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낙방 아들들 탓에 속상한 이 좌수
가막소 떳다리 없애라는 불당골 중 말에
영험한 돌다리 무너뜨리려 장정들 모아

사람들 만류에도 "치워버리고 말겠어"
다리 지키는 뱀과 기싸움 끝에 황천행
상가에도 뱀 몰려들어 자손들 줄행랑

주촌면 금음산에는 유달리 샘이 많았다. 어느 때 그 금음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고을 새미실(泉谷里) 안의 연말이라는 마을에 이 좌수(座首)라는 사람이 있었다. 좌수는 벼슬 아닌 벼슬로, 고을의 풍속을 교화하는 조선시대 자치기구인 유향소의 우두머리였다. 임기가 2년이었지만 이 좌수는 몇 번이나 임기를 넘기고도 도무지 물러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을 비롯해 은근히 좌수가 되고자하는 사람들은 불만이 많았다. 학식과 덕망을 갖췄다면 모를까 고약한 성미에다 안하무인인 이 좌수가 꼴불견이었다. 하지만 이 좌수는 새미실 제일의 부자였고 괴상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이 좌수는 옆으로 죽 찢어지고 위로도 찢어진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눈이 발산하는 푸르스름한 안광이 마치 무림고수의 장풍과 같았다. 사람을 쳐다보기만 해도 저만치 나가떨어져 버리니 이 좌수는 평소에도 눈을 내리깔고 지냈다. 그러다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이 좌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장풍을 맞은 것처럼 나가떨어지니 모두들 두려워했다.
 
이 좌수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여차하면 눈을 뜨고 협박을 하여 무슨 일이든 제멋대로 처리했다. 다른 사람에게 좌수 자리를 맡기려는 사또도 그렇게 제압해버렸다.
 
"나라님께 진정을 하든지 어쩌든지 해야지, 원. 이 좌수 등쌀에 못 살겠구먼."

"그런 소리 말게. 나라님께 진정을 하자면 사또를 거쳐야 하는데, 사또들이 모두 이 좌수 앞에서 벌벌 떨기만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이 좌수의 집을 피해 다녔다. 어쩌다 이 좌수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행여 무서운 안광을 맞을까봐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도 이 좌수는 제멋대로 생각했다.

"껄껄껄. 모두 나를 존경하는군. 아무렴, 그래야지. 나는 좌수니까."

그런데 안하무인인 좌수에게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명실공히 양반가문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몇 대에 걸쳐 진사시, 생원시 턱을 넘는 후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넷이나 되는 이 좌수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좌수는 독선생을 따로 들이고, 과거 천 명 관리 백 명이 나올 옥으로 만든 술잔 모양의 명당이라는 학봉산 한 곳에 선조의 묘를 옮겼다. 마을사람이나 일가친척에게는 인색하게 굴면서도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원하는 굿을 하고 불공을 드리는 데는 재물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공을 들여도 네 아들은 번번이 초시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 좌수의 속이 편할 리 없었다. 그러다 보니 허구한 날 아들들을 앉혀 놓고 잔소리에 고함이었다. 기분이 영 언짢을 때는 안광으로 아들들을 담 너머로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이 좌수 집을 두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남다른 힘이 있으면 뭣하나. 쓸 데가 없는 것을."

"저렇듯 욕심이 많으니 자식들이 그 모양이지."

어느 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행색의 중이 이 좌수 집 소슬 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준 하인에게 중은 다짜고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하인이 의아해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불당골에서 왔네."

"불당골이면 바로 뒷산 골짜기가 아닙니까? 그곳 토굴에 수십 년째 웬 거지가 산다더니 바로 스님이셨군요."

하인이 중의 행색을 보고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은 이 좌수에게 그 종이를 전하라 하고 대문 앞에 주저앉았다. 잠시 뒤 하인이 나와 중을 사랑채로 맞아들였다. 이 좌수는 일어나지도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중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 좌수가 노려보아도 중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움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이 좌수는 눈빛을 거두고 중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중이 이윽한 눈빛으로 이 좌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대 자식들이 벼슬에 나가지 못해 방도를 찾는다기에 알려주러 왔네."

중은 이 좌수가 사는 집 아래에 큰 물길이 있는데 그 물이 떳다리까지 이어지니 벼슬 운이 떠내려가는 것이라 했다. 떳다리를 뜯고 그 자리에 가막소보다 더 큰 못을 만들어 강으로 흘러가는 물을 가두면 벼슬 운이 돌아올 것이라는 중의 말에 이 좌수는 귀가 솔깃했다.

떳다리는 금음산 샘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가막소에 걸쳐져 있는 다리였다. 가막소는 명주실에 돌을 매달아 던지면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닿지 않을 만큼 물이 깊었다. 그렇게 깊은 물에 언제부턴지 모르게 튼튼한 돌다리가 놓여 있었고,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무너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물 위에 둥 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떳다리였다.

▲ 그림=정원조
이 좌수가 듣기로 또 떳다리는 사람이 놓은 다리가 아니었다. 가막소의 이쪽과 저쪽에 가로세로 한 자 폭의 돌기둥을 두 줄로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기다란 돌 상판 두 개를 걸친 형태라 도저히 사람이 놓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기 때문인 듯했다. 떳다리를 건너 농소에 농사를 지으러 가거나 시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도깨비가 하룻밤 사이에 놓은 다리라느니, 가막소에 빠져 죽은 사람이 한이 맺혀 놓은 다리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리 아래 깊은 물속에 있다는 다리지킴이에게 가진 것을 조금 떼어 던져 주기도 했다.
 
