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 경남도교육감상 - 송석현(율하초등학교 4학년 2반)
좋은 우리말 두고 욕 쓰지 말아요

제목:안 좋은 한글과 좋은 한글

▲ 송석현 학생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송석현입니다. 저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욕을 많이 써서 엄마와 아빠의 속을 상하게 하고 또 한글도 좋은 한글을 쓰지 않았고요. 하지만 저는 점점 좋은 한글을 써가고 있고 지금은 욕과 안 좋은 말은 거의 없어졌답니다. 그래도 한글을 잘하기 보단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 읽기, 텔레비전 조금만 보기,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않기 등 수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래도 더 큰 문제가 있답니다. 하필이면 글씨가 지저분해요. 하지만 방법은 있지요. 방학 한달 동안 매일 글씨 쓰기 연습을 해서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답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요. 그리고 또 한글 하면, 시 아니겠습니까? 동시 짓기 대회에서 '잔소리'란 주제로 최우수상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시인이 되고 싶기도 해요.
 
저의 또 다른 고민은 바로 띄어쓰기예요. 제일 어렵답니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아요. 누구나 완벽할 순 없잖아요. 저도 이제 알았는데 우리의 온 세상이 한글로 둘러싸여 있다는 거예요. 눈, 코, 입, 이름, 성, 나이 신체 부위 등 여러 군데 모두 한글을 달고 있어요. 와! 엄청나요. 저는 여태까지 몰랐어요. 나, 너, 그 외 사람들 모두가 한글을 갖고 있으니, 사람도 한글이라니!
 
그리고 사람의 감정에 따라 좋은 한글과 나쁜 한글로 나뉘는 것 같아요. 기분이 좋을 때는 예쁜 말과 고운 말씨가 나오고 화가 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나쁜 말과 어투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말은 조심해야 하나 봐요.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은 멋져요! 그러므로 저도 한글 생활을 잘 할 거고 좋은 한글도 많이 쓰고 한글 사랑도 많이 하겠습니다. 한글 최고!


중학교부 경남도교육감상 - 김선빈(구산중학교 1학년 4반)
의사소통 가로막는 한글 파괴 올바른 말·글 생활로 바꿔야

제목:우리말 사랑

▲ 김선빈 학생
대박 더운 날 시원한 커피를 먹으러 요즘 핫하다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부모님과 같이 갔을 때의 일이다. 카운터에서 메뉴판을 보고 휘핑크림 듬뿍 얹고 버블을 추가한 카페모카를 주문하고 체크카드와 멤버쉽카드로 결제를 한 뒤 진동벨을 받고 테이블로 갔다. 잠시 뒤 진동벨이 울리고 '카페모카 나오셨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말을 듣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빠가 커피숍 알바는 커피보다 낮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아니라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언젠가부터 생긴 표현인 것 같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나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된 걸 보면 말의 습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의아할 것이다. 이 글쓰기의 주제를 모르는 것일까?라고.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외래어나 외국어, 인터넷용어를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써보았다. 이제 위 글을 최대한 순화된 표현으로 바꾸어 보려고 한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커피를 먹으러 요즘 인기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부모님과 같이 갔을 때의 일이다. 주문대에서 차림판을 보고 세게 저어서 거품을 낸 크림을 듬뿍 얹고 버블을 추가한 카페모카를 주문하고 현금카드와 회원카드로 결제를 한 뒤 진동종을 받고 탁자로 갔다. 잠시 뒤 진동종이 울리고 '카페모카 나오셨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말을 듣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빠가 커피집 임시직원은 커피보다 낮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아니라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언젠가부터 생긴 표현인 것 같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나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된 걸 보면 말의 습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8줄밖에 되지 않는 이 글을 바꾸어 써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외래어나 외국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외래어 없이 글쓰기가 참 힘들다는 것과 표현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

