아온 풍년을 맞이하는 농부의 예의가 아니란다. 이 씨는 허리를 굽혀 직접 벼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논 바닥에 볏단이 촘촘히도 박혔네. 볏단이 굵어 손으로 베는 게 쉽지 않겠어!" 일흔을 바라보는 이 씨지만 오늘만큼은 한창 때의 그날처럼 기합을 넣어가며 묵직한 볏단을 들어올렸다. 땀이 비 오듯 흘렸지만 그는 허리를 펼 때면 어린아이 마냥 연신 신이 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논을 팔아버리는 농부가 점차 늘고 있다곤 하지만, 김해의 땅은 고집 있는 농부에겐 이 같은 풍요를 아직도 안겨주고 있다오. 논을 버리는 농부는 있어도 하늘은 논을 버리지 않는 게야. 자연의 순리에 따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우리의 정서, 특히 억척스런 농사꾼이 많았던 김해의 정서였지."

올해 2천900㎡(약 900평) 규모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은 이 씨는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간에 걸쳐 추수를 진행했다. 이 씨의 논에서 생산된 쌀은 총 15가마니 반(1천240㎏). 이는 지난해 같은 규모의 논에서 거둬들인 쌀보다 20%나 많은 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쌀을 팔아 200만 원의 수익을 낸 반면, 올해는 쌀의 품질이 좋아 직거래 방식으로 쌀을 판매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 씨는 지난해보다 2배가량 많은 385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한편 김해시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매년 김해의 논이 2~3%씩 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풍년으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 김해지역 쌀 생산량이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해뉴스 /김명규 기자 kmk@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