그 떳다리를 뜯어야 자식들 벼슬길이 열린다니. 하지만 이 좌수는 썩 내키지 않았다. 사람이 놓은 다리가 아니라는 소문 때문이 아니었다. 떳다리는 창원부를 중심으로 김해부와 함안부를 아우르는 관로인 자여도에 속해 있었다. 관로에 손을 댔다가는 나라에서 경을 칠 일이었다.
 
"다른 방도는 없겠습니까? 떳다리는 좀…."

이 좌수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중이 다시 말했다.

"떳다리 위쪽 고개를 깎아 창원부로 가는 육로를 만들면 벌이 아니라 상을 받을 일이지. 나라에서도 그대 공을 치하하며 송덕비를 세우라고 할 것이야."

송덕비라는 말에 이 좌수의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을 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이 좌수의 눈빛을 보고 중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떳다리를 뜯고 새 길을 만들고 나서 저어기 동쪽 넙덕바위 있는 곳에 밭을 일구게. 밭을 일군 뒤에 수수를 심도록 하게. 그 수수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무렵이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야."

중의 말을 따르기로 작정한 이 좌수는 사또를 찾아갔다. 떳다리를 뜯어내고 고개를 깎아 새 길을 내겠다는 이 좌수의 말에 사또는 펄쩍 뛰었다. 관로를 변경하려면 한양에 통지를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사재를 들인다 하더라도 나라에서 닦은 길에 손을 댔다가는 자칫 제 목까지 달아날지 몰랐다. 하지만 이 좌수의 안광을 맞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 좌수가 떳다리를 뜯고 큰 못을 만들려고 일손을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사람들과 일가친척, 그리고 고을의 선비들이 이 좌수의 집으로 몰려갔다.
 
"떳다리는 이쪽 들판과 저쪽 들판을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라네. 또 떳다리가 없으면 농소에 어떻게 농사를 짓는단 말인가?"
 
"사람의 힘으로 놓을 수 없는 다리를 사람의 힘으로 뜯으려 하다니, 큰 화를 당할 것이야."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만류했지만 이 좌수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시끄럽고 귀찮다며 안광을 쏘아 내쫓아버렸다.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 돌아갔다. 떳다리를 뜯고 못을 파는 일을 해주면 돈을 많이 줄 것이라 해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 좌수는 하는 수 없이 멀리서 많은 돈을 주고 힘센 장정 스무 명을 데려왔다. 우선 떳다리부터 뜯어내고 볼 일이었다. 장정들은 돌기둥에 걸쳐져 있는 두 개의 돌 상판 중 하나에 밧줄을 걸고 힘을 합쳐 잡아당겼다. 그런데 스무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겨도 돌 상판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
 
"안되겠다. 내가 나서야지."
 
이 좌수는 떳다리 건너편으로 갔다. 그리고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장정들을 향해 안광을 쏘았다. 이 좌수의 안광에 장정들은 밧줄을 잡은 채 뒤로 밀려났다. 그렇지만 돌 상판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 이 좌수도 지치고 말았다.
 
"내일 다시 하세."

이튿날 장정들을 데리고 이 좌수는 다시 떳다리로 갔다. 그런데 떳다리 위에 다리 길이만한 뱀이 떡 버티고 누워 있었다. 뱀을 본 장정들은 기겁을 했다.

"저렇게 큰 걸 보면 이 다리 지킴이가 분명해."

"아무리 돈을 받았다지만,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야."

장정들이 꽁무니를 뺄 기미를 보이자 이 좌수는 버럭 화를 냈다.

"그깟 뱀이 뭐가 무섭단 말이냐? 내가 쫓아버릴 테니 돌 상판 들어낼 준비나 해."

이 좌수는 장정들을 물리치고 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뱀을 노려보았다. 이 좌수의 눈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방에서 바람이 일만큼 무서운 빛이었다. 떳다리 위에 누워 있던 뱀이 머리를 쳐들고 이 좌수를 노려보았다. 커다란 뱀과 이 좌수의 눈싸움을 보고 겁을 먹은 장정들은 하나 둘 달아나버렸다.

이 좌수와 뱀의 싸움은 한나절이나 계속되었다. 이 좌수도 지치고 뱀도 지쳤다. 어느 순간 꼿꼿하게 치켜들었던 뱀의 머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보고 이 좌수는 마지막 힘을 눈에 모았다. 마침내 뱀은 다리 아래 물속으로 떨어져버렸다. 이 좌수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네 아들은 이 좌수의 시신을 집으로 옮겼다. 그런데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으려고 홑이불을 벗기니 이 좌수의 시신과 주변에 실뱀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아들들은 실뱀을 잡아 불에 태우고 난리법석을 친 다음 허겁지겁 빈소를 차렸다. 하지만 문상을 온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도망쳐 버렸다. 온 집에 뱀이 득실거렸기 때문이었다.

"말도 말게. 얼마나 뱀이 많은지 꼭 개미떼 같았다네."

"멍석 아래도 뱀, 멍석 위에도 뱀, 젓가락을 들어도 뱀이었다네."

이 좌수 집에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치를 떨고 몸을 떨었다. 사람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좌수 집에는 뱀이 우글거렸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실뱀이 떼를 지어 사방에서 나타났다. 온 집을 기어다니는 뱀 때문에 상주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아예 문상을 가지 않았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뱀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네 아들은 날마다 뱀을 자루에 담아 가막소에 갖다버리고 불에 태워 없애기를 거듭했지만 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네 아들은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한밤중에 먼 곳으로 달아나버렸다. 뭐라도 가져가면 혹시 뱀이 달라붙어 따라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 좌수의 아들들이 달아나 버리자 그렇게 많던 뱀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탐욕스러운 이 좌수의 전설을 담고 있는 이 떳다리는 광복 후까지도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순천을 잇는 남해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주촌교가 세워지면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이 떳다리가 주촌교 아래 물속에 아직 그대로 있다고 믿고 있단다.





김해뉴스
조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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