"엄마, 프사 좀 바꾸세요. 예쁜 사진으로요." "뭐? 프사가 뭐야?"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을 바꾸라는 나의 말을 못 알아 듣고는 또 줄임말을 쓰냐면서 잔소리를 하시는 우리 엄마와 나의 대화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우리 엄마는 이렇게 줄임말이나 맞춤법에 맞지 않는 말들 때문에 우리말의 기본을 배워가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예를 들면 요즘 초등학생들이 '좋은'을 '조은'으로 쓰거나 문법에 어긋나는 글을 쓰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은상점'. '조은금강병원'처럼 '조은'이라는 말이 들어간 간판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굳이 '좋은'을 '조은'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우리말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바른 우리말 사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서는 고등학생 언니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멍하게 쳐다보시면서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이 쓰는 인터넷 용어, 줄임말 때문이다. 상메(상태메세지) 프사(프로필사진), 된장녀, 김치녀 등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들이 보편화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은 잠시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생각해도 눈살이 찌푸려지고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자제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 세대도 알아 듣기 힘드시니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더 대화에 끼지 못하시고 서글프실 것 같다. 이렇게 인터넷 용어와 줄임말을 실생활에서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 세대차이가 나고,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 요즘 각광받는 관광지, 전주한옥마을은 한옥이라는 주제에 맞게 한글 간판과 고유어로 된 이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소리풍경', '푸른요람', '해밀', '태조궁' 등의 이름들은 다른 곳들과 차별화 되어 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고, 한옥마을의 특징에 잘 맞는 것 같았다. 롯데캐슬 아파트, 월드 메르디앙, 네이처 리퍼블릭, 투썸 플레이스 등 국적불명의 글자들이 판을 치는 도시 간판의 거리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작년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우리 한글의 우수성이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한국적인 것을 지켜나가야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라고 배웠다. 미래 한국을 책임질 우리들이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려는 가치관을 가질 때 한글이 세계 속에서 더욱더 빛이 날 것이다.


고등학교부 경남도교육감상 - 박소희(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2학년 3반)
딸에게 한글 배우느라 자존심 상한 엄마, 미안하고 사랑해요

제목:엄마와 한글

▲ 박소희 학생
요즘 세상에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엄마, 아빠는 그 당연한 일을 할 줄 모르신다. 부모님은 태어날 때부터 아프셔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커서는 사는 것에 치여서, 우리들 키우느라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부모님이 읽지 못하는 한글을 내가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릴 적, 큰 목소리로 글을 읽을 때마다 부모님은 내가 대견하다는 듯이 웃어주셨다. 나는 그 웃음이 좋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에 '7번 방의 선물'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영화는 지적장애인인 용구가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용구는 감옥에서 밀수죄로 감옥에 들어온 방장을 만나게 된다. 방장은 문맹이었다. 방장은 자신이 문맹인 걸 몹시도 부끄러워해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그런데 용구의 딸이 감옥에 들어오고, 방장이 문맹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사람들은 그런 방장을 놀려대고 방장은 문맹인 걸 들킨 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주위에 몹시 화를 낸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도 어디서엔가 글을 모르는 것이 밝혀지면 저렇게 부끄럽고 창피해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속상했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에서 주위사람들이 방장에게 함께 한글을 가르쳐주고 방장이 서서히 한글을 배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께도 방장아저씨처럼 조금씩 천천히 한글을 알려줬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부모님께 한글을 가르쳐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글을 모르니까, 엄마, 아빠가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내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냐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어쩌면 부모님은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괜찮은 척 숨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 나와 동생이 결혼하고 떠나버린 집에서 하루 온종일 집에 온 우편물 내용을 몰라 발을 동동거리다 이웃에게 수치스러운 부탁을 해야 할 부모님을 떠올리며 부모님께 글을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손이 불편하셔서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는 한사코 괜찮다고, 이제 와서 뭘 배우냐고 배우기를 망설였지만 내가 강하게 밀어붙여서 매일 저녁 한글 수업을 시작했다. 가나다라부터 시작했다. 엄마는 수업 내내 수동적이었다. 그래도 나는 일단 밀어붙였다. 숙제도 냈다. 내가 학교 다녀오기 전까지 배운 거 열 번씩 써놓으라고. 엄마는 알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한 번도 숙제를 완벽하게 다 해 놓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진도는 여전히 가나다라, 속상했다. 도대체 하려는 의욕이 있기는 하냐며 엄마를 다그쳤다. 이 쉬운 걸 왜 못해? 엄마 할 마음이 있긴 한 거야? 내가 많이 시킨 것도 아니잖아. 낮에 한 시간만 하면 되지 않냐고 엄마에게 상처를 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엄마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 후, 엄마와의 한글 수업은 중단되었고 엄마와 나 사이도 소원해졌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었고, 여름 옷을 찾아 엄마 옷장을 뒤지다 엄마의 낡은 공책을 발견했다. 엄마의 낡은 공책엔 삐뚤빼뚤 글씨로 ㄱ, ㄴ, ㄷ, ㄹ과 우리 남매이름이 씌어 있었다. 그건 내가 글을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을 갖기 전부터 엄마가 조금씩 조금씩 연습해온 공책이었다. 그리고 나와 한글 공부가 끝난 이후에도 엄마는 혼자서 한글 공부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공책엔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엄마의 소망과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어 나를 무척 부끄럽게 했다.
 
