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정신을 집중해 먹을 간다. 벼루에 닿는 먹의 밑바닥 면이 칼로 단번에 잘라낸 듯 고르고 반듯하다. 서예가 최부림(52)은 이렇게 먹을 갈아서 하룻밤을 재운다. 찌꺼기가 밑바닥에 가라앉으면 윗부분의 먹물만 조심스레 떠낸다. 그 먹물로 글씨를 쓰면 짙은 은빛이 난다. 그렇게 정성들여 명도와 채도 모두 만족할 만한 먹물을 만들어 글을 쓰는 최부림의 서실 '갈뫼서예'를 방문했다.

▲ 최부림이 갈뫼서예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다. 그는 '힘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것이 최부림의 글씨'라는 평을 받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친구네 집에서 우연히 마주한 가훈 글씨
가슴 속으로 조용히 내려앉은 서예

재능 알아본 스승, 일부러 낙선시켜
"젊은 나이에 큰상은 오히려 독" 가르침
이후 대회마다 "힘과 부드러움 겸비"

한문서예 익힐 때도 '대단한 필력' 호평
사군자·문인화도 그리며 제자 양성 진력


최부림의 서실 '갈뫼서예'는 외동 1203-12 건물 2층에 있다. 그는 외동에서 1996년부터 서예학원을 열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긴 책상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벽면에는 최부림의 스승들이 쓴 글도 있다. 국당 조성수는 서실에 먹물이 마르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하라는 의미의 글을 써주었다. 한곬 현병찬은 '높이 날자 더 높이 날자 이 세상 온 천지가 내 눈 속에 잠길 때까지 높이 날자 더 높이 날자'는 한글서예 작품을 내려주었다.

최부림은 경남 고성군 마암면 출신이다. 그는 농사를 짓는 부모 슬하에서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서예를 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중학생 때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혼자 사랑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탁발을 다니시다가 우리 집까지 오셨어요. 어머니가 마침 안 계셔서 제가 쌀을 아주 조금 스님께 드렸지요. 스님은 '이것만이라도 고맙다'고 하시며 저를 가만히 보시더니 '다음에 너는 글씨를 써라. 혹시 그 일이 잘 안 되면 나를 찾아 오너라' 하시곤 떠나셨지요."

그는 그 일을 예사로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붓글씨로 쓴 가훈을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예가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창원 문성대학교에 입학해서 붓글씨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 선배들의 글씨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창원지역의 모든 서예학원을 돌아다니면서 글씨만 봤어요. 그러다가 마산의 한솔서예학원까지 가게 됐어요. 서예가 임정기 선생님이 원장이었습니다. 원장님이 한창 국전 준비 중이었는데,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반해버렸지요. 그 서예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대학생이 되어서야 서예에 입문한 것이지요."

그때부터 그는 창원과 마산을 오가며 글씨를 썼다. 그의 행동반경은 오로지 집, 학교, 서실이었다. 꾸준히 글을 쓰는 그에게 임정기 원장이 '갈뫼'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한자로는 경산(耕山). 산을 파서 옮길 만큼 열심히 글을 쓰라는 의미이다. 당시 임정기 원장은 제자들을 위해 호를 지어 주었다. 그런데 갈뫼라는 호는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 선배는 그에게 '호를 바꾸자'는 제안도 했다.

그 무렵 이런 일도 있었다. "마산과 창원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한 아저씨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총각 자네 뭐하는 사람인가?' '글씨 씁니다.' '호가 있나?' '갈뫼입니다'라고 묻는 대로 대답했죠. 아저씨는 '나중에 서예학원을 열면 그 호로 간판을 하게'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갈뫼라는 호가 좋아서 지금도 '갈뫼서예'라는 이름으로 학원을 열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잠시 했다. 그러나 각박한 서울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아 고향인 고성으로 다시 내려왔다. "본격적으로 서예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서예에 정진하던 그는 어느 날 한 절을 방문했는데, 그 절에서 사주와 관상을 잘 본다는 비구니스님을 만났다. "스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글씨를 쓰면 큰 상을 받겠다'는 말을 하시더군요. 나중에 정말로 상을 받았을 때 그 일이 떠올랐어요.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시주도 못했단 생각이 나더군요. 몇 년 뒤에 스님이 계신 절을 찾아가 나옹선사의 시를 써서 드렸습니다. '글씨를 써서 하는 시주가 가장 좋은 시주'라는 말씀을 하시며 기뻐하시더군요."

