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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을 품어안은 예술혼 … 역사 뒤안길에서도 '뚜벅뚜벅'그림으로 만나는 격동의 1980~199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흐름Ⅶ - 리얼리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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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4.11.05 10:26
  • 호수 196
  • 3면
  • 박현주 기자(phj@gimhaenews.co.kr)

"그림을 통해 격변기였던 1980~1990년대 우리 사회의 실상을 만나보세요." '한국현대미술의 흐름Ⅶ-리얼리즘전'이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제1, 2전시실에서 오는 7일부터 12월 7일까지 열린다. 윤슬미술관이 2008년부터 한국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사조별로 전시해온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전'의 7번째 전시회이다. 이번에는 1980년대 한국의 급격한 사회변화를 예술로 담아낸 민중미술과 부산의 형상미술 그리고 행동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정치적 논리에 의한 잣대가 걸림돌 작용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끊임없이 저평가
1994년 이후 본격 전시회마저도 희소

윤슬미술관서 오는 7일부터 한달간 전시
현장 활동 작가 참여 영남 최초 전시회
부산·경남 리얼리즘 미술 재조명 계기


민중미술은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제5공화국에 대한 저항이 사회운동으로 진화할 무렵에 등장한 미술 흐름의 한 형태이다. 형상미술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라 일상적 구체성을 그리겠다는 미술계의 흐름을 말한다. 형상미술은 특히 1980년대에는 부산의 가장 뚜렷한 미술적 경향이었다. 행동주의 작가들은 사회, 정치적인 이슈에 직접적으로 반응했고 그 현장에 뛰어들었다. 노동현장이나 시위현장에서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 형태로 작업을 했다. 이러한 민중미술과 부산의 형상미술, 행동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크게 '리얼리즘 미술'이라 부른다. 윤슬미술관은 이 작품들을 '비판' '참여' '부산경남'으로 분류해 전시한다. 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 이영준 팀장은 "한국현대미술의 핵심적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김해의 현실을 감안,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리얼리즘 전을 기획했다"면서 "한국현대미술에서 리얼리즘 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또 "199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대적인 민중미술 전시회를 개최했지만 그 이후로는 이 분야에서 본격적인 전시회가 거의 없었다"며 "이번 전시회는 영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리얼리즘 미술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전시회이도 하다. 현장에서 활동한 작가들이 참여하는 최초의 전시회이자, 부산경남지역의 리얼리즘 미술을 재조명하는 의미 있는 전시회"라고 설명했다. 

   
▲ 손장섭의 '궁촌신목'.

이번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부산민주공원 등 국공립 미술관 작품과 작가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 대거 출품된다. 이 팀장은 이를 위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의 주요 미술관과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작고한 화가들의 작품은 유족의 동의를 받아 작품을 김해로 가져왔다.

이번 전시회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사, 대전시립미술관 김준기 학예실장, 경남도립미술관 김재환 학예사가 협력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김인혜가 '비판', 김준기가 '참여', 김재환이 '부산경남' 부문을 맡았다.

'비판' 섹션에는 오윤, 손장섭, 이종구, 노원희, 임옥상, 김정헌, 민정기, 강관욱, 김종억, 류연복, 민정기, 신학철, 이명복, 황재형, 이응노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참여'에는 미술패토말(홍성민, 박광수), 광주시각매체연구회, 조선대 미술패, 두렁, 인천 갯꽃, 쏨씨공방에서 활동한 1980년대 현장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걸개그림과 판화 등 지금은 거의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작품들을 복원하거나 어렵게 남아있는 작품들을 발굴했다. '부산경남' 부문에서는 안창홍, 정진윤, 이태호, 송주섭, 허위영, 김난영, 김성룡, 김정호, 박은국, 김은곤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아카이브 자료들이 상당수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1980-90년대 리얼리즘 관련 자료들이 소개된다. 류연복, 정정엽 작가와 라원식 평론가가 소장하고 있는 많은 미술사적 사료들도 일반에 공개된다. 이 자료들은 1980~1990년대 한국리얼리즘 미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소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출품작 모두가 중요한 작품들이지만 특히 유심히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목판화 운동의 선구적 작가인 고 오윤(1946~1986)의 '가족'이 출품됐다. 오윤은 소설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의 아들이다. '가족'은 오윤의 작품으로서는 드문 대형 유화작품으로,  1982년 작이다. 이번 전시회 과정에서 받은 감정 보험가가 2억 원에 달할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가족'은 산업화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했던 가족 구성원들의 삶을 담아냈다. 농부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예비군복이나 작업복을 입은 아들, 짙은 화장을 하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딸 등 노동에 내몰린 자식들이 부모 옆에 서 있다. 고단하고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들 각각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좋은 옷을 입고 조명 아래에서 찍은 단란한 가족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현실적인 삶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산야를 사랑해 그 본질을 그려온 손장섭의 '궁촌신목'은 전국 각지의 신성한 나무들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가로 3m가 넘는 대작이다. 손장섭은 나무를 역사 인식과 연결시켜 왔다. 그 이유는 나무가 인간의 삶,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손장섭은 평소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심어진 나무는 한 자리에 서 있지만, 사람들과 함께 격동기를 겪어온 생명체이다. 나무가 그 역사를 증언하기에 오래된 나무를 그려왔다"고 말한 바 있다.

