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 대신 받은 해반천 가 버려진 땅
풀 캐고 두렁 쌓아 옥답 만들었더니
욕심 많은 부자는 호시탐탐 빼앗으려

큰비 잇따라 내려 흉년 덮친 어느 해
"곡식 꾸어줄 테니 굼텅이 논과 바꿈세"
보릿고개 풀죽 끼니로 아이들마저 탈
"된장 한 사발만 있으면 나을 텐데"
그렇게 바꾼 논이 훗날 자식 농사 밑거름

1.
어느 때, 김해 구산동 물만골 아래 도르래라는 마을에 때보라는 사람이 살았다. 생긴 것이 꼭 여치 사촌 때때처럼 빼빼 마른데다가 너무 착해서 바보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때보는 열 살 때 부모를 잃고 부잣집에서 꼴머슴을 살았다. 때보는 어렸지만 뚝심이 세서 어른만큼이나 일을 잘했다. 그런데도 욕심많은 부자는 새경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칠 년이나 일을 시키고 새경 한 푼 안 주다니. 저러다 천벌을 받지."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면서 때보에게 귀띔을 했다.

"새경을 달라고 하게. 그동안 일한 걸로 치면 논 다섯 마지기는 족히 받을 거야."

상황을 알아차린 부자는 꾀를 냈다. 인색한 부자는 때보에게 해반천 가에 있는 굼텅이 논 세 마지기를 주었다. 그러면서 잔뜩 생색을 냈다.

"나처럼 인심좋은 주인은 없을 거야."

때보는 좋아하며 자기 땅이 된 굼텅이로 갔다. 굼텅이는 물만골에서 내려오는 물과 해반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있었다. 두렁도 없고 부들이며 갈대, 달뿌리풀 같은 것이 우거진 그곳은 논이라기보다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렇지만 때보는 땅을 준 부자에게 고마워했다. 그리고 풀을 캐내고 두렁을 쌓았다. 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만들고 부드러운 풀을 베어 두엄도 넣었다.

▲ 그림 = 김기영 화가
쓸모없던 땅이 옥답(沃畓)으로 변한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때보를 따라 굼텅이에 논을 만들었다. 굼텅이에는 여기저기 논이 만들어졌다. 부자는 심술이 났다.

"못 쓰는 땅이라 줘 버렸는데 옥답을 만들어 놓다니. 에잇. 언젠가는 꼭 빼앗아 버릴 테다."

때보는 머슴일 하는 틈틈이 농사를 지어 두 해가 지나자 산골짜기에 집 지을 땅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골짜기에 올라가 집터를 닦았다. 집터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경치가 좋았다.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자주색 구름이 내려와 주변을 감돌았다.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때보가 집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선녀가 구름을 타고 노니는 명당이로군. 좋은 마누라와 훌륭한 자식을 얻을 것이야."

때보는 기뻐하면서 더 열심히 일했다. 집이 완성되자 때보는 이웃마을 처자에게 장가를 들었다. 처자는 사팔뜨기였지만 때보만큼 부지런했고, 때보만큼 착했다. 하지만 때보만큼 모자라지는 않았다. 때보 마누라는 부자가 때보에게 많은 일을 시키고 새경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자의 집일은 하지 말도록 했다. 몇 사람 몫을 너끈히 해내던 때보를 놓치게 된 부자는 때보 마누라에게 앙심을 품었다.

2.
때보 부부는 굼텅이 논을 밑천으로 새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마지기 농사로는 둘이 먹을 양식밖에 되지 않았다. 때보 부부는 마을에서 품을 팔았다. 마을에 일감이 없으면 이웃 마을까지 일하러 가기도 했다. 첫아이가 태어나자 때보 마누라는 아이를 업고 일하러 다녔다. 하지만 이듬해 또 아이가 태어나자 더 이상 일하러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때보 마누라는 집 주변을 일궈 밭으로 만들고 콩을 심었다. 가을이면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봄이 되면 그 메주로 장을 담았다.