상을 받고 이름이 나기 전에는 그에게도 고비가 많았다. "열심히 공부하던 어느 날, 작품을 내면 특선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 대회에 작품을 냈지요. 그런데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충격이 컸지요." 그는 산으로 올라가 계곡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고 한다. "한참을 그렇게 있는데 '다시 처음부터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가로획 세로획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긋기 시작했습니다. 보름쯤 지났을 때 임정기 선생님께서 제게 자초지종을 들려주시더군요. 내가 그 대회의 심사를 맡았다, 네 작품을 일부러 떨어뜨렸다, 젊은 나이에 큰상을 받으면 서예가의 길을 걸어가는 데 오히려 안 좋을 것 같아 그랬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일이 있은 후 심기일전해서 더욱 열심히 글씨를 썼고, 그 뒤로는 대회에 작품을 내면 계속 반가운 소식만 날아들었지요."

최부림은 가로획 세로획이 가장 기본이며, 그 안에 서예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또 먹을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른 자세로 앉아 먹을 잡고 먹 밑바닥이 일직선이 되도록 갈아야 한다고 말했다. "먹을 가는 것은 마음을 가는 것이고 붓을 씻는 것은 마음을 씻는 것이죠. 마음이 바르면 먹을 똑바로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연습용 먹과 작품을 쓸 때의 먹을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먹을 갈아 하룻밤을 재웠다가 윗부분의 먹물만으로 글씨를 씁니다. 그러지 않고 바로 찍어 쓰면 색이 진하고 또 탁하지요. 찌꺼기를 가라앉힌 후 윗부분의 먹물로 글씨를 쓰면 짙은 은빛이 납니다. 명도며 채도가 아주 좋아요."

그렇게 먹을 갈아 하룻밤을 재워둔 먹물로 쓴 '서정별곡'으로 2007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서예부문의 대상 격이었다. 이 작품은 갈뫼서예학원의 벽면에 걸려있다. 같은 해에 열린 제27회 전국서도민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도 걸려있다. 이 대회는 부산일보사와 한국서도예술협회에서 공동주최했다. 2007년 5월 3일자 부산일보 기사는 "김광섭 시인의 '마음'을 한글 정자로 옮긴 최 씨의 대상작 '마음'은 획의 강약이 명확하고 먹의 농담, 문장의 공간 배열 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서예를 안 했으니 친구들은 저를 보고 '네가 서예가가 되어있을 줄은 몰랐다'며 놀랍니다. 부산일보에서는 대회 관련기사도 보도하고, 제 인터뷰 기사를 따로 다루어주었어요. 부산일보를 본 친구들이 놀라서 '너 글씨 쓰냐?'라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어요." 그때 친구들의 반응을 들려주며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한문서예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름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웠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며 받은 수강료는 모조리 글씨공부의 수업료로 썼지요. 전국을 다니면서 글씨공부를 하는 동안 아내가 옆에서 묵묵히 내조를 해주었습니다.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가 한문서예를 배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한글서예를 쓴 사람인데 한문 필력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힘 있는 필력이라는 의미이다. 그의 글씨를 본 서예가들은 "힘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것이 최부림의 글씨"라고 평가한다.

한글과 한문을 함께 쓰고 있는 그는 "한글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세로획을 똑같은 위치로 오른쪽 세로선을 맞추어 일직선처럼 내려써야 합니다. 초성으로 쓰는 'ㅇ' 자리도 똑같은 위치여야 하죠. 한글서예는 한문에 비해 써야 할 글자 수도 몇 배는 많아요. 한문의 경우 칠언절구를 쓰면 28자인데, 한글서예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보통 100자 정도는 써야 하거든요."

그는 요즘 거제도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갈뫼서예로 와 글씨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사군자와 문인화도 그리고 있다. 그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다. "한글서예를 배우러 오는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나도 열심히 써야지요. 언젠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 서실을 마련해 제자들과 함께 서예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부림
갈뫼서실 운영. 김해도서관 출강. 한국미협·김해미협 회원, 경남미협 서예부위원장. 국내외 초대·단체전 250여회 참여.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및 초대작가. 경남미술대전 특선 4회 및 초대작가. 한글사랑서예대전대상 및 초대작가. 세종한글서예대전 우수상 및 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술대전 우수상 및 초대작가. 전국서도민전 대상 및 초대작가. 경남서예대전 수상. 대한민국서예대전 외 주요서예대회 심사위원 역임.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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