   
▲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에서 오는 7일부터 12월 7일까지 '리얼리즘전'이 열린다. 1980~1990년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담은 주요 작품들이 전시된다. 최병수의 '장산곶 매', 이종구의 '속농자천하지대본', 강요배의 '어머니', 임옥상의 '귀로', 오윤의 '가족'.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사진제공=김해문화의전당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인 이종구의 '속농자천하지대본'은 농촌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충남 서산 오지리에서 태어난 그는 오지리의 실존적인 인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려왔다. '속농자천하지대본'도 포대종이를 써서 아크릴과 콜라주로 만든 작품이다. '양곡 20㎏'이라고 인쇄된 흔적이 선명한 포대에 그려진 그림 윗부분에는 태극기가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농업인 표창장과 잘 여문 벼이삭을 한아름 안고 있는 젊은 농부의 모습이 있다. 그것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람은 농사에 평생을 바친 늙은 농부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농촌과 농부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아느냐고 묻는 듯하다. 

현장미술가 최병수는 1991년에 그린 걸개그림 '장산곶 매'를 다시 복원해 제작했다. 1991년 작품은 방대한 규모와 뛰어난 표현력으로 최병수 최고의 걸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의 상징이 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그린 이가 바로 최병수이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았다. 이한열 열사는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22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해 6월 11일자 신문에는 최루탄 피격 현장 사진이 실렸는데, 이 사진을 본 최병수는 곧장 연세대로 달려가 '만화사랑동아리' 학생들과 밤을 새워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그렸고, 다음날 학생회관 건물 외벽에 내걸었다. 그의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장산곶 매' 등은 거대한 깃발로, 절규로, 뜨거운 함성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됐으며 외신에서도 소개됐을만큼 유명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장산곶 매'는 황해도 장산곶에 사는 장수매에 얽힌 민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장산곶 매는 주변의 약한 동물을 괴롭히지 않고 일 년에 딱 두 번, 먼 땅으로 사냥을 떠난다. 이 작품은 화폭의 절반 이상을 과감하게 여백 처리했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창홍의 작품도 선보인다. 안창홍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메시지를 자신만의 언어로 화폭에 담아온 작가이다. 30여 년이 넘는 활동 기간 동안 3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1982년 연작으로 발표한 '가족사진' 시리즈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부산민주화기념사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얼굴'과 '인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가족사진'을 만날 수 있다.

부산의 박경효 화가의 작품으로 부신민주공원이 소장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투쟁사'도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박경효는 "미대를 막 졸업하고 친구들과 공동작업실 '새물결'을 만들었다. 현대중공업 노조에서 만든 노동운동 책자를 참조로 해서, 나를 중심으로 4명이 함께 '현대중공업 투쟁사'를 그렸다. 당시에 구할 수 있는 캔버스로는 가장 큰 크기였다"고 설명했다. 이 그림은 가로 6m 크기이다. 그는 "당시에 기존의 미술계 흐름을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들이 많았다"며 "윤슬미술관이 지난 5~6월에 '신학철전'을 열고 이번에 '리얼리즘전'을 열어 1980~1990년대의 미술을 재조명한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사회 분위기를 가장 아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기에 지금도 많은 작업이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슬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의 흐름' 전시회는 '단색회화전'(2008) '극사실회화전'(2009) '팝아트전'(2010) '오브제로 바라본 한국현대미술전'(2011) '미디어아트전'(2012) '여성주의전'(2013)으로 진행돼 왔다.

△한국현대미술의 흐름Ⅶ-리얼리즘전 ▷장소/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제1, 2전시실 ▷일정/7일~12월 7일 ▷입장료/무료 ▷개막행사/7일 오후 5시 ▷학술세미나/7일(금) 오후 2시 ▷문의/055-320-1261.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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