"된장은 음식이기도 하지만 약도 된답니다. 된장을 먹으면 고기를 못 먹어도 병이 나지 않는대요."

사팔뜨기라고 놀리던 마을 사람들은 때보 마누라를 칭찬하기 바빴다.

"때보가 장가를 정말 잘 들었어. 부지런하고 착한 데다 아는 것도 많으니까 말이야."

때보의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 때보는 아이들을 몹시 아꼈다. 먹을 것이 생기면 아이들을 먼저 먹였고, 틈만 나면 안고 업고 하며 귀여워했다.

어느 해 벼꽃이 막 피었을 무렵, 세찬 바람이 불고 많은 비가 내렸다. 때보네 굼텅이 논은 개울에서 넘친 흙탕물에 잠겨버렸다. 때보와 함께 굼텅이에 논을 일군 마을 사람들도 같은 일을 당했다.

"곡식 한 톨 없이 어떻게 겨울을 나지? 아이들에게 뭘 먹이나?"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때보에게 마누라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피를 심어요. 쌀보다는 못하지만 요모조모 먹을 수 있답니다."

허옇게 말라버린 벼를 거둬내고 때보는 피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도 때보를 따라 굼텅이 논에 피를 심었다. 피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무렵 또 한 차례 큰 비가 내렸다. 빗물은 계곡을 타고 내려오면서 때보네 오두막을 휩쓸어가 버렸다. 때보 마누라가 애써 일군 콩밭도 자갈더미에 덮여 버렸다.

논밭 농사와 함께 집마저 잃어버린 때보는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때보 마누라는 씩씩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지요. 겨울이 오기 전에 집부터 지읍시다."

때보 부부는 거적데기로 움막을 쳤다. 그리고 흙더미와 자갈을 치워 집터를 닦고, 빈 곳에는 메밀을 심었다. 집은 완성되었지만 때보에게는 약간의 메밀과 굼텅이 논에서 수확한 피 두 가마니가 전부였다. 네 식구가 겨울을 나기에는 어림도 없는 식량이었다.

"보리가 자라면 배불리 먹을 수 있어요.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든 해야지요."

때보 부부는 일감을 구하러 나섰다. 하지만 두 차례의 큰 비로 흉년이 들어 일감을 구할 수 없었다. 나무를 해서 장에 가지고 갔지만 때보처럼 나무를 팔러 나오는 사람이 많아 큰 벌이가 되지 않았다.

때보 부부는 산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갔다. 도토리를 줍고 칡이며 둥굴레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캤다. 밭두렁에서 무릇 뿌리를 줍고 논두렁에서는 소리쟁이 뿌리를 캤다. 콩깍지며 수숫대 같은 것을 얻어 삶아 말려 가루로 만들기도 했다.

마을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온 산은 칡뿌리를 캐느라고 굼텅이가 되었고, 너도나도 소나무껍질을 벗겨가는 바람에 소나무들은 허옇게 맨살을 드러냈다. 봄이 왔을 무렵, 때보와 마을 사람들은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부자는 때를 맞춰 광문을 활짝 열었다. 광에는 곡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자에게 곡식을 꾸었다. 부자는 비싼 이자를 붙여 곡식을 꾸어주었다.

"풍년이 들어도 좋고, 흉년이면 더 좋고."

곡식을 꾸어 가면서 마을 사람들은 푸념을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누렇게 뜬 아이들과 마누라를 보다 못해 때보도 부자를 찾아갔다.

"일없네. 잘난 마누라를 얻었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때보 마누라는 양식을 꾸러 갔다가 무안만 당하고 돌아온 때보를 나무랐다.

"곡식을 꾸어 먹으면 비싼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내년에 또 곡식을 꾸어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가진 땅을 팔게 될지도 모른답니다.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버텨 봅시다."