엄마는 한글을 처음 접하면서, 그 글이 어렵고 낯설게 느껴져서 자꾸만 움츠러들었을 뿐, 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다. 엄마는 오랫동안 한글을 배우고 싶었고, 나에게 한글을 배우는 동안에도 열심히 노력하셨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다. 그런데 난 한 번도 배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은 채 그 노력을 깎아내렸다. 나이 마흔에 처음 글을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어릴 때 글을 배우면서 나도 그랬으니까,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하던 유치원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 오히려 움츠러들고 소극적이었다. 알면서도 틀릴까봐 답을 망설이기도 했었다. 엄마도 그런 마음이셨던 건데, 내가 닦달하고 몰아붙이기만 했다. 미안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엄마와 설거지를 하면서 엄마에게 슬그머니 말했다. "엄마 저녁에 뭐해? 우리 다시 공부할까? 이번엔 내가 잘할게." 엄마는 지긋이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엄마의 눈을 보면서 내 마음을 고백했다. 내가 원하는 수준에 엄마가 따라와 줬으면 하는 마음을 앞세워 엄마를 몰아세우기만 했다고, 처음 배우니까 어려운 건 당연한 건데 천천히 차근차근 할 생각은 못했던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말이다. 엄마는 내 사과를 받아주셨고 우리는 다시 매일 저녁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와 매일 저녁, 한글 공부를 하면서 한글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엄마는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면서 점차 공부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아직까지는 어설프고 어색하지만 띄엄띄엄 우편물도 읽기 시작했다. 엄마의 한글 실력만큼이나 엄마와 나 사이의 사랑도 늘어가고 있다.


다문화부 경남도교육감상 - 뱅 리아크나(창원시 성산구)
한국어 서툴러도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 될게요

제목:2014년 10월 창원에서

▲ 뱅 리아크나 씨
저는 캄보디아에서 살다 한국으로 시집 온 지 2년 반 된 뱅 리아크나입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말은 안 통하고 한국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시집에 오자마자 새로 만나는 사람, 새로운 음식, 생활방식 등 모든 것이 다 새로웠습니다. 처음에는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었습니다. 한국 온 지 한 달 만에 아기가 생기고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니까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는 물가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생활해야하는지도 잘 몰랐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라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한글 배우는 것도 정말 어려웠습니다. 또 한국 요리를 못해서 남편이랑 시부모님께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었습니다. 입덧도 심했지만 한글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적응이 되었습니다. 한글도 좀 알게 되고 생활비 쓰는 것도 감을 잡았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한국요리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시어머님께도 배웠습니다. 그동안 시간 나는 대로 한글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주여성을 위한 센터에 부지런히 다니면서 공부하고 집에서도 혼자 복습도 했습니다. 공부하는 곳은 가까워서 걸어다니면서 단어를 외우기도 했습니다. 많이 걸어서 다리가 붓기도 하고 센터에 갔다 와서 집안일을 하는 것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리 집은 콩나물 키워서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아침 일찍부터 해야 했고 가족들 식사준비까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 힘들기도 하고 잠도 부족했습니다. 임신 27주 만에 갑자기 조기 출산기가 있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원에서 3주 동안 치료를 받고 몇 주 뒤에 건강하고 예쁜 남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너무 기뻐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기쁜 마음 한편으로 걱정도 됐습니다.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지? 그러나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6개월이 되자 한국어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첫애가 돌이 지나고 곧 둘째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힘들어서 친정어머니를 한국으로 초청했습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출산 후에 몸조리도 잘 마치고 집안일도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남자아기를 돌보기가 참 힘듭니다. 서로 엄마를 차지하려고 하고, 그리고 시부모님과 친정 엄마가 한집에 살면서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달라서 생기는 어려움도 많습니다.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항상 밝게 웃으면서 생활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지금은 행복해서 힘든 줄도 모릅니다. 지금도 어린 아들을 업고 이주여성센터서 수업을 받고 있지만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곧 있을 한글 능력시험 중급에 대비해서 열심히 공부도 합니다. 수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많은 집안일과 아이들이 나에게 달라붙어서 힘들게 하지만 남편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녁이면 아이들에게 책도 같이 읽어주고 밖으로 나가 산책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의 두 팔에는 두 아들이 안겨 자고 있습니다. 자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한글 공부를 계속해서 아들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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