때보 마누라의 말이 옳았다. 부자는 몇 년 동안 곡식을 꾸어 먹고 갚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싼 값에 땅을 사들였다. 부자는 특히 굼텅이 논에 눈독을 들였다. 부자는 굼텅이에 논을 가진 사람들을 살살 꼬드겼다.

"거긴 원래 물이 많아 농사에 적당하지 않네. 내년에도 큰 비가 오면 어쩔 텐가? 아예 팔아버리고 소작을 하면 서로 좋은 일 아닌가."

꼬드김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굼텅이 논을 부자에게 다 팔아버렸다. 부자는 몹시 흡족했지만 때보가 마음에 걸렸다. 양식을 꾸러 오지도 않고 굼텅이 논을 팔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자는 그 모든 것이 때보 마누라 때문이라 생각했다.

"어디 얼마나 더 버티나 두고 보자."

봄은 점점 무르익어갔다. 때보는 굼텅이 논과 집 주변에 심은 보리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보리가 막 피기 시작할 무렵에 찾아오는 보릿고개였다.

때보 마누라는 들나물과 산나물에 콩깍지가루를 넣고 죽을 끓였다. 멀건 풀죽을 오래 먹은 때보네 아이들은 설사가 그치지 않더니 마침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럴 때 된장이라도 한 사발 있으면 좋으련만."

때보 마누라는 아픈 아이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마누라의 한탄과 눈물을 보다 못한 때보는 된장을 얻으러 마을로 갔다. 흉년이다 보니 된장이 바닥난 집이 한두 집이 아니었다. 너도나도 된장을 푼 물에 나물을 넣고 끓여 연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보는 부잣집으로 된장을 얻으러 갔다. 부자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요즘 된장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는가? 나랏님이 내리시면 모를까, 천금처럼 비싸다네."

부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소나무 껍질이나 도토리, 칡이나 나물 같은 풋것만 먹다 보면 배탈이 나고 퉁퉁 붓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흉년이면 된장 인심이 사나왔다. 나라에서는 이를 알고 가끔 구휼미와 함께 된장을 풀어 굶주림을 면하게 했다.

하지만 김해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랏님이 구휼미와 된장을 내린다 해도 관청이 그 명을 받아 시행하기까지는 한 달이 넘게 걸릴 것이었다. 구휼미며 된장이 내려온다 해도 관청과 줄이 닿는 사람이나 향리(鄕吏)들이 먼저 차지하기 일쑤였다.

때보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부탁했다.

"제가 한양까지 된장 구하러 다녀올 동안에 아이들은 죽고 말 것입니다."

부자는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한양은 너무 멀지. 하지만 영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네."

그러면서 부자는 굼텅이 논 정도라면 된장 한 사발과 바꿔줄 만하다고 했다.

"그 논은 우리 식구들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논이 없으면 우린 굶어죽고 말 겁니다."

"잘 생각해 보게. 자네에게 당장 급한 것이 된장 한 사발인지 굼텅이 논인지."

때보는 하는 수 없이 된장 한 사발을 받고 굼텅이 논을 팔았다. 때보 마누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요. 된장 한 사발이 아이들을 살렸으니 이제 우리 밑천은 아이들이로군요."

간신히 보릿고개를 넘겼지만 논을 잃은 때보는 보리 한 말 거두지 못했다. 품을 팔 곳을 구하지도 못해 때보 부부는 걸식을 하러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때보네를 손가락질 하면서 동냥도 잘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때보는 다시 부자의 머슴이 되었다. 때보 마누라는 품삯을 알뜰히 모으고 틈틈이 집 주변에 곡식을 심어 아이들을 서당에 보냈다.

"먹고살기도 어려우면서 아이들을 서당에 보내다니. 미친 짓이야."

부자와 마을 사람들은 때보네를 흉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때보네 자식들은 차례차례 과거에 급제해 벼슬에 올랐다. 때보 마누라는 자식들이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굼텅이 논에 데리고 가서 절을 시켰다. "여기가 너희를 살린 장 한 사발 굼텅이다."





김해뉴스
조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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